고사성어 유래
*********************************************************************
[망양지탄(望洋之歎)] 望: 바랄 망/ 바라볼 망. 洋: 바다 양. 之: 어조사(---의) 지. 歎: 탄식할 탄/ 감탄할 탄.
넓은 바다를 보고 감탄하다, 곧 ① 남의 원대함에 감탄하고, 나의 미흡함을 부끄러워함의 비유. ② 제 힘이 미치지 못할 때 하는 탄식.
[참조] 정중지와(井中之蛙).
[출전]《장자(莊子)》〈추수편(秋水篇)〉
-----------------------------------
먼 옛날 황하 중류의 맹진(孟津:하남성 내)에 하백(河伯)이라는 하신(河神)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금빛 찬란히 빛나는 강물을 보고 감탄하여 말했다.
"이런 큰 강은 달리 또 없을 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늙은 자라였다.
"그럼, 황하보다 더 큰 물이 있단 말인고?"
"그렇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해 뜨는 쪽에 북해(北海)가 있는데, 이 세상의 모든 강이 사시 장철 그곳으로 흘러들기 때문에 그 넓이는 실로 황하의 몇 갑절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 큰 강이 있을까? 어쨌든 내 눈으로 보기 전엔 못 믿겠네."
황하 중류의 맹진을 떠나 본 적이 없는 하백은 늙은 자라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윽고 가을이 오자 황하는 연일 쏟아지는 비로 몇 갑절이나 넓어졌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하백은 문득 지난날 늙은 자라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는 이 기회에 강 하류로 내려가 북해를 한번 보기로 했다. 하백이 북해에 이르자 그곳의 해신(海神)인 약(若)이 반가이 맞아 주었다.
"잘 왔소. 진심으로 환영하오."
북해의 해신이 손을 들어 허공을 가르자 파도는 가라앉고 눈앞에 거울 같은 바다가 펼쳐졌다.
'세상에는 황하 말고도 이처럼 큰 강이 있었단 말인가‥….'
하백은 이제까지 세상 모르고 살아온 자신이 심히 부끄러웠다.
"나는 북해가 크다는 말을 듣고도 이제까지 믿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기서 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나의 단견(短見)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북해의 신은 웃으며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井中之蛙]'였구려. 대해(大海)를 모르면 그대는 식견이 낮은 신으로 끝나 버려 사물의 도리도 모를 뻔했소. 그러나 이제 그대는 거기서 벗어난 것이오."
+++++++++++++++++++++++++++++++++++++++++++++++++++++++++++++++++++++++++++++
[백아절현(伯牙絶絃)] 伯: 맏 백. 牙: 어금니 아. 絶: 끊을 절. 絃: 악기 줄 현.
백아가 거문고의 줄을 끊다, 곧 ① 서로 마음이 통하는 절친한 벗[知己]의 죽음을 이르는 말. ② 친한 벗을 잃은 슬픔.
[준말] 절현(絶絃). [동의어] 백아파금(伯牙破琴).
[유사어] 지음(知音), 고산유수(高山流水).
[출전]《열자(列子)》〈탕문편(湯問篇)〉
-------------------------------------------------------------
춘추 시대, 진나라에 가서 상대부가 된 거문고의 명수 유백아(兪伯牙)에게는 그 소리를 누구보다 잘 감상해 주는 종자기(鐘子期)라는 사람이 있었다.
종자기는 백아가 거문고를 타며 높은 산에 오르는 기분을 표현하자,
"아, 좋도다. 높고 험하기 태산(泰山)과도 같도다."
하고 말했다. 백아가 흐르는 강물을 연상하면서 거문고를 타자 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아, 좋도다. 벙벙히 흐르는 물이 강하(江河: 양자강과 황하)와도 같구나."
이처럼 두 사람은 마음이 통하는 연주자였고 청취자였는데 다음 해에 백아가 종자기를 찾아오니 불행히도 종자기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러자 백아는 절망한 나머지 거문고의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기(知己)를 가리켜 지음(知音)이라고 일컫는 것은 이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
[연목구어(緣木求魚)] 緣: 인연 연/ 인할 연. 木: 나무 목. 求: 구할 구. 魚: 물고기 어.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한다는 뜻. 곧 ① 도저히 불가능한(가당찮은) 일을 하려 함의 비유. ② 잘못된 방법으로 목적을 이루려 함의 비유. ③ 수고만 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함의 비유.
[유사어] 지천사어(指天射魚).
[출전]《맹자(孟子)》〈양혜왕편(梁惠王篇)〉
--------------------------------------------------------
전국 시대인 주(周)나라 신정왕(愼정王) 3년(B.C. 318), 양(梁: 魏)나라 혜왕(惠王)과 작별한 맹자(孟子)는 제(齊)나라로 갔다. 당시 나이 50이 넘는 맹자는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인의(仁義)를 치세의 근본으로 삼는 왕도정치론(王道政治論)을 유세(遊說)중이었다.
동쪽의 제나라는 서쪽의 진(秦)나라, 남쪽이 초(楚)나라와 함께 대국이었고 또 선왕(宣王)도 역량 있는 명군이었다. 그래서 맹자는 그 점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왕도정치가 아니라 무력과 책략을 수단으로 하는 패도정치(覇道政治)였으므로, 선왕은 맹자에게 이렇게 청했다.
"춘추 시대의 패자(覇者)였던 선왕 환공(桓公)과 진(晉)나라 문공(文公)의 패업(覇業)에 대해 듣고 싶소."
"전하께서는 패도에 따른 전쟁으로 백성이 목숨을 잃고, 또 이웃 나라 제후들과 원수가 되기를 원하시옵니까?"
"원하지 않소. 그러나 과인에겐 대망(大望)이 있소."
"전하의 대망이란 무엇이오니까?"
선왕은 웃기만 할 뿐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맹자 앞에서 패도를 논하기가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는 짐짓 이런 질문을 던져 선왕의 대답을 유도했다.
"전하,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옷이, 아니면 아름다운 색이 부족하시기 때문이오니까?"
"과인에겐 그런 사소한 욕망은 없소."
선왕이 맹자의 교묘한 화술에 끌려들자 맹자는 다그치듯 말했다.
"그러시다면 전하의 대망은 천하통일을 하시고 사방의 오랑캐들까지 복종케 하시려는 것이 아니오니까? 하오나 종래의 방법(무력)으로 그것(천하통일)을 이루려 하시는 것은 마치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緣木求魚]'과 같사옵니다."
'잘못된 방법(무력)으론 목적(천하통일)은 이룰 수 없다'는 말을 듣자 선왕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아니, 그토록 무리한 일이오?"
"오히려 그보다 더 심하나이다.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일은 물고기만 구하지 못할 뿐 후난(後難)은 없나이다. 하오나 패도를 쫓다가 실패하는 날에는 나라가 멸망하는 재난을 면치 못할 것이옵니다."
선왕은 맹자의 왕도정치론을 진지하게 경청했다고 한다.
+++++++++++++++++++++++++++++++++++++++++++++++++++++++++++++++++
[오월동주(吳越同舟)] 吳: 오나라 오. 越: 넘을 월/ 월나라 월. 同: 한가지 동. 舟: 배 주.
적대(敵對) 관계에 있는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뜻. 곧 ① 서로 적의를 품을 사람끼리 같은 장소 처지에 놓임. 원수끼리 함께 있음의 비유. ② 적의를 품은 사람끼리라도 필요한 경우에는 서로 도움.
[동의어] 오월지쟁(吳越之爭), 오월지사(吳越之思).
[유사어] 동주상구(同舟相救), 동주제강(同舟濟江), 호월동주(胡越同舟), 오월지부(吳越之富).
[참조] 와신상담(臥薪嘗膽).
[출전]《손자(孫子)》(손자병법)〈구지편(九地篇)〉
----------------------------------------------------
보통 손자병법이라고 불리는《손자》의〈구지편(九地篇)〉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병(兵)을 쓰는 법에는 아홉 가지의 지(地)가 있다. 그 9지 중 최후의 것을 사지(死地)라 한다. 주저 없이 일어서 싸우면 살길이 있고, 기가 꺾이어 망설이면 패망하고 마는 필사(必死)의 지이다. 그러므로 사지에 있을 때는 싸워야 활로(活路)가 열린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필사의 장(場)에서는 병사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유능한 장수의 용병술(用兵術)은 예컨대 상산(常山)에 서식하는 솔연(率然)이란 큰 뱀의 몸놀림과 같아야 한다. 머리를 치면 꼬리가 날아오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벼든다. 또 몸통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덤벼든다. 이처럼 세력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
예로부터 서로 적대시해 온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吳越同舟]' 강을 건넌다고 하자. 강 한 복판에 이르렀을 때 큰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히려 한다면 오나라 사람이나 월나라 사람은 평소의 적개심(敵愾心)을 잊고 서로 왼손 오른손이 되어 필사적으로 도울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전차(戰車)의 말[馬]들을 서로 단단히 붙들어 매고 바퀴를 땅에 묻고서 적에게 그 방비를 파괴당하지 않으려 해 봤자 최후의 의지가 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의지가 되는 것은 오로지 필사적으로 하나로 뭉친 병사들의 마음이다."
++++++++++++++++++++++++++++++++++++++++++++++++++++++++++++++++
[간담상조(肝膽相照)] 肝: 간 간, 膽: 쓸개 담, 相: 서로 상, 照: 비칠 조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인다는 뜻. 곧 ① 상호간에 진심을 터놓고 격의 없이 사귐. ② 마음이 잘 맞는 절친한 사이.
[유사어] 피간담(披肝膽).
[출전] 한유(韓愈)의 <柳子厚墓誌銘 designtimesp=26610>
-------------------------------------------------------------------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당대(唐代)의 두 명문(名文) 대가에 한유[韓愈: 자는 퇴지(退之), 768∼824]와 유종원[柳宗元 : 자는 자후(子厚), 773~819)]이 있었다. 이들은 함께 고문 부흥(古文復興) 운동을 제창한 문우로서 세인으로부터 한유(韓柳)라 불릴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당나라 11대 황제인 헌종(憲宗:805-820) 때 유주 자사(柳州刺史)로 좌천되었던 유종원이 죽자 한유는 그 묘지명(墓地銘)을 썼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는 제쳐놓고 오히려 연로한 어머니를 두고 변경인 파주 자사(播州刺史)로 좌천, 부임하는 친구 유몽득(劉夢得)을 크게 동정했던 유종원의 진정한 우정을 찬양하고, 이어 경박한 사귐을 증오하며 이렇게 쓰고 있다.
"..... 사람이란 곤경에 처했을 때라야 비로소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소 평온하게 살아갈 때는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때로는 놀이나 술자리를 마련하여 부르곤 한다. 또 흰소리를 치기도 하고 지나친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서로 양보하고 손을 맞잡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며(肝膽相照)' 해를 가리켜 눈물짓고 살든 죽든 서로 배신하지 말자고 맹세한다. 말은 제법 그럴듯하지만 일단 털 끌만큼이라도 이해관계가 생기는 날에는 눈을 부릅뜨고 언제 봤냐는 듯 안면을 바꾼다. 더욱이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쳐 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빠뜨리고 위에서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운운"
+++++++++++++++++++++++++++++++++++++++++++++++++++++++++++++++++++++++
[당랑거철(螳螂拒轍)] 螳: 버마재비 당. 螂: 버마재비 랑. 拒: 막을 거. 轍: 수레바퀴 자국 철.
사마귀[螳螂]가 앞발을 들고 수레바퀴를 가로막다, 곧 ① 허세. ② 미약한 제 분수도 모르고 강적에게 항거하거나 덤벼드는 무모한 행동의 비유.
[동의어] 당랑지부(螳螂之斧), 당랑당거철(螳螂當車轍), 당랑지력(螳螂之力).
[유사어] 당랑규선(螳螂窺蟬).
[출전]《한시외전(韓詩外傳)》<권 8(卷八) designtimesp=26624>,
------------------------------------------------------------------
춘추 시대의 이야기이다.
제(齊)나라 장공(莊公: B.C. 794∼731)이 어느 날 수레를 타고 사냥터로 가던 도중 웬 벌레 한 마리가 앞발을 '도끼처럼 휘두르며[螳螂之斧]' 수레바퀴를 칠 듯이 덤벼드는 것을 보았다.
"허, 맹랑한 놈이군. 저건 무슨 벌레인고?"
장공이 묻자 수레를 호종하던 신하가 대답했다.
"사마귀라는 벌레이옵니다.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지 물러설 줄은 모르는 놈이온데, 제 힘도 생각지 않고 강적에게 마구 덤벼드는 버릇이 있사옵니다."
장공은 고개를 끄덕이고 이렇게 말했다.
"호오. 저 벌레가 인간이라면 틀림없이 천하무적의 용사가 되었을 것이다. 비록 미물이지만 그 용기가 가상하니, 수레를 돌려 피해가도록 하라."
++++++++++++++++++++++++++++++++++++++++++++++++++++++++++++
[조령모개(朝令暮改)] 朝: 아침 조 令: 하여금 령 暮: 저녁 모 改: 고칠 개.
아침에 영을 내리고 저녁에 고친다, 곧 일관성 없는 정책을 빗대어 쓰는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평준서(平準書)〉 재정경제사장(財政經濟史章).
------------------------------------------------------
전한(前漢) 문제(文帝) 때의 일이다. 흉노(匈奴)가 자주 변방을 침략하여 약탈을 자행하니, 경작하면서 수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자연히 변방에서 수확하는 곡식만으로 충당하기에 식량이 부족하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곡식을 헌납한 사람들과, 그 곡식을 변방까지 수송할 사람들을 모집하여 벼슬을 주기로 하였다. 그 벼슬의 지위는 대서장(大庶長)까지였다. 이 조치는, 문제와 경제(景帝) 때의 어사대부(御史大夫)였던 조착(晁錯)의 헌책(獻策)을 취한 것이었음을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에서 밝히고 있다. 조착이 상소한 이 헌책은 후세에 〈논귀속소(論貴粟疏)〉라 불리게 되는데, 여기에 조령모개라는 말이 있다. 조착은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지금 다섯 가족의 농가에서는 부역이 과중하여, 노역(勞役)에 복종하는 사람이 두 사람을 내려가지 않는다. 따라서 경작하여 수확하는 것은 백 묘(畝)가 고작인데, 이 백묘는 많아야 백 석에 지나지 않는다. 봄에 경작하고 여름철에 풀 뽑고, 가을에 수확하여 겨울에 저장하는 외에, 관청을 수리하고 부역에 불려나가는 등 춘하추동 쉴 날이없다. 또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을 보내고 맞이하며, 죽은 자를 조문하고 고아들을 받고, 어린이를 기른다. 또한 홍수와 한발의 재해를 당하는 위에 갑자기 세금이나 부역을 당한다. 이것은 일정한 때도 정해져 있지 않아, 아침에 영을 내리고 저녁에 고친다(朝令而暮改).
전답이 있는 사람은 반값으로 팔고, 없는 사람은 빚을 내어 10할의 이자를 낸다. 이리하여 농지나 집을 방매(放買)하고, 아들과 손자를 팔아 부채를 갚는 자가 나오게 된다."
++++++++++++++++++++++++++++++++++++++++++++++++++++++++++++++++++++++++++++++++++++
[파죽지세(破竹之勢)] 破 : 깨뜨릴 파 竹 : 대 죽 之 : 의 지 勢 : 기세 세
대나무를 쪼갤 때의 맹렬한 기세라는 뜻으로, 세력이 강대해 감히 대적할 상대가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출전] 《진서(晉書)》〈두예전(杜預傳)〉.
-------------------------------------------------
진(晉)나라의 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 두예(杜預)가 진무제(晉武帝)로부터 출전 명령을 받아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오(吳)나라를 쳐서 삼국시대의 막을 내리고 천하통일을 이룰 때의 일이다. 출병한 이듬해 음력 2월, 무창(武昌)을 점령한 두예는 휘하 장수들과 오나라를 일격에 공략할 마지막 작전회의를 열었다. 이때 한 장수가 '곧 강물이 범람할 시기가 다가오고, 또 언제 전염병이 발생할지 모르니 일단 후퇴했다가 겨울에 다시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두예는 단호히 명령조로 대답했다. "지금 우리 군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이 높다. 그것은 마치 '대나무를 쪼갤 때의 맹렬한 기세[破竹之勢]'와 같다. 대나무란 일단 쪼개지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칼날을 대기만 해도 저절로 쪼개지는 법인데, 어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단 말인가." 두예는 곧바로 군사를 재정비하여 오나라의 도읍인 건업(建業)으로 진격하여 그야말로 파죽지세처럼 몰아쳐 단숨에 건업을 함락시켰다. 오왕 손호(孫晧)는 손을 뒤로 묶고 수레에 관을 싣고 사죄의 뜻을 보이며 항복해왔다.
이리하여 진나라가 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두예는 오나라를 평정한 공으로 당양현후(當陽縣侯)에 봉해졌으나, 만년에는 학자로서 학문과 저술에 힘을 기울여 《춘추석례(春秋釋例)》《좌전집해(左傳集解)》 등의 저서를 남겼다. 오늘날 이 말은 거침없이 일이 잘 풀리거나 처리됨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세여파죽(勢如破竹)', '영도이해(迎刀而解)'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
[전전반측(輾轉反側)] 輾: 轉: 구를 전 反: 돌이킬 반 側: 옆 측
생각과 고민이 많아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다. 전(輾)은 반쯤 돌아 몸을 모로 세우는 것이고, 전(轉)은 뒹군다는 뜻이다. 반(反)은 뒤집음, 측(側)은 옆으로 세운다는 뜻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그리워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시경(詩經) '국풍(國風)'편 관관저구(關關雎鳩).
--------------------------------------------------------
참차행채(參差荇菜) 올망졸망 마름 풀 따려고
좌우유지(左右流之) 이리저리 찾는다.
요조숙녀(窈窕淑女) 아리따운 아가씨
오매구지(寤寐求之) 자나깨나 그리며
구지부득(求之不得) 구해도 얻을 수 없어
오매사복(寤寐思服) 자나깨나 그 생각뿐
유재유재(悠哉悠哉) 끝없는 이 마음
전전반측(輾轉反側) 잠 못 이뤄 뒤척이네]
+++++++++++++++++++++++++++++++++++++++++++++++++++++++++++++++
[와신상담(臥薪嘗膽)] 臥: 누을 와 薪: 섶 신 嘗: 맛볼 상 膽: 쓸개 담.
섶에 누워 자고, 쓸개를 맛보다, 곧 원수를 갚으려고 온갖 고초를 참고 견딤을 비유.
-----------------------------------------------
주 경왕 24년 오왕 합려는 월왕 구천과 취리의 싸움에서 싸워, 월의 군략에 걸려 패했다. 합려는 적의 화살에 맞아 손가락에 상처를 입었는데 패주하는 바람에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겨우 경이라는 곳까지 도망쳐왔으나, 갑자기 그 상처가 악화되어 죽게 되었다.
임종 때 그는 태자인 부차에게, 반드시 월에 복수를 하여 자기의 분함을 풀어주도록 유언 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오왕이 된 부차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야겠다는 굳은 결의로 밤마다 장작 위에 누워, 아버지의 유한을 새롭게 하며 복수심을 갈고 갈았다. 그는 자기 방 앞에 사람을 세워두고 자기가 출입할 때마다 이렇게 소리쳐 말하게 했다.
"부차여, 네 아비를 죽인 자는 월왕 구천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그는 정말 아버지에게 말하듯이 이렇게 다짐을 하곤 했다.
"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3년 이내에는 반드시 원수를 갚겠습니다!"
이리하여 그는 낮이고 밤이고 복수를 맹세하면서, 오로지 병졸의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때가 이르기를 기다렸다.
월왕 구천은 그것을 알자, 기선을 잡아 오를 치려고, 현신 범려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군사를 일으켰다. 부차는 월나라 군사를 맞아 오나라의 부초산에서 월군을 대파하여, 구천은 패잔병을 이끌고 회계산으로 도망쳤다.
오군이 구천을 추격해서 그 산을 포위하자 진퇴양난에 빠진 구천은 '분전해서 죽기는 도리어 쉽습니다. 그러나 죽으면 그뿐입니다. 월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는 살아서 치욕을 참는 수 밖에 없사옵니다.'라는 범려의 충언을 받아들여 오왕의 신하가 된다는 조건으로 항복을 자원했다.
월왕 구천이 이렇게 항복을 요청하자 오왕 부차는 승자의 도량으로 구천을 용서했다. 구
천은 고국으로 돌아갈 수는 있었으나, 그 나라는 이제 오의 속령이고 스스로는 오왕의 신하가 된 몸이다. 전에 부차가 장작 위에 누워 망부의 유한을 되새기듯, 지금 구천은 언제나 곁에 쓸개를 매달아 놓고 기거할 때나 언제고 그 쓴 맛을 핥아, '회계의 치욕... 이것은 항복의 치욕이다.'라는 말을 되씹어 복수심을 자극했다. 그는 스스로 경작하고 부인은 스스로 길쌈하여 조의조식에 만족했으며 사람을 잘 써서 그의 충언을 듣고 언제나 마음을 닦는 고난을 참아 오로지 국력의 재흥을 꾀했다.
12년 후, 오왕 부차는 기의 황지(潢池)에 제후를 모아 놓고 맹약을 맺어 천하의 패자가 되었다.
그때까지 오래도록 은인자중하고 있던 구천은 범려와 함께 부차의 부재를 노려 느닷없이 오나라로 공격해 들어갔다. 구천은 오의 잔류군을 크게 격파했으나 아직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수는 없었다.
그 후 4년, 구천은 다시 오를 공격했다. 입택에서 월군은 오군에 대승하고 그대로 오에 머물러 각지에서 오군을 패주시켰다. 그리하여 2년 후, 다시 입택에 집결한 월군은 오의 수도인 고소에 육박, 이듬해 오왕 부차를 고소성에 포위하여 마침내 항복을 받았다.
겨우 회계의 치욕을 설욕한 구천은 부차를 용동으로 귀양 보내어 그 곳에서 여생을 보내게 하려고 했으나, 부차는 구천의 호의를 거절하고 스스로 목을 쳐 자살했다.
구천은 다시 군을 북으로 진격시켜 회하를 건넜으나 제, 진의 제후와 서주에서 만나고 오를 대신해서 천하의 패자가 되었다.
++++++++++++++++++++++++++++++++++++++++++++++
[결초보은(結草報恩)] 結: 맺을 결 草: 풀 초 報: 갚을 보 恩: 은혜 은.
죽은 사람의 혼백이 풀을 맺어 은혜를 갚다, 곧 죽어서라도 은혜를 갚음을 의미.
-----------------------------------------------------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晋)나라에 위무자(魏武子)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 아름다운 첩이 있었는데 아들 위과(魏顆)에게 자기가 죽으면 그 서모를 개가토록 주선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그가 정말 병이 들어 병세가 악화되면서 정신이 혼미해지자 위무자는 위과에게 자기가 죽으면 그녀를 순장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위무자가 죽은 뒤 위과는 정신이 혼미했을 때의 유언을 따르지 않고 서모를 개가시켜 순사를 면하게 하였다.
BC 594년 진(秦)나라가 진(晉)나라를 침공해와 위과는 장수가 되어 전쟁에 나가 진(秦)나라의 천하장사인 두회(杜回)와 싸우게 되어 모두들 두려워서 사기가 떨어져 있어 전세가 매우 불리했다. 그런데 그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맹렬히 공격해오던
진(秦)나라 군사들이 갑자기 풀밭에 나뒹굴어 지며 뒤엉켜버리는 것이 아닌가!
위과가 지휘하는 진(晉)나라 군사들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해서 위과는 큰 전공을 세우게 되었다. 이것은 그가 살려준 서모 아버지의 망혼(亡魂)이 나와 적군의 앞길에 풀을 잡아 매어두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풀을 잡아맨(결초) 매듭에 진(秦)나라 기마병의 말들이 넘어지면서 우왕좌왕 했던 것이다.
춘추시대 晉나라의 위무자(魏武子)에게 젊은 첩이 있었는데 위무자가 병이 들자 본처의 아들 과(顆)를 불러 "네 서모를 내가 죽거들랑 改嫁시키도록 하여라."하였으나, 위무자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 위독한 지경에 이르게 되자 아들 과(顆)에게 다시 분부하기를 "내가 죽거들랑 네 서모는 반드시 순사(殉死)1)케 해라."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위무자가 죽자 아들 과(顆)는 "사람이 병이 위중하면 정신이 혼란해지기 마련이니 아버지께서 맑은 정신일 때 하신 말씀대로 따르리라."하고는 아버지의 처음 유언을 따라 서모를 改嫁시켜 드렸다.
그 후 진환공(秦桓公)이 晉나라를 침략하여 군대를 보씨(輔氏)에 주둔시켰다.
보씨의 싸움에서 위과(魏顆)는 晉의 장수로 있었기 때문에 秦의 大力士 두회(杜回)라는 장수와 결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위과는 역부족이었다. 그때 한 노인이 두회의 발 앞의 풀을 엮어(結草) 그가 넘어지게 하여 위과(魏顆)가 두회를 사로잡을 수 있게 하였다.
그날 밤 위과의 꿈에 그 노인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 서모의 애비되는 사람으로 그대가 아버지의 유언을 옳은 방향으로 따랐기 때문에 내 딸이 목숨을 유지하고 改嫁하여 잘 살고 있소. 나는 당신의 그 은혜에 보답(報恩)하고자 한 것이오."
+++++++++++++++++++++++++++++++++++++++++++++++++++++++++++
[일취월장(日就月將)] 日: 날 일 就: 나아갈 취 月: 달 월 將: 나아갈 장.
날로 이루고 달로 나아가다. 곧 학업이 나날이 진보해 나아감을 가리킨다.
[출전] 《시경(詩經)》〈주송(周頌)〉경지(敬之).
------------------------------------------------
주나라 무왕의 태자로 있던 성왕은 아버지가 죽은 뒤에 숙부인 주공단의 보좌로 왕위에 오르지만 다른 숙부인 관숙과 채숙 등이 주공단이 성왕의 왕위를 빼앗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등으로 고비를 맞이하기도 했다.
결국 주공단의 헌신적인 섭정을 받으면서 성장한 성왕은 성년이 되어 종묘에 제사를 지내게 되자 자신을 회고하여 스스로 자문자답하며 스스로를 경계하는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여기에 일취월장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유여소자(維予小子) 헤아리건데 소자는
불총경지(不聰敬止) 총명하지 못해 공경을 다하지 못하지만
일취월장(日就月將) 날로 이루고 달로 나아가
학유집(學有緝) 학문을 밝게 빛내어
희우광명(熙于光明) 밝은 빛으로 이 세상 비추리
+++++++++++++++++++++++++++++++++++++++++++++++++++
[상전벽해(桑田碧海)] 桑: 뽕나무 상 田: 밭 전 碧: 푸를 벽 海: 바다 해
[출전]《신선전(神仙傳)》‘마고선녀이야기/ 유정지(劉廷芝)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
--------------------------------------------
‘마고선녀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선녀 마고가 왕방평(王方平)에게 “제가 신선님을 모신 지가 어느 새 뽕나무 밭이 세 번이나 푸른 바다로 변하였습니다[桑田碧海]. 이번에 봉래(逢萊)에 갔더니 바다가 다시 얕아져 이전의 반 정도로 줄어 있었습니다. 또 육지가 되려는 것일까요.”
또한 ‘대비백두옹’은 다음과 같다.
낙양성 동쪽 복숭아꽃 오얏꽃[洛陽城東桃李花]
날아오고 날아가며 누구의 집에 지는고[飛來飛去落誰家]
낙양의 어린 소녀는 제 얼굴이 아까운지[洛陽女兒惜顔色]
가다가 어린 소녀가 길게 한숨짓는 모습을 보니[行逢女兒長嘆息]
올해에 꽃이 지면 얼굴은 더욱 늙으리라[今年花落顔色改]
내년에 피는 꽃은 또 누가 보려는가[明年花開復誰在]
뽕나무밭도 푸른 바다가 된다는 것은 정말 옳은 말이다[實聞桑田變成海].
상전벽해는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의미에서 자신도 모르게 세상이 달라진 모습을 보고 비유한 말이다. 또한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될 수 있을지라도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세월의 무상함을 연상케 하는 고사 성어이므로, 그 날 그 날을 최선을 다하여 삶을 누리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살이이다. 상전 변성해(桑田變成海)라고도 한다. 동의어는 창해상전(滄海桑田), 창상지변(滄桑之變), 상창지변(桑滄之變), 비슷한말은 능곡지변(陵谷之變:언덕과 골짜기가 서로 바뀐다는 뜻), 고안심곡(高岸深谷:높은 언덕이 무너져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짜기가 언덕으로 변한다는 뜻)이다.
+++++++++++++++++++++++++++++++++++++++++
[창해일속(滄海一粟)] 滄: 푸를 창. 海: 바다 해. 一: 한 일. 粟: 조 속.
푸른 바닷속에 있는 좁쌀 한 톨이라는 뜻.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것을 의미한다.
[유사어] 구우일모(九牛一毛).
[출전] 소식(蘇軾)《적벽부(赤壁賦)》
--------------------------------------------------------------
북송(北宋)의 명문장가 소식(蘇軾:소동파)은 당송 8대가의 한 사람으로 산문과 시에 뛰어났다. 그가 지은 《적벽부(赤壁賦)》는 천하에 다시 없는 명문이다. 두 편으로 된 이 부(賦)는 그가 황주(黃州)로 귀양갔을 때 지은 것으로 모든 세상사에 연연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신선에 기탁하여 그리고 있다.
《적벽부》에 한 내용이다.
"‥‥조조는 진실로 일세의 영웅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영웅들이 지금은 어디에 있느냐? 영웅들도 그처럼 역사의 한 토막으로 사라져 버렸는데 하물며 그대와 나처럼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면서 물고기와 새우들과 짝하고, 고라니, 사슴들과 벗하고 있는 천민들이야 오죽하랴.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호리병 속의 술을 서로 권하고 있으나 우리의 인생이 하루살이처럼 짧고 우리 몸은 푸른 바닷속에 있는 한 톨 좁살(滄海一粟)같구나. 아, 우리의 삶이란 너무도 짧구나. 어찌하여 장강(長江)처럼 다함이 없는가."
여기서 바로 '창해일속(滄海一粟)'이란 말이 나왔다.
+++++++++++++++++++++++++++++++++++++++++
[목불식정(目不識丁)] 目: 눈 목 不: 아니 불 識: 알 식 丁: 넷째 천간 정/ 장정 정
한 일자와 장정 정자도 알지 못하다, 곧 한 일자와 장정 정자처럼 서로 전혀 다른 글자도 구별할 줄을 모른다는 뜻으로 매우 무식함을 경멸하여 하는 말임.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말과 같음.
[동의어] 불식일정자(不識一丁字).
[출전] 당서(唐書) 장홍정전(張弘정傳).
---------------------------------------------------
당나라 때의 변방이던 삼진의 중심지 유주(幽州) 절도사 유총(劉總)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절도사 자리를 정부에 내어 놓게 되었는데 그는 그때 정부에 몇 가지 조건을 달았다. 후임에는 장홍정을 임명하고 주극융을 우대해 줄 것, 그의 부하들에게 백만 관의 위로금을 지급하고 주민들에게 1년 간 세금을 면제시켜 줄 것 등이었다.
정부에서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그가 사퇴한다고 하는 것만 고마워 그의 조건을 수락하기로 하고 이를 승인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의 조건들을 들어주지 않고 차일피일 하므로써 그곳 주민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다. 특히 절도사로 새로 오게 된 장홍정은 오랫동안 견실한 기풍에 젖어있던 주민들을 무시하는 듯 화려한 수레를 타고 거들먹거리며 부임하더니 오자마자 역적을 응징한다면서 그곳 주민들이 영웅시하는 안록산의 묘를 파헤치는 것이었다. 장홍정은 또 주민들에게 주기로 한 위로금 중 20만관을 착복하고 그가 데리고 온 위하 막료들은 방탕한 생활을 하는 데다가 그곳 주민들을 조롱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천하가 태평한 지금, 너희들처럼 두어 사람이 당겨야 할 강궁(强弓: 억센 활)을 쏠 수 있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일자(一字)와 정자(丁字)를 구별함만 같지 못하다.”
이처럼 현지 주민들을 무시하여 민심을 잃던 장홍정은 반란을 자초하고 쫓겨 갔으며 후임으로 주극융을 임명하므로써 사태가 겨우 수습되었다고 한다.
+++++++++++++++++++++++++++++++++++++++++++++++++++++++++++++++++
[수주대토(守株待兎)] 守: 지킬 수 株: 그루 주 待: 기다릴 대 兎: 토끼 토.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은 토끼를 한 번 보더니 매일 일도 하지 않고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리다, 곧 낡은 관습만을 고집하여 지키고, 새로운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다.
출전: 《한비자(韓非子)》
--------------------------------------------------------------
송(宋)나라에 한 농부가 있었다. 하루는 밭을 가는데 토끼 한 마리가 달려가더니 밭 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머리를 들이받고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것을 본 농부는 토끼가 또 그렇게 달려와서 죽을 줄 알고 밭 갈던 쟁기를 집어던지고 그루터기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토끼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공연히 농사만 망치고 말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
[호가호위(狐假虎威)] 狐: 여우 호 假: 거짓 가 虎: 범 호 威: 두려울 위.
호랑이의 위세를 빌리는 여우, 곧 남의 권세에 의지하여 으스대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동의어] 가호위(假虎威)' '가호위호(假虎威狐)
---------------------------------------------------------
기원전 4세기 초, 초(楚)나라 선왕(宣王) 때의 일이다. 하루는 선왕이 신하들에게 물어보았다.
"듣자하니, 위나라를 비롯하여 북방의 여러 나라들이 우리 재상 소해휼(昭奚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게 사실이오?"
위나라 출신으로 선왕 밑에서 벼슬을 하고 있던 강을(江乙)이란 변사가 얼른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북방의 여러 나라들이 어찌 한 나라의 재상에 불과한 소해휼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호랑이가 여우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교활한 여우가 호랑이에게 말하기를 '나는 천제(天帝)의 명을 받고 내려온 사자(使者)다. 네가 나를 잡아먹으면 나를 백수의 왕으로 정하신 천제의 명을 어기는 것이니 천벌을 받게 될 거다. 만약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내가 앞장설 테니 내 뒤를 따라와 봐라. 나를 보고 달아나지 않는 짐승은 하나도 없을 테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호랑이는 여우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여우의 말대로 만나는 짐승마다 모두 달아나기에 바빴습니다. 사실 짐승들을 달아나게 한 것은 여우 뒤에 따라오고 있던 호랑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호랑이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북방의 여러 나라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일개 재상에 불과한 소해휼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초나라의 병력, 곧 임금님의 강한 군사력입니다."
이상은 '전국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사실 강을은 그 동안에도 위와 비밀히 연락을 하고 있던 위인이었다. 그러한 그에게 눈 위의 혹이었던 자는 초의 왕족 출신으로 대대로 내려오는 중신 소해휼이었다. 소해휼은 강을이 위와 내통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으므로 소해휼을 모함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호가호위'입니다. '해휼은 위로부터 뇌물을 받았습니다.', '나를 제거하려고 합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선왕의 귀에다 대고 중상모략을 하는 것이었다. 강을이야말로 '호위'를 빌리려고 들먹들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한 것도 그 때문인 것이다.
++++++++++++++++++++++++++++++++++++++++++++++++
[환골탈태(換骨奪胎)] 換: 바꿀 환, 骨; 뼈 골, 奪: 빼앗을 탈, 胎: 아이 밸 태/ 애기 보 태.
뼈를 바꾸고 태를 벗겨 면모를 새롭게 함.
[출전]《냉재야화(冷齋夜話》
---------------------------------------------
원래는 고인(故人)이 지은 시문(詩文)의 뜻을 취해 어구나 결구(結句)만을 바꾸어 자기 작품인 것처럼 꾸미는 것을 가리켰다. 요즘은 용모나 차림새가 몰라보게 좋아졌을 때 많이 쓰는 표현이 되었다.
환골탈태(換骨奪胎)란 뼈를 바꾸고 태(胎) 벗긴다는 뜻으로 본디 도가(道家)에서 나온 말이다.그들에 의하면 사람과 신선이 외형상에서 다른 점은 뼈와 태(胎)에 있다고한다.따라서 신선(神仙)이 되기 위해선 인간(人間)이 가지고 있는 속된 뼈(俗骨)와 평범한 태(凡胎)를 일신(一新)하지 않으면 안된다.물론 그것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신선술(神仙術)을 익히면서 신령(神靈)스런 단약(丹藥)을 먹어야 가능하다.또 이상한 술을 마셔도 되었다.
왕자교(王子喬)는 본디 주(周)나라 영왕(靈王)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직간(直諫 )을 서슴지 않아 평민으로 폐위(廢位)되고 말았다.
어느날 강에서 뱃놀이를 하고 있는데 화려한 꽃으로 장식된 배가 두둥실 떠내려오고 있었다.배 위에는 모두 일곱 명의 도사(道士)가 타고 있었다. 그 중 한 道士가 그를 끌어 올려 배에 태우더니 이상한 술병을 가져 왔다.둘은 실컷 술을 마셨는데 왕자교(王子喬)가 따르면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술이 도사(道士)가 따르면 끝없이 흘러 나왔다.환골탈태(換骨奪胎)되는 술이었던 것이다.물론 후에 그는 신선(神仙)이 됐다고 한다.
북송의 시인인 황정견(黃庭堅)이 시의 창작 방법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시의 뜻은 무궁하나 사람의 재주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유한한 재주로 무궁한 시의(詩意)를 따르는 것은 도연명이나 두보 같은 재능으로도 걸작을 써내기에 부족하다.
그러나 시의는 그대로 따르되 그 시어(詩語)를 바꾸므로써 새로운 시를 지을 수 있는데 이를 환골법이라고 이른다. 한 편 그 시의를 본떠서 이를 형용하는 것은 탈태법이라고 한다."
여기서 환골탈태(換骨奪胎)는「면모를 일신하다」는 뜻을 가지게 됐다.즉 종전의 낡고 평범한 틀을 모조리 갈아치움으로써 보다 새롭게 재탄생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