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각들

오후산책

와인매니아1 2010. 12. 1. 09:18

 

 

 

 

 

 

 

 

지구의 이상 기류로 올 여름은 유난히 무덥고 지루했다

10월의 가을도 “지금 가을 맞아? ”할 만큼

더위가 한풀 꺽일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아 민소매를

한쪽에 접어두어야 하나마나로 잠시의 경미한 혼돈을 겪기도 했는데

요사이 날씨가 심심찮게 또 카오스현상으로 밀어넣게 한다


며칠 2-3일 낮동안은 겨울 같지 않는 따사로운 날의 연속이라

얌전히 앉아 있다보면 공연히 억울하기까지 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포근한, 파커와 패딩의 두꺼운 옷은

겨울도래하기 전에 꺼내둘 만큼 미리 유비무한을 실천하고 있었지만

정작 입어야 할 때는 아직 이른 모양이다


요즘 나보다 우리집 개들이 더 살맛이 난 것 같다.

이른 새벽 산책 한번과 오후 3시쯤이면 어김없이 산책을 나가는 편이다.

말티스 2마리는 온실속에 화초처럼 집에서 어리광만 부리고

화장실에서 배변 훈련이 되지 않아 산책으로 용변을 해결하곤 한다.

배변훈련의 어려움이 때론 바깥볼일을 서둘러 접어야 할 만큼

이 산책과 생리현상이 참으로 곤욕스러울때도 있지만 또 한편

사랑하는 이네들과 너긋하게 산책하는 즐거움도 있는 편이다.


말로 안할 뿐이지 감정을 여실히 들어내는 건 사람보다 더 정확하다.

남편보다는 나와 산책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남편은 대개 15분 정도 공원에 머물고 오는 형식적인 것이라면

나와는 양반걸음처럼 느긋하게 걷기도, 때론 낯선 개들을 보면

번개처럼 뛰어가기도, 색다른 경계와 함께 조심스러워하는 모습, 등

그들과 호흡을 맞추느라  난 거리 중간에서 한동안 음악에 취하기도 하고

공원에서는 따뜻한 벤치에 앉아 즉흥적인 대화(?)도 나눌 때도 있다

무언으로 주고받는 그들과의 눈빛언어는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즉 교감이 통한다고 할까? (그들도 내 언어를 알아듣는다고 생각한다)

비록 일방적 나의 외침이고 독백에 불과하지만 크게 답답하진 않다.


한 시간 이상을 산책하다보면 나 역시 뒤늦은 성찰의 시간도 가져보곤 한다

평소 내가 중요하게 느끼는 삶의 의미, 가치, 희망 등

나름대로 설정한 리스트가 많았는데  살다보면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듯

나의 무게중심에도 변화가 생기는 모양이다.

예전에 비해 막내 녀석 대학문제도 예각처럼 뽀족했건만 이제는

소금 먹은 배추처럼 풀이 죽어 많이 관대(?)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여전히 컴퓨터게임에  시간 투자하는 꼴은 눈에 가시처럼 비치니

아직도 내가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 더디고 힘들기에

앞으로도 계속 수양을 더 쌓아야 하지 않을까싶다.


일주일간 중앙 아트홀에서 햄릿 연극을 시작하고 있었다.

저녁에 혼자라도 갈려고 했는데, 아이랑 노래방 가자고 그 전날 언급했던 터다

그런데 필독서라고 갖다 준 책에는 손도 대지 않고 여전히

티브이와 컴퓨터만 끼고 있는 모습을 접하자 속에서 부아가 치민다.

급기야 노래방 가자는 이야기는 입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이러고도 내가 어미라는 호칭과 역할이 가당한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