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개

[50/50] 인생의 쓴부분과 단부분이 다 녹아있는 영화

와인매니아1 2011. 11. 29. 20:58

[50/50] 인생의 쓴부분과 단부분이 다 녹아있는 영화

 50/50 


[100%의 진짜 인생이 시작되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고 꾸준히 운동을 하며, 사망률 세계5위가 교통사고라는 이유로 운전은 커녕 면허도 없다고 천연덕 스럽게 말하는 남자가 있다. 이제 스물일곱, 라디오 방송국 PD로 일하고 있는 아담(조셉 고든 래빗)이다. 그런데 어느 날, 척추암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는 판정을 받는다. 환자를 앞에 두고 녹음기에 환자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의사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다. 생존 확률은 50%이란다. 바꾸어 말하면, 죽을 확률도 50%라는 것. 충격적인 소식은 평범했던 아담의 인생을 180도 바꾸어 버렸다. 이런 상황이 되면 쿨하게 애인을 보내주어야 하는 것이 많지만, 아직은 기댈 곳이 필요한 아담에게 애인 레이첼(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은 변함없이 옆에 있어주겠다 말한다. 아담의 부모도 누구보다 이런 상황을 슬퍼하고 위로하고, 그의 절친 카일(세스 로건)은 예전과 변함없이 여자와 섹스 이야기에 열중해 있다. 한술 더 떠 암환자라는 것을 이용해 동정표를 얻어 여자들과 어떻게든 엮일 생각만 하는 별난 친구다. 


단지 척추암에 걸렸을 뿐,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던 아담의 일상도 조금씩 흔들리게 된다. 믿었던 애인 레이첼이 그의 곁을 떠나게 되고, 함께 항암치료를 받으며 어제까지 함께 웃고 이야기를 하며 지냈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되면서, 그의 마음은 조금씩 동요하기 시작한다. 듣지 않는 항암치료도 괴롭고, 초보 심리 치료사의 어색한 위로도 못마땅하고, 불안하고 두려운 자신의 마음도 하나 이해 못하고 여자나 꼬시라는 친구 카일이 원망스럽기만 하며, 엄마의 잔소리도 귀찮아진다. 

50대 50이라는 확률이 선고된 그 날부터, 아담의 인생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지만, 어쩌면 아담에게는 100%의 진짜 인생이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곁을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며 남아있는 사람도 있고,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가며 위로가 되어주는 사람도 있다.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인생은 아담에게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행복하고 평범했던 삶 이면에 존재하고 있던 괴로움, 슬픔, 불안과 마주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 준 셈이다. 미친 듯이 운전도 해보고, 클럽에 가서 여자도 꼬셔보고, 서툴지만 사랑도 고백해보고, 살면서 잘못한 일은 없었는지, 못해본 일은 없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도 된다. 인생은 그렇게 쓰기도 하고 달기도 한 삶이 반반씩 섞여있다는 것을 아담이 조금씩 깨달아가는 순간, 진짜 이별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은 어느새 가까이 와 있다. 이제 막 100% 인생과 마주하게 된 아담이 냉정한 척 괜찮은 척 마음먹으려 애써보아도, 어쩔 수 없이 밀려오는 불안감과 두려움은 그를 서서히 잠식해간다. 과연 나는 생존확률 50%를 이기고 다시 세상과 마주할 수 있게 될까. 수술 후에 잘 깨어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고민들. 아담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고민들




[시종일관 유쾌한, 그러나 진정성 있는 이야기]


<50/50>이 주목받는 이유는 암환자를 다룬 영화답지 않게 장면 장면에서 보여지는 신선한 위트 때문일 것이다. 암환자를 다룬 영화들은 무겁고 심각하고 눈물을 쏙 빼는 신파연기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거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시종일관 유쾌하다.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를 밀어야 하는 아담 옆에서 카일은 여전히 촐싹거리고 있고, 곁에서 함께 하겠다던 레이첼이 바람을 피우고 떠나가자 아담과 카일이 레이첼의 배신에 '복수'를 하는 장면에서는 묘하게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한다(계란도 좋고, 칼도 좋고, 도끼도 좋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을 부정하고 싶어 가슴 쏙에 쌓아두었던 울분을 내지르는 아담을 보면서 가슴 한 켠이 싸해지기도 하고, 수술 후에 마취에서 꼭 깨어나게 해달라고 하는 아담을 보면서 조용히 손을 잡아주고 싶기도 하다. 내담자와 치료자가 사적관계로 진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담과 캐서린(안나 켄드릭)이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 보일 때도, 시종일관 카일이 아담 곁에서'촐싹거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드러나는 장면에서는 묘하게 웃음 짓게 되는 이유도 있다. <50/50>이 매 순간 관객들과 솔직한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마도 이 영화가 실제 암환자였던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암환자가 겪게 되는 충격-부정-저항-수용의 정서의 변화 단계를 영화는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진정성'이란 어쩌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 않게,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이런 소재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이 영화가 호평을 받는 것은 아닐까. 


아담 역을 맡은 조셉 고든 래빗은 또 한 번 섬세한 연기를 선보였다. 배우에게 머리 하나 미는 것쯤은 이젠 일도 아니어서 '삭발연기투혼'이라는 단어에 이제 '투혼'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이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암환자라는 배역에 더 몰입하기 위해 직접 삭발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도 말라가고 안색도 안 좋아 보이는 암환자를 연기하기 위해 나름 부단한 노력을 했으리라. 한국에선 그의 이름을 따 '조토끼'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진 그가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앞으로도 꽤 많은 팬들의 관심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