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각들

7번째 아들에게

와인매니아1 2012. 1. 8. 19:40

사랑하는 준호야,

휴일날 날씨가 풀려서 다행이다 싶구나,

훈련 끝에 맞는 휴일은 다소 긴장이 좀 풀렸을거야,

늘어지게 늦잠도, 티브이시청도 편안하게 하면 좋을텐데, 아무렴 그런 일은 어려울거야.

일요일 엄마 아빠에게 있었던 스캐쥴을 알려줄까?

지난주에 지나가듯 슬쩍 말했던 기차여행을 해봤구나,

아무 계획없이 나선 경주행이라 뭘. 어떻게, 무엇을 정하지 않고 그냥 떠나 본거지,

포항역에 도착하니 30분 여유가 있어 역앞 탑마트에서 이것저것 간식거리를 사고 특히

엄마 어릴 적 생각에 기차에서 먹은 삶은 달걀이 기차 향수를 불러와 그것도 사보았어.

기차 타기전 경주에서 맛잇는 점심을 사먹자라는 생각은 애초 물건너 가버린 행위였음을

나중에 알았지,

무궁화호기차는 나의 선입견을 뒤엎고 많이 깔끔하고 조용했단다, 모처럼 기차를 타보았어

엄마 아빠는 마치 먹기 위해 기차를 탄 사람처럼 빵, 우유, 계란 열심히 먹었고

이런저런 대화 나누는 가운데 금방 경주에 도착했단다.

챙겨 간 먹거리는 제법 먹었음에도 양팔에 두개꾸러미가 전혀 무게감이 줄지 않았더구나. 나중에 간식은 밉상덩어리 웬수가 되어 경주역을 나설 때는 할수 없이 역보관함에 1200원의 거금을 넣고 잠시 보관해두고, 아빠랑 경주역 근처 대능원. 일명 천마총으로 알려진 곳으로 산책을 했다,

마치 서울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 착각이 들만큼 팔짱끼고 걷는 산책도 꽤 괜찮았어,

중간에 흰말이 관광객을 싣고 달리는 마차도 보고, 거대한 능도 구경하면서 경주의 겨울햇살을 쬐고 왔단다.


포항에 도착한 시간이 5시 20분,

그러니 경주에서 2시간 머물고 온 셈이지. 이왕 경주 왔으니 유명한 경주 황남빵을 맛보고 싶어 가게를 찾았는데 여기저기 원조, 전통, 역사, 등등 모두 자기가 최초의 집이라고 적혀 있어, 우린 70년된 가게라는 간판에 끌려 입구에 갔는데 손님이 인산인해라 결국 좀 떨어진 곳에서 30개에 21000원 , 덤으로 하나 주는 것도 없었어

가게에 줄선 곳은 동생집이고 우리가 구입한 곳은 형집이라고 하면서 기술은 그대로 전수받아도 맛은 조금 다르다고 주인이 그랬어, 우린 그 자리에서 따끈따끈 갓구운 빵을 몇 개 먹고 돌아왔단다.


실은 시간이 넉넉해 포항 스타벅스에 들러 차라도 한잔 할 요량이였는데,

일요일 아침 아빠가 보람이 아코를 머리 깎였기에 그들이 걱정이 되었고,

아빠도 얘들 때문에 무리했는지 감기기운이 있어서, 또 따끈한 빵을 형에게 먹일 요량 등등 우린 경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진 않았어,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우린 귀한 깨달음을 얻었어, 가벼운 나들이였음에 짐이 결국 3보따리가 되었으니 앞으로 먹을 만큼 그 자리에서 사먹고 들고 오지 말자고 아빠랑 의견일치를 했단다,

어떤 여행이던 짐에 치여서 여행이 부담스러워서는 안되겠다는 경험을 얻는 셈이지.

준호야, 사람에게는 경험이 참 중요하단다,

이런 가벼운 여행을 함으로서 뭐든 산뜻하게 가볍게,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것도 깨닫게 되니 뭐든 경험은 좋은 거야,

너 역시 지금은 조금 격리되어 갑갑하고 힘들 수 있어도 이 모든 것이 나중에 좋은 경험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은 이다음 천천히 깨닫게 될테지, 사랑한다. 아들아. 다음 또 연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