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각들

무서운 편견

와인매니아1 2002. 6. 20. 01:07


획일성은 유연성이 없다. 그 획일적인 개념의 틀이 누구의 경우에 맞
아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모두 자신의 잣대로만 상대를 평가하다 보니
도무지 나와 통하는 면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로 다른 점을 인
정하려 들지 않아 갈등도 생기고 기준과 틀에 얽매여 위험한 일도 생기
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자원 봉사를 나간다.
월드컵 행사에 맞춰 역 앞에 관광안내소를 설치했는데, 포항을 찾는
이에게 명승지와 교통 안내를 도와주는 일이다. 순전히 자원자로 구성
되어 있어 시간에 쫓기거나 경제에 위협을 받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나의 경우는 약간 특이한 경험이 자원봉사 일을 자청하게 되었다. 요즘
내 생활에 의미와 보람 있는 일이 뚜렷이 없다보니 내 삶에 불만의 눈
이 뜨고 있었다. 자의의 인식은 자기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다고 어떤
소속감 없는 불안이 엄습했다. 주부들은 소속감이 헐거워지는 느낌에,
혹은 소외감으로 모임이나 친구와 수다, 탐식, 화투와 쇼핑, 등 그런 일
로 마음의 공허감과 갈등을 메우러한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생활 가운
데 참다운 행복, 가치있는 삶을 흉내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 우연히 '아시아 국제자원봉사 대회'라는 곳에 합류하게 되었다.
국제대회가 한국에서 열리게 된 것도 처음이고, 더욱이 부산에서 개최
되어 참여결정이 쉬웠다. 짧은 영어에 다소 언어 두려움은 있었지만 동
시통역이 가능하다는 점을 믿으며, 최근 건조한 내 삶에 색다른 경험을
보탤까 싶어 참여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느낀 건 봉사엔
나이와 능력과 여건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마
음이 더 중요한 것이지 어떠한 구비조건이 갖추었을 때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아시아의 자원 봉사는 상호부조, 즉 언젠가는 자기도 봉사를 받
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선진국의 자원 봉사는 다른 사람에
대한 봉사 활동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와의 차이점이다.

물론 자원 봉사 활동이 물질적 이익과 직결되는 것이 아닌 자기 가치
실현을 위한 개인의 선택이기는 하다. 다른 사람에 대한 봉사를 함으로
서 그에 따른 정신적 만족을 얻는 점은 있다. 나이든 사람들이 자원 봉
사에 참여하는 것도 이러저러한 이유와 어쩜 한 차원 높은 삶을 지향하
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곱게 우아하게 늙고 싶다는 평소
소망대로 기회가 된다면 자원봉사에 참여하리라 각오를 가졌던 것이다.
그런 차에 관광안내의 일을 맡게 된 것이다.

이 안내는 2명이 한 조가 되어 오전, 오후 각 4시간 정도 근무를 한다.
문의가 많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에, 혹은 근무의 따분함을 위해 대화 벗
으로 두 명을 배려한 것 같았다. 근데 근무 첫날부터 문제가 발생한 것
이다. 나와 조를 이룬 여성은 이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분인데, 출근
하자마자 책상을 꿰차고서 나와는 통 말을 나누지 않는 것이다. 내가
소극적 얌전한 스타일도 아니고 또 그녀에게 실수한 것도 없는데 갑자
기 냉냉한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게 도무지 납득 할 수 없었다. 당연히
첫날은 친교의 시간이니까 서로에 대해 정보교환을 할 줄 알았다. 그런
데 그녀는 시종일관 나에게 무관심하였고 반면 담당 공무원이 왔을 때
는 친절하게 말을 잘 건넸다. 또한 방송국에서 촬영 나왔을 때도 적극
적이지 않던가. 그런 그녀가 유독 나에게만 썰렁하게 행동한 것이다.

마침 구세주처럼 내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내 자료집도 한시간만
에 다 둘려보았으니 이제 지나가는 사람의 인물품평만 남은 것이었다,
전화 온 아이에게 햄버그 사 줄테니 어미가 보던 책을 갖다 달라고 했
다. 한 걸음에 달려온 아이가 모처럼 말동무를 만난 것 마냥 반가웠다.
주렁주렁 이야기를 매달고 아이를 보낸 후 그녀에게 줄 콜라한잔을 챙
겨 갔다. 드시라고 하니 또 먹지 않겠단다. 갈수록 태산이라고 그녀에
대한 관심을 이제는 꺼두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앞으로 자원
봉사를 계속 해야 할지 회의가 들었다. 일주일 한번 근무하는데 말에
인색한 그녀를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걸음마 단계인데 다
음 근무 때의 상황을 살피고 난 후 봉사를 접기로 했다.

다음 주, 여전히 냉담한 그녀를 만나는 게 상큼하지 않아 좀 늦게 출
근을 했다. 마침 오전 팀이 총무를 보고(내가 총무임) 가겠다고 기다리
고 있어 자연스레 4명이 10분 정도 대화를 나누었다. 조금 후 둘만이
남게 되자 이상하게 그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총무를 오해했다고.....
이유인즉, 그녀는 내가 스타일로 보나 어디서 놀던(?) 노처녀라고, 이제
시간이 남아 자원봉사 하려나보다 생각했던 것이다, 40 중반의 자기와
대화도 통하지 않음은 물론, 개성도 강해 건방질 것이라고 일부러 말을
하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4시간 근무하는 동안 나를 살펴본 결
과 자기가 잘못 생각했노라고 오늘은 오해를 풀려고 과자까지 준비한
것이다. 어쩌구니 없는 그 말을 듣고 참 편견의 무서움을 느꼈다. 머리
와 옷 스타일이 자기와 다르고, 일반적이지 않다고 놀다(?) 온 여성이라
는 발상도 문제거니와 교육 첫날 분명 내 소개를 곁들였음에도 어찌 그
런 터무니없는 편견을 대입시켜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도무지 40중
반이라는 연륜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 역시 품고 있던 섭섭한 생각을 풀어놓고 그때의 불편한 심기를 알
렸다. 적당한 대화로서 서로에게 품은 앙금을 말끔이 씻긴 했지만 썩
유쾌하진 않다. 나를 노처녀로 젊게 봐준 것까진 고맙지만 어디서 놀았
다는 대목은 도무지 용납하기 힘들다. 품행과 언어에서 그 사람만의 인
격이 녹아 나오기 마련이고, 제스처 하나에도 경솔함이 엿보이는 법이
거늘, 더군다나 익숙치 않는 그녀에게 경박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음에
도 상대는 나를 일방적으로 매도한 것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래, 각양각
색인데 상대와 나와 다름을 인정하자고 외니까 저번 주(週)보다는 편하
다.

대화만큼 서로를 알 수 있는 무기가 어디 있는가! 내성, 외향적 성격
차이보다는, 무엇보다 편견에 너무 지배당하지 말고 약간의 대화를 시
도한 연후에 상대 인격을 가름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비록 오해의 소
지가 보이더라도 말이다, 나 역시 상대의 첫인상과 언어습관에 따라 상
종여부를 결정짓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내 판단이 맞을 수도 있지만 오
류를 범하는 경우도 생긴다. 오해를 했을 경우 짧은 내 안목을 밝히며
그 즉시 수정작업에 들어가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첫날 나를 쓸쓸하게 방치해둔 그녀가 아름답게 비칠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사명감을 갖고 근무하는 모습에 그녀를 하찮게 보진
않았다. 내가 상대를 업신여기지 않았기에 상대도 나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고 오해의 싹이 제거되지 않았나 믿는다. 그녀가 나를 오해했던 부
분을 일시에 거둘 수는 없지만 4시간 근무 중 그녀에게 내 실수담과 일
상을 들려줌으로서 그녀에게서 듣기에 과분한 칭찬까지 받았다
" 총무와 대화를 해 보니 참 배울게 많다,"
회장과 총무가 누구보다 호흡이 잘 맞아야 하는데 다행히 참 편한 사람
이라 잘됐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진의가 담긴 건지 모르겠지만.....

다음 주에 다시 만나자는 내 말에 그녀는 자주 전화하자고 내 말에 더
기름을 부어준다. 우린 웃는 얼굴로 작별을 했지만 앞으로도 그녀처럼
나를 무서운 편견을 적용시켜 슬프게 할지도 모른다. 세상 더 오래 살다
보면 애매한 소리와 야릇한 오해도 더 받을텐데 걱정스럽다.


6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