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 1
건망증 1
모든 사람이 시간이라는 터널을 통과한다. 도정된 곡식알처럼
윤기나든 젊음도 30대로 접어들면 쓸쓸한
사항들이 곱빼기로 붙
는다. 그 중에 하나가 섭리처럼 찾아오는 건망증이 아닌가 싶다.
이것이 나만 그러면 억울 할텐데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
증세를 경험하고 있다니, 불행이란 생각보다 세월의 속도에 비례
되는 것이라고 요즘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싸움을 통해 사랑을 확인하고 고통을 통해 삶의 진실을
터득한다. 우리 집에는 큰 녀석이 엄청 말을 듣지
않는 편이다.
평소 고래고기를 먹지도 않지만 집에서 아이들에게 고래노래를
잘도 부른다. 고래고래 고함으로 흥분 하다보면 이성은
슬그머니
일상의 바퀴에서 벗어나고 헝클러진 감정만 오뚜기처럼 발딱 일
어난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이제 빈 그루터기처럼
살아
온 우리네 어머니를 전혀 닮지 않는 나는 아이와의 갈등이 늘
숙제처럼 머리를 짓누른다.
눈앞에 펼쳐진 단편적 현상에 아이
어미로서. 아니 나이 먹은
어른으로써 모범답안지의 잔소리를 늘어놓다 보면 나중에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어떤 일로 흥분하는 있는지
핵심을 놓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어떤 책을 보니 아이들에게 꾸지람을 모아서, 틈틈이 메모하여
한꺼번에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아수라장
같은 집안 무질서, 결코 부지런하지도 않고 인내의 미덕도 부족한
어미 스타일을 고려하지 않은
무성의에 화가 치민다. 이런 광경을
참으며 그 순간 메모하거나 이다음 두고보자는 적과의 동침으로
시간 단위를 늦출 만큼 난 수양이
되어 있지 않았다. 차라리 물밖
에 길길이 날뛰는 물고기처럼 한꺼번에 고함을 치는 게 훨 낫다.
아이는 우아하게 살고 싶어하는 어미
소망을 무참하게 싹 자르고
이런 가슴아린 현상이 쌓여 내 건망증을 더 부채질한다.
흔히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하나같이
거짓말투의 언어습관이 있다.
"아이들만 없으면 정말 살맛 나는데"
"아이고, 저 웬수 때문에 정신이 다 달아나
버렸다!"
하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면 그네들이 있어서 언제나 희노애락에
빠질 수 있었고 삶에 방향도 정직하게 세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그 말은 귀여운 거짓말로 우린 악의 없이 받아드린다.
내가 정신 없을 때 깜빡 잊고 있던 스캐쥴도 언급한 것도
사실
큰 아이였다. 그런데도 아이다운 행위를 용납하기 보담 내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구실로 날카로운 말의 칼로 헤집기도
하다니....
낮에는 내 일도 있고 아이들도 귀가 후 학원으로 향하기에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뿔뿔이 흩어진 이산
가족처럼 모여 쇼핑도 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햄버그 집을 찾아 가
곤한다. 그럴 때면 덤벙대는 어미의 소지품을
챙기는 몫은 언제나
큰아이가 차지했고, 뒤늦게 소용될 때면 참 기특하기도 했다.
비록 기어가는 바퀴벌레 한번 제대로 못 잡지만
기억력은 있어
그나마 이런 점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가보다.
몇 년 전 일이다.
어느 날 밤 남편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노래방에 가자고 했다.
원래 가무에 흥미가 없는 남편은 너나할 것 없이 노래문화에 익숙
한데 비해 촌스럽게
굴기에 갑자기 제의를 하니 황당하기했다.
그래도 혹시 늦장부려 마음이 바뀔까봐 난 급하게 준비하고 빨리
가자고 앞장을
섰다.
마침 아이들도 모처럼 엄마, 아빠 기분을 헤아려 줄려고 그랬는지
깊은 꿈나라로 여행을 하는지라 기분이 하늘을 찌르는 것
같았다.
언제나 아빠 눈에는 초등 학생인 녀석들이 부뚜막의 옹가지처럼,
갓 걸음마 띈 아가인 냥 어딜 가나 분신처럼 데리고
다녔다.
부부끼리만을 원하는 나는 이 점이 늘 불만이었고, 아이는 눈치
없게 엄마, 아빠 데이트에 항상 끼이려고 했다. 밉상
그 자체였다.
양심의 거리낌도 보이지 않는 아이의 철면피에 한 수를 더한 것은
당연히 따라가야만 자기의 소임을 다 하는 줄 아는
것이다.
평소 그런 넉살로 무장된 아이가 일찌감치 잠을 자 주니, 절호의
찬스를 놓칠 수 없음이 아니던가! 내 걸음은 새털구름처럼
가벼웠다.
밤 11시, 가로등 불빛이 음흉하게 쳐다보는 거리를 다정한 연인
처럼(평소에 그런 편이지만) 팔짱을 끼며 노래방에
들어갔다.
타인들과 노래방은 종종 이용했지만 정작 내 가족과는 잘 다녀보
지 않아서인지 남편의 노래선곡들이 그리 찬란할 줄 미처
몰랐다.
남편은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가요무대 노래 만 줄줄이 꿰차고 있
었고 그에 비해 난 최신 노래만 해대었으니 남편에겐 모처럼
아내
와의 노래 시간이 별 신선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충격이리라.
그래도 고양이가 생선을 지나칠 수 없듯이 놀이문화를
그냥저냥
보낼 수 있는가! 마치 노래대회 나가기 위한 맹연습처럼 목이 쉴
정도로 열심히, 그기에 춤까지 곁들이면서 시간을
요리했다.
땀이 날 만큼 놀고서도 '이 밤에 끝을 잡고' 싶은 마음에 좀더
데이트를 연장하자고 말했다. 착실한 남편은 집 걱정이
된다고
집에 가자고 찬물을 끼얹는다. 집에 가도 별 수도 없는데.....
'그래, 처음인데 말 잘 들어야 다음에 또 기약 할
수 있겠지'
언제일지 몰라도 아쉽지만 과자 한 봉지 뜯어 아작아작 먹으며
한껏 달아오른 노래의 열기와 여운을 달래면서
왔다.
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이상하게 어떤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남의 집에서 타는가보다. 칠칠치 못하게 아휴!' 혀까지
차면서
우리 집이 아닌 남의 집이라 단정해대며 쯧쯧 소리까지 높였다.
하지만 그 흉이 바로 내 흉이라는 사실을 아는데 몇 초도
걸리
지 않았다. 바로 불나기 일보직전 이였으니까.
세상에!
부엌에 보리차를 올려놓고 노래방을 갔던 것이다. 다행인
건
물을 가득 채운 삼중 바닥 큰솥이라 한시간을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을 파악한 남편의 문이란 문을 모조리 열고
보리
찌꺼기가 타는 연기를 손과 신문지로 날리며 우왕좌왕 해댄다.
내 역할을 대신 해주니 난 할게 없었다. 관객의 입장에서
지켜
보고 나중에 감독에게 잔소리 들을 일, 수고했다 박수만 치면
되었다. 사실 간담이 서늘한 건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한사람
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 역할이나마
내가 자청 하기로 했다.
그 날 밤, 언제나 아이에게
잔소리 메들리를 했던 나였지만
이날만은 굳은 남편이 나에게 메들리 제곱을 해도 군소리 없이
듣고, 또 참하고 얌전한 부인이 되어야만
했다.
조금 전까지 노래방에서 생의 희열을 만끽하고 오붓한 데이트
와 기분마저 홍콩을 왕복했지 않았던가! 그 여운이
한시간도
연장되지 못하고 뜻밖의 일로 인해 잔득 주눅이 들 줄이야!
'그러게 자주 노래방에 데리고 가면 이런 일
없었잖아!'
모처럼 데리고 가니까 내가 흥분해서 건망증이 돌출했다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속으로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나도 잘 한 게 없을 뿐더러 양심의 가책도 느끼고 있었으니.......
이런 건망증의 후유증은 언제나 남편 몫에 보태져
뒷정리와
군기반장으로 분주해야 되었고, 덕택에 혼이 난 나는 겸연쩍은
표정과 제스처만 살짝 보이면 만사 오캐이가 되곤
했다.
하지만 그 날 이후 한 밤에 노래방가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
아니 평생토록 노래방 가자고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난 언제나 타인들과 노래방을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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