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각들

밀물과 썰물

와인매니아1 2005. 8. 1. 17:22

밀물은 서해의 여러 섬들 중에서 덕적도를 가장 사랑한다.

아름답기로 치자면 덕적도 바로 앞에 있는 굴업도가 더 아름답지만

밀물은 그래도 덕적도를 더 사랑한다. 그것은 여름철이 되면 덕적도를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과 부지런히 바다를 들락거리는 꽃게잡이

어선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늘 바다의 물고기들만 보다가 덕적도 서포리

해수욕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또 하루에 두번씩 그물에 걸린 꽃게를 건지러 가는 어부들의 모습을 보면

한없이 가슴이 벅차오른다. 어기 그뿐인가. 멀리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면 산다는 것은 이런 아름다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남 밤. 밀물은 제부도를 걷는 한 남녀의 이야기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 여보, 내일 썰물 때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고기잡이하러 가요. 맨손으로

고기를 마음껏 잡을 수 있대요.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밀물은 그때 처음으로 썰물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닷물에 자신 외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은 놀라움이자 큰 기끔이었다.

 

이튿날. 밀물은 썰물이 누구인지 보고 싶어 은근히 제부도 갯벌쪽으로 달려갔다.

 

밀물은 고기 잡는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 아이들 가까이 성큼 다가갔다.

그러자 엄마들이 하나 둘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갯벌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밀물은 조금 더 속력을 내어 아이들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사람들이 서둘러 갯벌을

빠져나가면서 투덜댔다.

 

"아이, 왜 이렇게 밀물이 빨리 오는 거야. 아직 고기를 제대로 잡지도 못했는데......."

 

밀물은 사람들이 왜 자기를 싫어하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 가까이 다가간다 하더라도

사람들을 해칠 생각은 조금도 없었으나 사람들은 급히 갯벌 밖으로 빠져나갔다.

 

"엄마, 언제 또 썰물이 되는 거야?"

 

밀물은 아이들마저도 자기보다 썰물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에 은근히 썰물에 대해 미움의

감정이 일었다.

 

밀물은 부지런히 썰물을 찾아나섰다. 그러나 쉽사리 썰물을 만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썰물이 되고 싶어서 아무리 썰물을 찾아다녀도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 갈매기야, 도대체 썰물이란 녀석이 어떻게 생긴 녀석이야?"

하루는 썰물을 찾다 못해 갈매리한테 물어보았다.

"글쎄, 난 썰물이란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걸."

갈매기는 밀물을 힐끔 쳐다보고는 더이상 상대하기 싫다는 드시 부둣가

쪽으로 날아가버렸다.

 

이번에는 물 속에서 놀고 있는 소라한테 물어보았다. 그러자 소라 대신 모시조개처럼

생긴 작은 조개가 대답했다.

 

"글걸 우리한테 물으면 어떡해?아무튼 너랑 똑같이 생긴 녀석이야. 우린 썰물 때마다

고달파 죽겠어. 사람들이 우릴 마구잡이로 잡아간단 말이야."

 

"노송님! 도대체 썰물이란 녀석은 어떻게 생긴 녀석인지요?

다들 잘 모른다고 합니다. 노송님이 아시면 꼭 좀 가르쳐주세요."

"으음, 그건 알아서 뭐하게?"

노송도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 한쪽 가지를 높이 치켜올렸다.

"저도 썰물이 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하하, 네가 썰물이 되고 싶다고?"

"네, 그렇습니다."

밀물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송이 갑자기 가지를 휘청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내 말을 잘 들어라. 밀물아, 네가 바로 썰물이다."

"네?"

"네 자신이 바로 썰물이란 말이다."

"바로 제 자신이라고요?"

"그래, 그렇다 써물과 밀물은 일심동체다. 그걸 사람들이 편의상  그렇게

부를 뿐이다. 육지에서 바닷물이 멀리 물러나면 그것을 썰물이라고 그러고,

가까이 다가오면 그것을 밀물이라고 그런다."

"네에."

 

밀물은 노송에게 얼른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노송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밀물은 노송에게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 고용히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노송의 말씀대로 밀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이 부둣가에서

멀리 수평선 쪽으로 물러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우리는 하나구나. 하나의 바닷물이구나. 공연히 내가 썰물을 미워했구나.

 

밀물은 한순간이나마 썰물을 미워했던 자신을 생각하자 일몰 때 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정호승의 " 항아리" 중에서...

연속재생)

 

1. Allegro con brio

2. Marcia Funebre, Adagio assai 

3. Scherzo, Allegro vivace

4.  Finale, Allegro molto - poco andante - Pre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