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란지교를 꿈꾸며
영국의 한 신문사에서 영국 끝에서 런던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라는
현상공모를 낸 적이 있었다
비행기를 이용하여서, 기차를 이용하여서, 자동차를 이용하여, 등등
여러 가지 답이 나왔겠지만 일등을 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
수레바퀴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을 핑계로 내 이웃과 내
친구,
혹은 가족조차 얼마나 등한시해 왔는지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 시점에
한번씩 내 주변의 것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뒤돌아보게
된다
피곤한 육신과 정신적 스트레스의 연속인 우리네 삶에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삶의 동반자가, 그게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관없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면, 아니 멀리 떨어져 함께 얼굴 마주
하지 못하고 있어도 같은 느낌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인생을 값지게 만든 행복한 사람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요사이 밤이 내리는 시각이면 가슴이 허허로울 때가 종종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공연히 쓸쓸해지고 갑자기 사는 것이 허무하다는 다소
과장된 공허감이 밀려오기도 하고, 벌써 한해가 저물고
있었나...
어느 새 나이를 한 살 더 보태게 되었나.....세월의 질곡에 새삼 놀라
삶의 무게를 집어 보면서 이것저것 회한(悔恨)에
젖어 본다
어느 날, 빈 공중 전화박스를 지나치면 전화 걸고 싶은 충동이 생기고,
막상 걸려고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에
망연자실한 사람처럼,
힘없이 동공 풀린 자신을 발견하며 더 쓸쓸함을 맛본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우린 정말 소중한 것들을
많이 망각
하면서 혹은 잃어버리면서 일상을 그럭저럭 살아오지 않았던가 .....
갈수록 허기진 가슴이 되어 채워도채워도 계속 텅빈
가슴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 안에 들어 있어야 할 그 무엇이, 보이지 않는 따뜻한
사랑이, 사람냄새 풀풀 풍기는 인간다운
체취가 자꾸 달아나기 때문에
외롭고 쓸쓸함이 가슴 한 자락을 채우고 있지 않았을까?
지란지교(芝蘭之交)의 향기로운 친구를
만들고 싶었다
기쁨을 두 배로 하고 슬픔을 반으로 줄일 수 있는 그런 넉넉함을 가진
친구를 두고 싶고 나 또한 그런 친구로 남고
싶다.
삶의 건전한 모랄을 제시하는 진정한 경쟁자로.....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나간 후에도 마지막까지 나를 지켜 봐주는
그런
존재로, 힘에 겨워 기댈 수 있는 언덕 같은 어깨를 빌려주는 그런
따뜻한 친구로, 서로에게 훈훈한 격려와 용기를 아끼지 않고
더불어
더 높을 곳을 볼 수 있도록 강한 힘을 불어 넣어주는, 서로의 삶에
윤기를 더해주는 친구를 만들고 싶고 나 또한 그런 친구가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
지란지교(芝蘭之交)를 눈에 넣으며 나 또한 그런 난이 되고 싶었는데,
사랑을 받은 사람이 베풀
수 있듯이 내 가슴 한쪽 모퉁이 쌓여 있는
어둡잖은 사랑을 베풀고 나눌 수 있는 난이 되고 싶었다
미약한 힘이나마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더욱 더 힘차게 타오를 수
있는 삶의 윤활유 역할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한 해가 저물도록
그 꿈은 꿈으로
끝나버리고 만다.
세상이 오염되어 별빛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세상의 맑은 것들을
볼 수 있는 우리의 눈이 오염되어 버린 탓이 아닐까
라는 문구처럼,
아마 나의 눈도 조금씩 오염이 되어 내게 다가오는 별빛을 가슴속에
선뜻 들여놓지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겨울 같지 않는 겨울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노을 빛 같은 난로가 언제나 곁에 있어서 잠시 스쳐 가는
추위일 망정
그 찬 기운을 잊어 먹으며 알콩 달콩 생활했는지......
나 역시 따뜻한 공간에 안주하는데 익숙했었지 내가 난로가
되어줄
생각을 애시당초 버린 모양이다
이제라도 나의 벽난로를 솔솔 피워 온 주위가 훈훈하도록 불을 붙이리라
쓸쓸함에 지친 육신과
허무함에 물든 영혼들을 모이게 하여 다소 안정과
연기 같은 희망이라도 넣어줄 수 있도록 따뜻한 보리차라도 준비하리라
오늘 따라
도종환님의 시 한 구절이 가슴에 닿아 옮겨 본다
꽃 한송이 사랑하려거든 그대여
생명과 소멸, 존재와 부재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아름다움만 사랑하지 말고,
아름다움이 지고 난 뒤의 쓸쓸한 고요함까지 사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