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리뷰(서평 모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와인매니아1 2005. 8. 18. 00:11

 

요즘은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쓰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지... 년 초 센세이션 일으킨 이케하라 마모루의 한국인 비판서도 죽을 각오하고 썼듯이 김경일 교수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역시 맞아죽을 각오아래 책을 썼다고 한다.


열살 때부터 붓글씨 쓰며 한자를 배우기 시작한 교수의 이력은 한국인으로서 처음 갑골학 박사를 받을 만큼 친유교적인 사람이다. 그런 분이유교는 한국문제의 뿌리라고, 우리 사회곳곳에 자라고 있는 곰팡이에 비유한 것을 보면 흰 수염 늘어뜨린 유림들의 항의를 받기에 충분하다.


마치 수필처럼 쉬운 문체로 나열한 글을 보면 공자의 도덕은 사람 아닌 정치의 도덕이요, 여성이 아닌 남성을 위한 것, 어른과 기득권자의 것, 산자가 아닌 주검을 위한 도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 사회 바탕을 이루고 있는 유교문화에 대해 반기를 든다. 보통 오랜 시간 자신이 탐구한 학문에 편견이나 아집을 가질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공자는 거짓말쟁이고, 유교가 끼치고 있는 근원을 '공자 바이러스'라 거침없이 부른다.


특히 조선왕조 동안 지배이데올로기였던 주자학을 '한 사내의 한밤중 사색이 만든 에세이 몇 편을 두고 우리는 조선500년을 허송해야했다'고 개탄하는 대목,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속시원하게 토해낸 교수는 위대한 사기극이라고 일축한다. 한일합방을 위시해 6.25 전쟁, 그리고 최근 IMF 사태도 도덕적 가면을 쓴 유교문화 탓으로 돌리는데 일고의 양보도 비치지 않는다.


사농공상으로 대표되는 신분사회, 토론이 없는 가부장제, 끼리끼리 이익을 나누는 혈연적 폐쇄성, 여성 차별을 낳은 남성 우월의식, 스승의 권위 강조로 인한 창의성 말살교육 등 오늘날 한국사회의 부조리문제를 유발한 원인 제공자라 했다. 유교적 가치와 행동을 반복한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주저앉고 만다면서 이제 유교의 유효기간은 끝났다고 선언한다. 여러 가치관들이 21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한가지 아이러니 한 것은 유교 종주국인 중국은 오래 전 유교를 버렸고, 이웃 일본도 100여 년 전에 버린 유교를 한국에서만 존중되고 있다고 한다.


자극적인 소제목 '효도가 사람잡는다' 에서 알 수 있듯이 노인 문제 역시 효도(孝道)를 개개인 덕목으로 강요함으로서 파생되는 병폐는 한 가정의 붕괴와 멀쩡한 사람을 인격 파탄 자로까지 내 몰수도 있다. 언젠가 우리 모두 노인들이 된다고 볼 때 노년의 슬픔과 공포의 대표인 치매가 남의 일만이 아니다. 유추해 보건데 치매노인이 있는 가족과 가정은 살아온 무게나 잔재를 완전히 털어 버린 가벼움, 그 자유로움을 느끼는 치매 당사자와 달리 고통과 절망의 지옥같은 나날을 보내기도 한다.


이것을 정부차원에서 구체적인 제도를 마련하여 보다 인간다운 삶과 결코 짐스런 존재가 아닌 공경의 어른으로 대할 수 있게끔 적절한 조치와 장소가 있어야 된다고 저자는 대안까지 제시해주고 있다. 나의 경험상 이것은 매우 합리적이고 서로가 행복한 관계를 유지시키는 방법인 것 같아 참으로 환영의 공감을 표했던 바다.


3년 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무렵의 일이다, 언제나 애살과 잔정 많은 자식이 부모를 떠맡게 되는지 효심 강한 막내인 남편이 연로한 아버님병 수발을 도와드렸다. 그 당시 75세로 전립선을 앓고 계시었고 몇 해 전 중풍으로 한쪽 수족이 불편한 상태였기에 어머님이 늘 아이 다루듯 곁에서 그분의 수족이 되어 드렸다.


그런데 문제는 소변이 보고 싶으면 집이 아닌 병원으로 달려가야만 해결이 되었고, 떨어져 살고 있던 우리가 시도 때도 없이 모시고 가야만 했다. 낮은 그런데도 괜찮지만 새벽이면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진짜 짜증이 나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급기야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내 입에서 본능적으로 나오며 아버님을 원망하기도 하였다. 그때 심정을 표현하라고 한다면 멀리 이민이라도 가고 싶다는 거였다. 그 생활이 얼마나 지겨웠으면 장례식 때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을까!


사실 문상객 올 때마다 곡을 해야 되는데, 나오지도 않는 곡도 어렵고 체면상 우는 흉내를 내야되지만 아무리 슬픈 영화를 연상해봐도 전혀 눈물이 나오지 않는 거다. 평소 넘치는 웃음과 눈물이 다 도망갔는지. 오히려 남의 곡성에 웃음이 막나올 지경이었다. 동서 두 명은 드라마 처럼 구슬피 우는데, 도무지 죽음이 내 앞에 닥친 건지 뭔지 슬프지 않았다. 한마디로 자리를 지키는 게 그렇게 고역일수가 없었다. 나중에 이 모든 것을 안 남편이 웃지만 말아달라고 부탁할 정도였으니..


그 당시 가족이란 멍에로 너무나 힘들었기에 육체적, 정신적 해방을 맞은 나머지 나의 철없음이 극에 달했던 모양이었다. 자식된 도리라는 명분으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시부모님께 친정부모처럼 스스럼없이 대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 상황과 마음이 편찮다 보니 여간 곤욕스럽지 않다. 만약 특정 장소에서 돌봄이 있었다면, 어쩌다 방문하여 간병했다면 좀 진지한 자세로 잘 해 드렸을 텐데... 하는 지나버린 아쉬움은 남는다.


저자는 유교문화의 모순이 새롭게 변화되려면 새롭게 포맷이 되어야 공자바이러스에 프로그램이 다운되지 않을 것이라고 유머 섞인 설명도 곁 들린다. 책 안에 소제목처럼 짤막한 문장하나에도 파격적이고 도전적인 내용이 많이 있다. 읽는 내내 '옳은 말'만 하는구나 ..역시 알고 지적하는 비판에, 왜 유교와 공자가 퇴출 되어야 하는지 열거하는 사항마다 상당히 감탄하며 기분 좋게 설득 당했다 . 물론 유교의 좋은 점도 많이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감정적인 치우침이 아닌 오랜 고증과 연구로 비판한 유교의 낡은 모순을 빨리 버릴수록 좋지

않은가!


'지금은 여름인데 우리는 아직 유교라는 겨울털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자의 모국에서 관심 없는 것을 우리만 신경 쓰는 것에 대한 답답함을 저자는 이렇게 대변한다.


지금 유림에서 고소장을 넣어 버르장머리없는 젊은 놈을 엄벌해 줄 것을 요구할 만큼 이 책의 파문은 만만치 않다. 섬뜩함을 느꼈는지 마침 김교수도 미국에 머물며 연구활동을 한다고 한다. 유림의 반발을 각오하고 썼지만 심기가 그리 편하지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읽는 독자는 뭔가 시원한 감로주 마신 것 마냥 속이 다 시원한 것을 느끼지 않을까 한다. 나만 이런 느낌이 들지 않도록 모두에게 일독(一讀)을 권하고 싶다.


좀더 진보적이 되기 위해 경우에 따라 따끔한 일침도 맞을 수 있겠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우리 사회를 암암히 지배한 악습과 인습을 바로 세울 수만 있다면 눈물나게 맞아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