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매니아1
2005. 8. 1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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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세대 여성의 90년대 삶을 주로 그려온 공지영씨가 몇 해전에 쓴 것 중, 단편을 모아
소설집을 펴냈다.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남녀 평등이 현실속에서 배반 당하는 모습, 그에 따른 절망을 묘사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의 후일담 '고등어' 등 공지영소설은 자신도 386세대 일부로서 변혁운동의 상처와 좌절, 진보를 문학화해
상당히 대중적 영향력을 가진 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작품은 모두 7편. 현실적 삶을 껴안으려는 작가의 몸짓이
여기 저기서 발견된다. 낭만주의 열정에서 현실의 뼈아픔으로 시선을 돌린 작가는 자전적 성향이 짙은 이 소설집을 통해 90년대 문화 현실과
일상인들의 내면적 갈등과 고독을 그려 보인다.
기존 작품과 뚜렷한 변화를 보인 이번 책을 펴내며 작가는 말한다. '이제야
사춘기를 벗어난 느낌"이라고 실제 3명의 자녀를 둔 어미인 공지영은 강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이제 현실의 먹고 사는 문제에서 다시 출발하겠다는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이혼 재혼, 출산 등 삶의 다양한 무늬를 수놓으며 힘든 몇 년을 보냈음을 어렴풋이 엿보게 한다.
혼란의 시기를 거친 지난 5년간 돌아보면, 90년대 주인공은 왜 돈걱정을 하지
않았는지 의심이 든다 했다. 먹고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말하지 않는다면 영화든 소설이든 철학이든 난 믿지 않는다고 작가는
외친다,
표제작인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는 경제 위기와 세대 교체의 물결에 휩쓸려 갑자기 해고당한 30대 여성 디자이너의
하루를 따라간다. 이혼의 상처로 사랑의 꿈을 앓고 오직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성공만을 꿈꾸던 그녀. 새로운 연인은 그녀에게 현실을
벗어나 멀리 페루로 떠나자고 제안하지만 그녀는 이를 거절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떠난 지 불과 2년만에 IMF사태로 인해 해고 당한다. 순수한 사랑의 꿈을
꾸어도, 또 외면해도 상처가 되는,
좌표를 세울 수 없는 현실은 막 30대의 혼돈스런 영혼의 내면 풍경을 묘사한다. 막다른 골목에
다달았음에도 내면에 남아있는 삶에 대한 열정을 자양분으로 삼아 냉정한 현실을 다시 버텨 내려는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아무도 상대방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그것을 닦아내줄 수는 있어.
우리 생에서 필요한 것은 다만 그 눈물을 서로 닦아줄 사람일 뿐이니까. 네가 나에게 그리고 내가 너에게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해 "
이런 뇌리에 남을 대사를 나열하며 작가는 386의 자화상을 펼쳐보인다.
최근작 '고독'은 가족의 테두리 속에서 삶의 희망을
찾는 과정을 그린다. 답답한 가정사에 지친 일탈을 꿈꾸는 주부, 일탈이란 고착 우연히 소꼽 친구와 만나 남편 모르는 가벼운 데이트정도. 여기에
이혼소동을 벌이는 동생, 구조조정으로 밤마다 술마시는 남편 등 소설은 가슴에 고통을 안고 지쳐가는 인물들로 가득하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발견되는 일상 주제지만 고독한 영혼의 발걸음을 더는 따라갈수 없다고, 결국 산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는 허무를 보여주기도 한다.
중편 '모스크바에는 아무도 없다'는 낯선도시 모스크바에서 재회를 꿈꿨던 80년대 친구들의 좌절과 무력감을 그린 소설이다.
모스크바, '80년대의 진원지'를 찾아간 여자는 산도 없고 새도 없고, 단독주택 없이 아파트만 덩그렁하고, 결국 혁명은 없고
인터걸과 죽은 레닌만 있는 것만 보고 귀국한다.
남편따라 모스크바행을 택한 것은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도 만나고 혁명의 고향 러시아
실상을 직접 확인 하겠다는 것이지만 결국 그는 보고 싶었던 이들을 아무도 보지 못한 채 돌아온다. 그럼
애당초 모스크바행에서 무엇을 찾고자 했던 것일까?
작가는 왜 그렇게 80년대에 집착했던
것일까? 그것은 작가가 지향하는 '진보'의 싹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386세대는 우리 사회 에서 그나마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모스크바에는...'에서 이 세대는 영원히 외롭고, 영원히 이해받지 못할 세대로 묘사된다. 작가는 그럼 왜 소설을
썼는가? '외로워서 썼어. 다들 어디 있니? 우린 그땐 이렇게 힘찼잖아, 그때 실망하지만도 슬퍼하지 만도 않았잖아, 그런데 다들
어디 있니..이렇게 자신의 글쓰기 이유를 밝히지만 쓰고 나니 더 외로워지더라고 말한다.
순수한 젊은 영혼들이 사랑하던 사람에게
버림받기도 하고 이념에 의해 더 쓸쓸해지기도 한 인간들 내면 풍경을 접하며 주인공이 느낀 '고독'이 내게 자근자근 전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삶이란 곧 고독이어라. 제 아무도 남 알길이 없고 누구나 모두 모두가 홀로이어라 헤세의 밤의 위안 속의 명구를 인용하며
우리네 삶 중에서 고독(孤獨)은 어쩔수 없이 인정해야 될 몫인 모양이다. Love Song / Ronan
Hardi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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