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매니아1 2001. 9. 4. 10:35
향수


흠흠......와우 냄새 좋네...
가끔씩 막내가 내 얼굴과 옷에 코를 끙끙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작은 입으로 중얼거리는 소리는 늘 들어도 싫지 않는 즐거움
을 준다. 엄마냄새는 참 좋아, 최고야. 이러면서 갖은 애교를 다부린
다. 아이의 단순한 중얼거림이 대단할 리 만무하지만, 한편으론 진짜
내 몸에 근사한 향기가 날까 호기심에 내 체취에 궁금증이 생기기도
하다.

난 종종 향수코너를 즐겨 찾는다. 향수의 향기만큼 독특한 용기는
내 후각과 시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또 독특한 디스플레이를 감
상하노라면 그 고혹적 분위기에 매료되어 내 기분까지 고급스러워진
다. 일상적 따분한 기분을 전환할 때, 혹은 침잠된 고독이 베일 때,
품위있는 용기의 상쾌한 향에 사로잡히다보면 저절로 내 안에 잠든
낭만이 고개 들어 싱싱한 기분으로 되살려놓는다. 그래서 내겐 색다
른 색깔만큼 여러 가지 향수가 총총히 자리잡고 있다.

새로운 향수를 구입하는 날은 공연히 기분이 상큼하다.
마치 그 향이 내 몸에 들어와 있는 착각에, 내 오감이 향기에 취한
것 같아 상큼한 레몬 한 입 물고 있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언제나 들
어도 물리지 않는 아이의 한마디 '엄마 냄새 참 좋아' 처럼 향수를 선
물 받을 때면 그 향수의 향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싫증나지 않는다.
거기다 미학적 감각이 묻어있는 용기(容器)라면 자주 시선이 쏠리고
가끔씩 나답지 않게 향수를 이리저리 어루만지기도 한다. 그래서 향
수는 무조건 마음을 끌어당기는 어떤 힘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요사이 가볍게 뿌리는 뚜알렛 향수 이용자도 많고, 수입물결을 타고
유행하는 향수를 너도나도 사용하는 바람에 개성이 동일화되는 경향
이 많다. 누구나 나만의 고유한 향기, 야릇한 시선을 끄는 설레는 향
기를 원하지만 그 또한 흔하지 않다. 그 예전 너무나 유명한 디자이
너인 지방시가 자기의 친구인 오드리햅번을 위해 '란테르디'를 만들
어 오직 햅번 만이 쓸 수 있도록 한 일화는 뭇사람의 부러움을 사기
도 했다. 꼭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나만의 향기를 위해 특별히 주문제
작 하여 진짜 하나 뿐인 향수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여러
종류의 향이 우리들을 자극하긴 하는 것 같다.

지금은 거리 가판에서 유명한 향수 태그가 붙은 가격도 비싸지 않
는 여러 종류의 향수가 젊은이의 시선을 잡고 있다. 부담 없이 한번
씩 기웃거려보긴 해도 이상하게 선뜻 구입하지 못한 것을 보면 아무
래도 기존 점포에 대한 신뢰만큼 그 가판대를 믿지 못하는 모양이다.
일전에 매스컴에서 가짜 향수를 만들어 저렴하게 유통시킨다고 하니
아무래도 그 영향이 아닌가싶다. 아무리 고품격향수를 소지하고 싶다
고 한들 가짜로서는 거품이 섞인 만족도를 채울 수는 없지 않을까 해
서이다. 며칠 전,신문에 끼여 들어온 전단지에 향수 가격세일을 보게
되었다. 환율이 한창 오를 당시에 구입한 향수가 지금은 적당히 다
운 되어 있기에 그때 바가지 쓴 것도 아닌데도 공연히 비싸게 구입했
다는 느낌이 일순 든다

90년대 들어와서 유니섹스 붐을 타고 한 브랜드의 향수를 선택할 수
있도록 연인끼리, 혹은 부부끼리 똑같은 제품을 쓰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약삭빠른 상술은 비단 향수뿐일까 만은 우리 주위에서 함께 공
유하고 싶은 마음을 이용해 휴대폰이랑, 반지, 옷 등 커플을 유혹하는
게 너무나 많다. 나 역시 커플 향수를 한번 사서 젊은이 흉내를 내고
자 했지만 내 것을 사용해도 남편은 전혀 불평이 없어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사실 내겐 향수가 꽤나 있는 편이라 자꾸 사들고 오면 외려
싫은 소리를 곁들인다. 때론 상대를 생각한다고 구입하는 행위에
예상치 못한 반응이 생긴 나머지 내 것을 쓰도록 그냥 내버려둔다.

부창부수라고 처음엔 향수에 시큰둥한 남편이 이제 나보다 향수를
더 즐겨 사용한다. 어떤 날은 많이 남용하는 것 같아 아까운 마음에
남자용을 따로 장만 했다. 그래서 구입한 것이 청색의 다비도프 쿨
워터이다. 이 향수는 향이 가볍고 시원해 여름에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 사왔더니 기존 여성향보다 약한 탓인지 즐겨 사용하지 않는다.
아마 은은하고 매혹적인 여성 향수에 단단히 세뇌 당한 모양이다.

누구나 그렇지만 향수는 자리와 옷차림에 따라 다른 것을 사용한다.
반바지의 가벼운 차림과 저녁모임에 어울리는 차림에 향기가 같은 수
는 없다. 때문에 그 분위기에 맞춰 적당한 향기를 선택하는 것도 센
스다. 근데 남편은 마음에 드는 향수만 줄기차게 고집하는 편이다. 물
론 그 향이 고정화되어 그 사람을 연상하면 그 향기를 떠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한가지만 고집하면 질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남편의 취향 탓에 어떤 향수는 구입할 당시 향을 듬뿍 맡고는
남편 혼자 다 쓴 것도 있다. 그 향수는 사실 비싼 금을 치른 것인데.
허긴 내가 구매 주체 역을 맡다보니 남편 입장에선 이것이 싼 지, 비
싼지 알 턱이 없다. 그래서 아마 살짝이 아닌 오만 군데 다 뿌리며
바닥을 드러낸 것이리라.

이제 무더위와 땀 내음이 풍기기 시작하는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한
다. 아니 벌써 시작되었다. 거리 곳곳마다 여름 한창 특수를 누리기
위해 향수가격을 '최고 싸다'를 명시 해 놓고 경쟁적으로 지나가는 여
인네를 유혹한다. 가게로 사뿐사뿐 들어가 평소 마음에 새겨 둔 것은
물어보면 크게 싸지는 않다. 하지만 견물생심이라고 일단 다른 향이
라도 맡거나 색다른 또 무엇을 구경하고 있으면 슬그머니 주머니 사
정 감안하지 않고 또 구입하고 싶어진다. 이제 일반인에게 널리 퍼져
신비로운 향으로 기억되진 않겠지만 샤넬의'NO 5', 체크무늬로 유명
한 버버리 향수는 이것이 예전 향수의 대명사였을까 할만큼 내 흥미
를 끌기 못한다. 진짜 자연에서 추출한 기막힌 향과 인조향의 기술이
탁월하다보니 이전 유명세 탄 향수가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다. 이런
것으로 보면 나도 향수에 대한 감각이 조금 향상되었다고 볼 수 있
나?

이렇게 독특한 향수가 진열장을 장식하고 있어도 언제나 새로운 것
만이 최고로 내 시선을 붙잡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욥의 '이브'향이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들고, 소토보체 역시 지금껏 질리지 않고 계속
애용하는 품목인걸 보면 역시 지난 것이 깊이 있게 다가오곤 한다.
최근에 강한 남성용 오마샤리프와 질샌드 향수를 샀는데, 기존 향보
다 진하다 보니 자연 이용하는 빈도가 줄어든다. 자연 내가 사용하기
싫은 것은 남편에게 인심 넉넉하게 써진다. 아니 강요에 가깝다. 이래
서 늘 그 향을 찾는 사람은 그 향에 중독되어 즐겨 사용하는 향기만
을 고집하는 모양이다......내가 그런 것처럼.

어쩌다 꿀꿀한 기분에서 헤어나지 못해 계속 우울하면 남편은 마음
에 드는 향수를 사러가자고, 사주겠다고 한다. 막상 한 개만 골리다
또 마음에 드는 게 있어 망설이면 남편이 그런다.
"당신 나중에 향수 장사하려고 그래?"
가끔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지기도 하지만, 이렇게 내 기분을 맞춰
주며 향수에 대한 자극을 끊임없이 제공해 준다. 그래서 내 향수를
마음놓고 이용해도 군소리 없이 봐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장마의
분위기를 거둬 낼 상큼한 향수 하나 사고 싶다.
* 그림은 이번에 선물받은 불가리향수다*

Forever - Steve Rai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