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음식을 못하는 이유
내 음식 솜씨가 신통찮은 이유는 순전히 남편덕이다. 지나칠
만큼
밀가루음식, 특히 칼국수. 수제비. 라면 류를 선호하니
전통적 토종
음식과 맛깔난 한식요리에 몰입할 여유를 앗아가 버리는데 있다 .
아이조차 식성도 부모를 닮는지 햄버거와 피자 통닭, 흔히 말하는
패스트푸드만 즐겨 먹으니 집에서 챙겨주는 음식이 아이 입맛에 맞을
리 없다. 살림꾼인 주부는 집에서 쉽게 만들겠지만 난 도무지 음식
만드는 게 수월치 않다. 혹 만든다해도 그 맛을 흉내내기란 어렵거니와
인건비와 노력품도 마이너스일 지경이다. 더욱이 재료 구색에 신경
쓰다보면 출혈도 심하고 그래서 각자 취향을 수용하고 내 시간도 절약하는
방편으로 외식을 취한다. 그러다보니 음식만들기란 미지수가 세 개인
2차 방정식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다.
남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수제비와 꽁보리밥으로 점철된다.
농사꾼인 부모 그늘에서
하얀 쌀밥은 제사상에서나 구경하는 특별
음식으로 생각될 만큼 그의 환경은 유복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 자주 접한
밀가루 음식이 이제 더 이상 흥미롭지
않을텐데도 남편은 거의 환장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 질리기는커녕
하루 3끼 내리 밀가루로 때우라고 해도 탄성을 지를 남자이다.
도무지 밀리지 않는 음식 일 순위로 세뇌된
모양이다.
궁핍한 형편에 먹는 즐거움도 모른채 고생한 사람들은 훗날 그 한을
등에 업고 근사한 집을 찾을 것 같았지만, 이것도 사람마다 성향이
다른 것 같다. 아직도 사시사철 낭만을 입에
올리는, 연애시절처럼
근사한 곳만 선호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부담없고 맛깔스런 분식집을
더 애용한다. 그 중에 칼국수 메뉴는 한달 내리 먹어라해도 사양하지
않을 만큼 엄청 좋아한다. 이런 점 때문에 다른 음식은 자신 없지만,
칼국수하나 만큼은 비교적 잘 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칼국수는 별로지만 물국수는 나도 좋아한다.
내게도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군불 연기처럼 국수에 대한 에피소드
한 두
소절이 있다. 철부지로 보낸 나의 유년은 5일마다 장날이 서곤
했던 시골이었다. 난 그 장날을 내 생일만큼 기다리곤 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시장에서 가장 목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기에
그 일대는 늘 장사치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온갖 것들을 풀어놓고
목청 높여 촌사람들을 유혹한 장사꾼, 호기심 많은 아낙네는 무지개 보듯
때갈 고운 것에 이리저리 손때 묻히기에 여념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채 걸음도 여물지 않는 귀여운 강아지를 팔려고 먼데서
넓은 반티(고무다라이)를 머리에 이고 온 아줌마와
할머니를 기다리
는 재미는 내게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였다. 실컷 눈이 지치도록
구경하고 내 짓궂은 장난을 예쁘게
받아준 그들 재롱을 뒤로 하고
집으로 올라치면 점심시간이 어느 새 코앞을 지나 무릎까지 와있곤
했다. 한가지 몰입하고 있으면
배고픔조차 잊어버리는 버릇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때는 누가 밥 먹으라고 찾아 챙겨주지 않으면 종일
밖에서 뒹굴었던 시절이니 굶는
날도 종종 있었다.
특히 장날이면 열심히 놀고 난 후 허기진 배고픔을 눈치챈 엄마가
사주시는 국수 한 그릇은 진짜 꿀맛보다 더
한 맛이었다.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에 묘사된 연말
우동맛처럼 내게도 진짜 그 맛은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황홀했다.
지금도 그때의 국수 맛을 생각하니 입안에 군침 돈다.
이래서 사람들은 추억을 회상하며 세월을 먹는다고 하는 건가...
낡은 건물이 허물어지고 멋진 신축건물이 들어서 이제 더 이상 그
국수집의 그릇을 만질 수 없지만, 만질 수 없는 그 시절이 그리워
헛손질하면서 손바닥을 펴본다.
이런 소박하고 촌티 나는 에피소드가 있어 요즘도 도회지를 벗어나면
볼 수 있는 장날의
풍경에 눈길이 머문다. 그 옛날 맛있게 먹었던
국수집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동자는 형편없는
기억 속의 그 국수 집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본다. 그래서 가끔
집에서 국수를 삶아보지만 어떻게 만들어야 그 예전 국물 맛이 나는지,
아무튼 국수 생각만 하면 볼품없는 그 집이 생각나곤 한다.
남편은 면류를 즐겨 먹기도 하지만 직접 만드는 것도 잘한다.
물론
물 끓여 스프 넣는 즉석 라면에 불과하지만, 이리저리 몸을 흔들고
묘기부리는 철판요리처럼 아주 먹음직스레 만들어 식구에게 선보인다.
여기에 얼큰함을 위해 김치와 계란은 필수이고 풍미까지 곁들인다고
참기름 한 방울 넣어 라면전골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혹 야참이
아니래도 tv의 얼큰한 라면 선전을 볼라치면 슬그머니 부엌에 가 몇 분
뒤에 진짜 따끈한 국물을 맛볼 수 있게끔 해온다. 이렇듯 면을 모두
좋아하는 관계로 라면 소비도 어떤 간식보다 막강하다. 한 구석에
비상사태를 위해 불철주야 지키는 수호신 인 냥 떨어질 날이 없다.
식구들의 이런 성향이 나에겐 요리시간을
단축해 주는 계기도 되지만
반면 다른 음식에 대한 연구 기회까지 앗아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힘들다'면서 요리하지 말라고 '위하는' 이런 발언 뒷면에는
맛없는 것은 더 이상 먹지 않겠다는 계산된 심보도 한몫 한다.
이런 갸륵한 애정(?)으로 인해 나의 요리솜씨는 일취월장은커녕
오히려 철부지 신혼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어느 날 밖에서 맛난 음식을 먹고 흉내 내려 폼을 잡을라치면
"어부인, 우리 가족 생각하지 마시고 혼자 드실 분량만 만드세요"
이렇게 사기를 저하시키는 발언을 해도 나의 실험정신은 주체하지
못하고 어떤 날은 더욱 기승을 부린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어면 어디 나와 보라 그래"
음식점보다 양념도 더 많이 넣고 정갈하게 하면 맛이 더 날 것 같아
숙달된 조교처럼 조리기구로 오만가지 폼은 잡는다. 가끔 중간에
양념 삼아 소리도 빽 지른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어설픈
솜씨를
보일 때마다 불에 데이고, 칼에 베이기는 당연지사다. 그럴때 절대로
조용히 처리하지 않는다. 마치 큰일 난 것처럼 소리부터
질려야 아픔
이 상쇄되는 것 같다. 그래서 고함도 심심삼아 질러본다.
한 두 해도 아니고 이런 성향을 결혼 초부터 알고 있는
남편은 다소
걱정스런 말을 던진다. 우리 라면이나 끊여 먹자고, 그런 거창한
요리 안 먹어도 자꾸 살이 쪄서 고민이라고 하소연한다.
그럼에도
뭔가 멋진 작품(?)이 탄생할 것 같은 착각에 남편하소연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러버린다. 우습게 여긴 나의 솜씨에 기 팍 죽일 요량
으로 열심히 찌지고 볶는 것이다. 한껏 멋 부리고 그럴싸한 음식을
만들어 들이밀면 남편은 일단 한 입 먹어보곤
"우리 원래대로 먹자...만드느라 수고한 줄 알지만 평소대로 먹자"
인스턴트 시대답게 즉석 먹거리 혹은 라면도 열심히
먹으면 좋겠지.
하지만 다소 맛이 떨어진 음식이라도 골고루 신나게 먹어야 음식 할
재미가 나건만, 아무래도 음식은 하는 사람이 하는 건지....
'맛있게'와 거리 멀다보니 일정부분 기대하지 않는 남편은 주말에
뭘
해먹어 보자...이런 주문하지 않아 무척 편하긴 하다. 이렇듯
손쉬운 면류 덕분에 편함과 시간절약은 저절로 따라오지만, 이런
점
때문에 주부 경력 십년 넘어면 식당 차려도 될 법한데도 여전히 내
음식수준은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음에
다소 씁쓰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