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각들

눈 높이

와인매니아1 2001. 10. 9. 02:10

머그잔 속의 줄어든 커피라인을 무심히 보면서 안도의 숨을 내쉰다.
이제 습기 머금은 이 하루만 지나면 기나긴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다.
여름의 후끈후끈 더위처럼 지루하던 아이들 방학이 내일로 끝난다.
어미에겐 끔찍할 수도 있는 방학이, 언제 끝날지 아득하던 그 개학이
급기야 코앞에 닥치니 아껴 두었던 콧노래가 그제서야 솔솔 나온다.

해마다 방학 때면 어떤 프로그램으로 알찬 방학을 꾸밀까 하는 문제로
골머리가 지끈지끈 했다. 뒤진 학습도 좋지만 학교에서 챙기지 못한 예술
분야도 맛보이고 싶은 게 솔직한 어미 욕심이었다. 각종 문화센타, 이벤트
회사의 캠프, 취미 등 다양한 유혹꺼리도 내 욕심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
었다, 이런 현실 앞에 심신수양과 참 교육, 학습 해방이란 문구는 오래 된
포스터처럼 이미 낡아 버린 명분에 불과한 것이었다.

누구나 처음은 즐거운 방학인데 '스트레스 주지말고 당분간 놀게 해야
지라는 일념으로 공부해라 일명 해라 송(song)은 잠시 읊지 않으리 다짐
한다. 하지만 하루 이틀 책을 팽개쳐야지 이건 숫제 탱자탱자 놀자로 일
관하니 속좁은 어미가 그 꼬락서니를 소화한다는 것이 보통 인내로는 턱
도 없는 것이다. 아마 그대로 방치하면 숙제고 뭐고 모두 어미 차지일 것
같은 불안이 든다. 해서 뒤늦게 서너군데 학원에 등록 시켜놓고 방학 전
(前)처럼 8시부터 시작하는 평소 생활로 되돌린 것이었다.

물론 아이의 반대는 있었지만 아직은 목소리 깔고 외쳐대는 어미 입김
을 무시하지 못하는지라 아이는 꽥~~~사자후를 토한 후 다소곳한 강아지
처럼 내 행보에 따라주었다. 좀더 솔직 하자면 누구나에게 특효약이 있기
마련인데 아빠의 눈빛이 아이에겐 바로 쥐약인 셈이다. 그러니 내 입김은
뒷전이고 순전히 아빠의 무게가 데모하는 악동들을 제압한 것이다. 이래
서 남편의 존재가 무소불위의 권력자처럼 대단하게 보일 때가 더러 있다.

투덜투덜과 함께 바둑, 컴퓨터, 미술 수영 음악 등 학습보다 취미활동에
치중하다보니 여행, 수련 체험을 요하는 방학 과제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요즘 초등 숙제는 주로 체험을 중요시하고 창작에 역점 두는 경향이 짙
다. 아무래도 풍부한 경험으로 넒은 사고와 개성을 키워주기 위함이리라.
하지만 아이들은 관찰(觀察) 사고(思考) 인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다 만들기와 독후감 작성 등 자상한 어미 역을 할라치면 금방 싫증을
내는 통에 숫제 철부지보다 내 끈기가 먼저 바닥을 드러낸다. 그래 나중
에 하자,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고 그리고 저모레도 있지 않는가 말이다.

"다음다음으로" 자꾸만 시간을 갉아먹던 내 태도가 어느 순간 느긋할 수
만 없었다. 어느 새 개학이 다가오니 평소 방관자로서 있기엔 아직 내 마
음이 여린 모양이다. 부랴부랴 선택과제를 점검 하니 손도 안댄 것이 수
두룩하다. 그 동안 녹음기처럼 같은 톤으로 외쳐댄 '일기쓰라' 만이 하루
빠짐없이 메워진 것을 감사해야 될지. 바야흐르 얼렁뚱당의 대가(大家)인
어미 솜씨가 전면에 나설 때인가 보다.

체험보고서, 모으기, 일기, 글짓기, 독후감, 만들기, 서예 .......
캠프 다녀 온 보고서, 성의 없이 갈겨 쓴 아이원고를 토대로 내 상상력과
허풍을 반죽해서 그럴싸한 체험보고서를 완성했다. 또 평소 아이는 동화
와 시(詩)짓는 습관 탓에 글짓기는 내 타이핑의 수고는 있지만 해결되었
다. 모으기는 잘 사용치 않는 내 요리 카드(70장)를 선뜻 희사하기로 했
다. 아무리 쓰지 않더라도 내가 모아둔 요리카드까지 강탈(?)당해야 될
줄 정말이지 몰랐다.

그 외 것들도 대충 완성했는데 유독 서예만 손대지 않고 있었다. 단단히
작심하고 마지막 주말을 아이랑 함께 서예 연습에 투자해야만 했다. 한지
와 먹물, 붓 등 도구를 나열해 놓고 잘난 내 솜씨를 시원하게 펼쳐 보였
다. 어미 시범에 고무된 아이가 잘 쓰겠거니 생각한 것은 내 오만에 불과
했고 아이는 글자를 그림처럼 그리고 있었다. 참으로 답답한 것이 단 몇
시간만에 아이가 내 수준까지 오르기를 바라다니.....
잠시 투자한 것에 아이가 엉덩이 쑤신다고 투정해도 난 계속 연습하기를
종용했다. 마침내 인내력의 한계에 다다른 아이는 그만 포기하고 딴전을
피우는 것이다. 언제나 당사자 보다 지켜보는 사람이 애가 더 달 듯 나
역시 내가 대신 써주고 말자는 심정으로 "정직"을 썼다. 사실 하나도 정
직한 행위가 보이지 않는 어미는 능청스레 정직이란 한글을 써주었다.

드디어 누가 했던 말던 방학과제물을 모두 완성했다고 팽이 돌 듯 팽팽
놀던 아이는 마침내 오후 자기 전성기가 끝나고 말았다. 아빠 귀가 타임
과 함께 신나던 '팽팽'이 오싹한 '팅팅'으로 변하고 있었다. 거실 바닥에
널려있는 붓글씨를 보더니 다짜고짜 아이 솜씨가 아님을 안 아빠는 아이
를 잡고 붓글씨 연습을 시키는 것이다. 샤워한다고 옷을 벗은 상태로......
무엇이 그리 급했던지 나체로 그 장면을 연출하다니 기막힐 일이 아닌가.

차분히 설명하던 남편 목소리가 갈수록 톤이 높아지더니 내 있는 서재
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가 치밀어 어쩔 줄 모르는 남편 목소리
가 거리의 도우미소리처럼 갈라지고 있었다. 불행히도 아빠와 엄마는 감
정의 포로가 되어 아이 눈높이를 전혀 계산에 넣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잘 못하는 것이 어쩜 그 아이 수준임을 깨달아야 하는데 이해는커녕 어른
만큼 못하는 것에 아이를 향해 막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남
편은 저 나이에 잘 했는지 잘 모르겠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막내를 시
켜 쪽지편지를 건네주기에 이르렀다.

"스트레스 받기엔 주말이 너무 아까운 날이잖아?, 얼른 씻는 것이 훨씬
보기 좋겠다. 빨랑 씻어라"

스스로 열받은 남편은 나체로 열 식히는 중인지 내 메모를 무시했다.
오직 아이를 한석봉 후계자로 만들 작정을 하는지 계속 씩씩거리며 아이
를 향해 사생결단을 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 동안 내가 아이를 나무
랄 때 남편 또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어쩌다 가
끔 아이 혼줄 낼 때면 남편의 언행이 내 눈에 그리 야속할 수가 없다. 지
금이 바로 그랬다. 첫술에 배부르랴 처럼 무엇이든 처음부터 단번에 만족
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첫술에 배불러야 한다고 아이에게 강요하고 있었
다.

결국 아이는 쥐어 박힌 구박과 고약한 모멸감을 감내하고선 마침내 자기
손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직접 쓴 "성실"과 "정직"처럼 아이는 성실히 그
리고 정직하게 자기 손으로 쓴 글에 만족하는 눈치다. 비록 내 기대치에
전혀 미치지 않는 솜씨지만 온갖 냉대 받고 쓴 글이 되어서인지 내가 대
신 써 준 글보다 더 멋진 것 같았다. 진땀 빼며 또 언어폭력으로 상처 받
았을 것 같은 아이는 언제 구박 받았냐는 듯 좀 전에 당한 시간을 깡그리
잊어버린 채 아빠랑 정답게 테레비를 시청하고 있다. 이런 단순한 점이
바로 아이의 눈높이가 아닐까? 어른들은 이런 단순한 점을 놓치며 안
복달하며 일상을 헤엄치고 있는 것이다. 가을은 어느 새 우리들 곁으로
다가오듯이 아이의 단순한 눈높이도 우리 삶에 베여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