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차(茶)에는 두 가지가 어울린다. 하나는 좋은 음악이요,
다른 하나는 편안한 의자이다. 은은한 차에는 느긋한 여유 부
리는 의자가 제 격이다. 온돌식 문화에 길들인 어르신들은
방석이나 딱딱한 의자도 상관없겠지만, 이왕이면 푹신한 의자가
나을 성싶기도 하다. 특히 그윽한 향을 즐기는 커피는 기분이
맛을 좌우한다. 우리가 분위기 근사한 곳에서 비싼 커피를 마시
는 이유도 무드에 투자하는 것이 아깝지 않기 때문이리라.
쿠션 좋은 의자를 벗삼아 코끝에 와 닿는 향커피를 접한다. 몸의
영양을 위해 비타민을 복용하듯, 메마른 정신에도 비타민을 공급
하는 착각이 든다. 비록 한 모금 거리도 안 되는 액체지만 잔잔한
리듬과 푸근한 의자와의 조화 속에 색다른 기쁨과 수북히 쌓인
피로를 씻어본다. 요즘은 다양한 생활가구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잠시 출입하는 나그네에게 편안함을 선사한다. 세련되지 못할
지라도 푹신한 것으로 성이 잔뜩 난 바람과, 따가운 햇살로부터
잠시의 쉼을 제공해 주는 의자가 정겹기도 하다. 온 몸을 감싸주는
천 소파라도 좋고 때론 차가운 느낌의 가죽의자라도 나쁘지 않다.
문명의 발달은 우리 삶의 온갖 것들을 편리하게 해주고 있다.
특히 인체 공학으로 제작된 의자는 업무의 효율을 높이는 것 뿐
아니라 육체의 피로도 덜 느끼게끔 설계되어 있다. 여기에 혁신적
디자인과 신 소재를 가세시켜 멋진 공간 연출까지 한 몫하고 있으
니 피곤한 현대인에게 의자는 삶의 동반자 같은 느낌도 든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의자도 꽤나 비싼 금을 치른 의자다. 앉아 있
는 시간이 많은 아내를 배려한 남편이 약간은 투자한 것이다.
예전에 사용한 의자와 비교할 때 규모나 움직임도 월등하고 편안한
것 같아 훨씬 피곤이 덜하다. 가끔 경직된 생각들이 머릿속에 소리
내고 있을 때, 섣부른 고독이 엄습해 올 때면 축 쳐진 몸을 깊숙
이 감싸주어 좋다. 8 년이란 세월의 때를 나와 공유하고 있어
가히 나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말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랜 된 것은 흘러가고 새로운 것은 낡기 마련인지, 검은 가죽으로
치장한 그 의자도 폼 내고 입성 할 때에 비해 다소 초라해져있다.
세파에 시달린 큰 나무 마냥 약간 흠집은 났지만 편한 쿠션감과
튼튼함에서는 전과 다름없이 완벽하다. 그래서 제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는 이 의자에 한번도 불만을 품은 적이 없다. 이 의자에 어
울리는 책상도 꽤나 크다. 그 당시 이들에게 치른 비용이 백 만원
가량,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닌 비용으로 장만한 것이다. 거금을 투자
한 만큼 품위와 규모, 위풍당당한 모양새 앞에 내 감탄이 이어졌다.
길고 넓은 그 책상에는 지금 두 대의 컴퓨터가 나란히 놓여 있다.
당연 의자도 두 개가 있지만 누구든 내 의자부터 차지하려 한다.
큰 힘쓰지 않고 어디 든 잘 굴러가고 작업하기 알맞게 조정된 점이
괜찮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신을 실으면 스스로 빙빙 돌며 휴식을
제공하기에 모두 이 의자에 앉으려 하는 이유다.
예전엔 나이란 한갓 관념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무시하며 살았다.
하지만 가는 세월에 주름살이 하나 둘 잡히듯 나 역시 몸의 리듬
을 무시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제는 갈수록 디자인보다 편함이
좋아진다. 현대적 감각에 맞는 딱딱한 의자는 이제 사양하고 싶다.
이빨이 시원찮은 노인들이 물렁하고 연한 것을 선호하듯 나 역시
엉덩이의 부담을 덜어주는 천 소파가, 몸을 담갔을 때 완전히 푹
빠지는 의자가 좋은 것이다. 만약 팔걸이가 있으면 양팔을 걸친
자세로, 주부다운 익살과 편한 담소도 매력 있어 보인다.
젊을 때의 멋은 아름답게 보이는 게 목적이라면 중년의 멋은 아름
다움보다 우아하고 편안한 자세에서 멋이 우러나오지 않을까 싶다.
최근 근사한 레스토랑마다 공통된 것이 있다면 실외 조경에 신경
쓴 것 이상, 실내 소품에도 변화와 세심함을 배려했다는 것이다.
첨단과 반짝이는 아이디어 소품과 함께 편안함을 주는 의자에,
특히 색상과 다양한 패턴에 꽤나 신경 쓴 점이다. 요즘 주부답지
않는 주부가 인기인지 연인들의 전유물처럼 상용화 된 곳마다 이
쁜 주부들 차지가 된 것 같다. 어느 곳이든 주부 팀을 목격한다.
정보화 시대문화권에 사는 주부답게 유명하고 멋진 곳이라면 주부
의 입 소문이 천리를 가는 모양이다.
여인들의 다양한 옷 차림 만큼이나 색과 디자인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의자들이 근사한 곳마다 눈길을 끈다. 금방이라도 쓰려지면
얼싸안아 줄 것 같은 편안함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일상생활에
매몰되어 허기진 가슴이 편한 의자 속에서 연소되지 않은 찌꺼기
일 망정 몽땅 태워, 재충전용 에너지로 전환시킬 것도 같다. 물론
나의 지나친 편견이 작용한 것임을 안다. 하지만 세파에 부대껴
마음 젖은 날이 많은 현대인에게 앞으로 편안한 의자들이 원목,
등나무보다 더 인기 많지 않을까 예측해 본다.
가끔 선약된 장소에 미리 와 있을 때가 있다. 예전은 미적 감각에
치우쳐 보기 좋고 근사한 풍경만 염두에 두었을 뿐 의자 따위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심플한 철제의자를 골라 깔끔하게
차를 즐기기도 했었다. 요즘은 무조건 푹신한 것, 옆에 끼는 쿠션
까지 있는 의자를 찾는다. 마치 아줌마가 버스에 빈자리를 발견하
면 먼저 선점하려 잽싸게 몸을 날리듯이........어느 새 나도 꽉 찬
나이가 되었나보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으면 얼마 후 배고프면
밥 달라 꼬르륵 신호음 울리듯 엉덩이도 이리저리 신호가 온다.
멋진 것보다 안락함이 최고라고 몸이 힘들다고 호소를 해댄다.
지금 내 공간엔 변변한 가구가 없다.
인테리어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탓도 있지만 자리 차지하는 가구
에 욕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것 외에 극히 간소하
다. 그래도 실용과 편리함을 위해 가구를 구입을 해야 한다면 쿠션
좋은 가죽 소파나 부드러운 질감의 천 소파 하나쯤 장만하고 싶다.
누워서 책도 보고, 먼 곳에 친구와 장시간 전화 수다 떨어도 피곤
하지 않게끔....무엇보다 좋은 음악과 함께 차 마실 때 느긋한 여유
부릴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그곳에 폼 나게 앉아 마치 세도 부리
는 서태후가 된 냥 거드름을 피워도 덜 밉게 보이지 않을까 싶다.
작업시간도 중요하지만 여유 부리는 휴식시간도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편한 자세로 '내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나' 느닷없이 찾아오는 비 일상적 생각을 통해서 자신을 추스르는
연습도 푹신한 의자와 함께 할 만하지 않을까. 머리 비우는 작업과
더불어 자신의 현주소를 상기시켜 주는 역에 편안한 의자가 꽤
일조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