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각들

『스프링벅』

와인매니아1 2009. 1. 12. 19:20

얘들아,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풀을 뜯어 먹어



아프리카에 ‘스프링벅’이라는 양이 산다고 한다.

이 양들은 평소 작은 무리를 지어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다가 점점 큰 무리를 이루면 아주 이상한

습성이 나온다고 한다.


무리가 커지면 맨 마지막에 따라가는 양들은 뜯어먹을

풀이 거의 없게 되므로 좀더 앞으로 가서 다른 양들이

풀을 다 뜯어먹기 전에 풀을 뜯어먹으려고 한다.

제일 뒤에 처진 양들 또한 먹을 풀이 없으니 앞의

양들보다 조금 더 앞으로 나서려 하게 된다.


뒤의 양들은 앞으로 나아가려고 달리고,

앞의 양들은 뒤처지지 않으려고 달린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모든 양들이 다 달리게 된다.

맨처음 풀을 뜯어먹으려고 했다는 것마저 잊은 채

오로지 다른 양들보다 앞서겠다는 일념만으로

정신없이 마구 달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수천 마리의 양들이 앞만 보며 달린다.

여기가 어딘지, 지금 자기들이 왜 달리는지,

그런 건 생각지 않은 채 그저 달리는 것이다.

마치 성난 파도처럼.

그러다가 그들은 해안가 절벽에 다다른다.


앗, 절벽! 눈으로 보고 알지만 이때까지 굉장한 속도로

달려왔기 때문에 갑자기 뚝, 멈출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절벽 아래 바다로 뚝뚝뚝뚝…

떨어진다고 한다. 순식간에 수천 마리의 양들이

익사하는 것이다.



*



“그래도 뒤의 양들은 그걸 보고 미리 서지 않을까요?”

“똑똑한 질문이야. 그런데 서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던 그 뒤의 양들이 덮치겠지. 그들에 의해

떠밀려서 결국 또 바다로 떨어지는 거지.”


선생님은 교탁에 서서 모두 얼빠진 표정으로

말이 없는 아이들을 죽 훑어보며 말한다.


“이 어처구니없는 짓을 우리가 하고 있는 것 같다.

왜 경쟁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경쟁하는 데 습관이

들어서 피터지게 달리기만 하고 있어.”

“하지만 대학에 가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너희는 대학생이 되기 위해서 사니? 지금 이 순간순간이

너희들의 삶이야.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풀을 뜯어 먹어.

풀, 맛있는 풀! 향기도 맡고 맛도 음미하면서 천천히 가.

삶의 목적은 풀밭 끝의 벼랑이 아니야. 풀이야 풀! 지금

너희들 옆에 자라는 싱싱한 풀이라고. 가다가 계획과 다른

길로 가게 되더라도 뭐가 걱정이니? 거기도 풀이 있는데.

못 먹어본 풀이 있어서 더 좋을 수도 있지. 빙 둘러간다고

낭비가 아니야. 생각지 못한 절경을 즐기면서 갈 수도 있어.”



출처 : 『스프링벅』(배유안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