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각들

나의 노출증

에스쁘레소 2005. 8. 25. 22:13
 

나의 노출증

오후의 농익은 햇살이 유리문 저 쪽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창 밖에서 혼자 익어가고 있던 햇살이 한창 기승을 부린 2월 꽃샘

바람을 잠재울 것 같았는데, 보기와 달리 휭휭~소리가 가볍지 않다.

얼마 전 벽 중앙 창가에 비친 따스한 온기만 믿고 짧은 반바지를 입고

멋쟁이 아닌 멋쟁이 흉내를 내며 열심히 돌아다녔다. 나중에 그 흉내

값을 톡톡히 치르느라 독감이란 불청객과 일주일간 전쟁을 치렀다.


신문마다 3일 동안 추위가 몰아친다는 뉴스를 꼼꼼히 들었던 남편이

일요일 성당에 가겠다는 나의 행동을 저지하고 나선 것이다. 아직도

감기가 물러가지 않았다는 핑계우산을 구실 삼아 훈시한다.

“당신의 건강은 바로 가정의 평화” 이런 구호를 외치면서.

거창한 구호로 “염려”와 “보호”란 사랑의 굴레를 덮어씌웠지만 밉지

않다. 비록 청개구리심보를 가진 나지만 이런 살뜰함을 묻혀 걱정해

주는데 얌전히 따르지 않을 수 없어 집에서 숨쉬기 운동을 하기로

결정 내렸다.


휴식이 채 무르익지 않았는데 삐리릭 전화가 울린다.

성당에 가기로 했는데 내가 보이지 않으니 궁금한 나머지 나를 인도한

남자가 안부전화 넣은 것이다. 벌써 펑크 낸 것이 이번이 두 번이었다.

실은 예전에 성당을 다녔었다, 그 친구 설득에 다시 몇 십년 만에 발을

내 디뎠는데, 날씨 탓으로 게으름을 부린 것이다.


몇 주 전, 신부님과 면담 약속을 했었다. 특별히 복장에 신경 쓰지 않고

평소처럼 짧은 반바지에 자켓을 입고 신부님과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자리엔 그 친구 아내도 동석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개구쟁이처럼

“제 애인입니다” 이렇게 소개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우리 모두 평소 그 사람 성품을 알기에 우스개 농담으로 들었고

혹여 딱딱함의 무드를 다소 부드럽게 만들려는 의도였음이다. 그러자

“선생님만 애인두지 말고 제게도 한명 소개 시켜주세요” 라고 잘 생긴

신부님도 합세하며 좌중은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던 것이다.


그 당시 연상하면서 그 남자친구의 가슴이 조마조마했던 사연을 다시

스케치하자면, 사제 한명을 배출시키는데 대략 20억원이 투자된단다.

혹시나 신부가 옷을 벗게 되면 국가적으로 막대한 손실이 아닐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바리톤 같은 톤으로 설명을 한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여름도 아닌데 겨울에 너의 입은 짧은 반바지가 문제가 되잖아?”

세상에나~ 겨울에 나혼자 반바지 입은 것도 아닌데 그런 말을 하다니.

그런 황당한 사실을 듣고 나 혼자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일화를 공유한 그 남자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요사이 부쩍

바쁘다고 엄살 피우던 그였지만, 성당을 두 번씩이나 펑크 냈었더니

인심쓰는 척 차한잔하자고 했다. 남편이 내 건강을 이유로 외출을

참아달라고 부탁 했지만 차한잔의 신청에 그만 남편의 훈시는 강 건너

가고 있었다. 애써 긴 옷을 입으려고 했지만 어찌나 둔하고 답답한지

내 옷 같지 않는 남의 옷처럼 어색하고 불편하다, 대체로 타이트한

옷과 짧은 스타일을 선호했던 터라 넉넉하거나 긴 옷에는 낯설기하다.


“역시 내겐 사시사철 짧은 옷이 어울려”

낯선 것은 불편하지만 조금은 매혹적이란 말로 내 유리한 쪽으로 해석

하며 다시 짧은 옷을 입고 나갔다. 이제 익숙할때도 되었는데도

이 구세대 남자는 나의 미니 옷차림에 놀랐는지 정면을 보지 못한다.

“춥다고 외출 못한다고 성당도 빼먹더니 패션은 전혀 딴판이네”

“이 모습이 어때서 그래?”

“아이고,,,눈 시린다” 비아냥거리며  목소리를 내린다.


사실 눈 시린 풍경이 지천에 깔린 세상 아닌가? 이 촌사람은 옷차림

하나에 눈이 시리다니.....그래서 이런 사람 때문에 안경점이 먹고 사는

구나 생각해 봤다.

“친구야,,,,아무래도 내가 노출증이 심각한 모양이다”

“그래도 자기가 노출증세를 아니 다행이네”


사실 남편은 나의 노출증을 무척 싫어한다

난 시원한 스타일을 좋아하기에 평소 윗옷 착용시  단추 2-3개 오픈

해 입는데 비해, 남편은 그게 못마땅해 2개를 단정하게 여며주는

촌극을 일으키곤 한다. 그래야 진정한 보호자다운 줄 안다. 사실

멋있게 보일려고 일부러 한 행동인데 정숙하지 않다나 뭐래나~~~


시내를 활보하는 늘씬한 여성들을 보면 난 언제나 신선한 자극을

받는다. 싱싱한 몸매를 감상하면 바로 생기와 탄력이 생긴다. 남에게

혐오감을 줄 정도 아닌 몸매라면 그 멋있는 몸매를 들어내며 타인의

눈을 기분 좋게 하는 것도 나름대로 즐거운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뭐랄까 자신있는 부분을 과감하게 노출 하는 것도 자신감 아닌가!


그런데, 내 남편을 포함해 일반남자들의 감춰진 기질은 뭍 여성의

노출증은 아름답게 보지만, 눈에 튄 자기 식구의 노출은 눈이 아파

그냥 보지 못하고 꼭 언짢은 사족을 붙인다. 마치 이조 여인네

한복처럼 은익미를 강조하며 하얀 피부를 들어난 것보다 거추장스러

워도 칭칭 감싼 옷을, 시원함보다 단정하게 여민 것을 선호한다.

아내취향이 다소 파격적이고 생경한 분야에 호기심도 가지고 실험

정신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용납하기란 무지 힘드나보다.

아직도 미니스커트에 타이트 한 옷차림을 할라치면 하늘 향해 눈꼬리

올리며 불편한 감정 들어내는데 인색하지 않은 것을 볼 때 내가 옛

선비랑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반문할 때도 있다.


“당신은 내가 늘 아줌마 티 내고 살면 행복해?”

“당신은 아가씨가 아닌 아줌마야, 정신차리고 착각하지 마”

“그래, 당신이 그렇게 다시 지적 안해도 난 아줌마 맞어. 그런데 꼭

그런 티 내면 내가 프리미엄 붙여준다던가 누가 할인해 주냐?“

“????......내가 말을 말아야지,,,,,,,제발 ......철 좀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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