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된 사항

     

금기를 깨트리는 일은 언제나 흥미가 있다,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풍경이 아닌 것이나 많은 사람이 쉽사리 동조하지 않는 행위를 하는것에 어줍짢은 용기도 필요한 법이다.

 

살다보면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누추하고 무위하게 느끼질때가 있다. 성실하게 꾸려온 삶을 행복이라 믿으며 열심히 살아왔음에도 자기도 모르게 뚫려버린 허망의 틈은 사람 가슴속에 한기를 느끼게도 한다.

대개 사람들은 어떤 한계에 다다랗을 때 또는 더 이상 생을 끌어갈수 없을 지경에 되어서야 비로서 목마른 그리움을 토로한다. 여성의 경우‘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차이점을 읊으며 어머니와 아내라는 집념어린 무게의 이름이 거추장스럽다고, 마음 안에 자리잡힌 고정상식을 벗어나고 싶다고 어설픈 대사를 읊어댄다.

내가 얼마 전에 만난 여성도 이런 범주에 혼돈이 오는 모양이었다.

서로 간 많이 알고 있진 않지만, 열심히 좀 더 아름다움을 구가하기 위해 자기 관리도 소홀하지 않는 현대여성이었다. 그녀는 성실함만이 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뒤늦게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현실은 보이는 것보다 가려져 있는 부분이 훨씬 많은 것이다.

평소 그녀는 큰 걱정없이 안락함의 모델처럼 내게 비쳤는데, 실제는 작지 않는 갈등 주머니를 차고 다닌 것이다. 뭔가 털어놓고 싶어서, 어떤 다른 삶에 위로 받고 싶어서. 내게 몇 번 연락을 취했었는데, 안타깝게도 늘 어긋난 타이밍으로 만나지 못하고 아쉬운 여운만 남겼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가진 우리만남은 눈물겹도록 반가운 상봉이 아닐수 없었다.

모처럼 도심을 벗어나 여럿이 하는 대화의 장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이제 남녀평등에 걸맞게 여성흡연이 일상화, 아니 어색하지 않는 현실이 되었음에도 공개석상에서 맞담배 피우는 것은 여전히 꺼리는 경향이 짙다. 잠시 서로 근황을 주고받고 있는데 그녀가 잠시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어느 새 담배를 익혔는지 내 앞에서 담배 물지 않고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화장실 가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닌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임에도 스스로에 놀란 표정을 보인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얼굴에 묻히며 나에게도 담배 한가치를 권해본다.

유감스럽게 아직 담배를 애용하지 못함을 알렸지만. 한편 흡연에 대한 여성의 태도에 뭔가 석연찮고 당당하지 못한 구석에 불편했다. 커피처럼 담배도 기호품인데 왜 장소와 입장에 따라 적절하게 즐기지 못할까? 가무에 능한 것이 흉이 되지 않듯이 우아한 흡연도 꽤나 인상적일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대개 여성들은 화장실을 본래 용도외에 뿌연 연기 피우는 곳으로 이용하는 예를 종종 접한다. 담배 피우는 것이 그리 큰 죄 짓는 것도 아닐진데 말이다.

답답한 마음에 그녀에게 장소 구애됨 없이 이제부터 편히 피우라고 권했다. 그녀의 성실한 삶 속 이면에는 흡연은 보통여성과 무관하고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라는 잘못된 이분법 사고가 자리 잡혔는지 ‘눈치볼 것 없이’ 즐기라는 나의 충고에 무척 고마워했다. 사람들 앞에서는 차마 용기나지 않아 애써 참고 있었다는 속내는 남들 이목에 전전긍긍하며 자기주장 들어내는 것에 서툰 중년의 현주소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동안 남의 흡연에 묘한 색안경 덮어씌웠던 본인이 정작 그 대열에 끼일줄 몰랐다면서 그 사이 심경변화가 많았음을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한마디씩 터뜨리는 외침은 한줄기 쓸쓸함으로 변형된다, 21세기는 위기 의식시대답게 누구나 보이지 않는 위기를 느끼는 모양이다, 생활이 무르익음과 비례해 혼자서 들기에 역부족인 외로움의 무게, 변화없고 건조한 삶이 주는 일탈의 유혹 등등 인간의 속물적 근성과 욕심이 맞물려 우리앞에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오직 한사람에게 구속됨으로서 얻는 안정과 총족감이 영원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는 싯구처럼내 안에 나를 흔드는 이가 분명 있을 법도 하지 않을까?

누구나 한번쯤 맛보는 위기감을 정신으로 상상하거나 혹은 실제로 행하는 차이만 있을 뿐 인간의 욕구는 오십보백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감을 두려워한다는  말처럼 같이 마주보는 동반자가 곁에 있음에 감사함보다 오히려 거추장스러워 좀 떨어져 지냈음 하는 바램도 갖는게 솔직한 마음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에야 비로소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알게되고 언제나 소중한 것들로부터 떠나온 뒤에야 후회 하는데 익숙하면서도 말이다.

가끔 인간은 타락하면서 세련된다고, 그래서 타락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서 세련이라는 고도의 기교를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금기된 사항들에 끊임없이 유혹 당하는지도 모른다. 알고보면 더 나은 생활이라는 명분 아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속이면서 평생 수없이 많은 겉치레 가치를 위해 애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내 삶의 향기를 더 향기롭게 만들어준다고 최면 걸면서, 그래야 편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