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각들

하루

에스쁘레소 2006. 9. 28. 18:23

 

 

 

생명이란 것은 자연에 흩어져있는 여러 재질들을 끌어 모아 통합하고 조직하여 새로운 것으로 재생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이는 아무렇게 되어있는 자연의 이치를 거슬리는 일입니다. 결코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지요. 생명은 거대한 자연의 한 귀퉁이에서 살아 남기 위해, 새로운 산물을 만들기 위해 늘 긴장하며 삽니다.

 

그러니 삶은 늘 부대끼고 복잡하고 피곤할 수 밖에 없지요. 산다는 건 마치 강물 속에서 피라미 한 마리가 거대한 물살을 거스르며 끊임없이 먹으며 헤엄치는 것과 같습니다. 헤엄을 멈추게 되면 휩쓸려 떠내려가고 생명을 잃고 말지요.

 

산다는 건 끊임없이 부는 바람을 헤치는 일이고 거친 물살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분해되는 것을 거부하고 떠미는 것들에 쉼 없이 반항하는 일입니다. 잠시도 멈출 수 없지요. 참으로 피곤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이런 힘든 일을 굳이 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이런 고해를 감수하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지요? 무엇이 우리 삶의 고난을 위안해 줄까요? 배우자를 잘 선택하고 자식을 낳고 잘 키우는 것이 내가 살았다는 확실한 증표가 될까요? 우리가 오로지 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살기만 하면 잘 사는 것일까요? 부와 권력과 명예를 얻기만 하면 이런 삶의 고단함은 사라지고 영원불멸이 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윤리 도덕 규범에 따라 살기만 하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까?

 

우리는 왜 자라는지 모르면서 자라고 왜 사는지 모르면서 삽니다. 우리의 탄생과 성장과 죽음이 마치 누군가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거 같지 않습니까? 우리 몸 유전자에 각인된 프로그램에 의해 자동으로 생체 시스템을 생성하고 제어하고 성장 시킵니다. 이 시스템은 식욕 성욕 등의 욕구를 발동시켜 우리에게 생존과 번식을 강요합니다.

 

다 자라고 나면 우린 스스로를 이 사회의 지도자로서, 종교가로서, 학자로서, 교육자로서, 장사꾼으로서, 회사원으로서, 하다못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자신을 규정하지요. 인류라는 거대한 집합체의 한 일원으로 소속되어 있다는 연대감을 확보하는 겁니다. 이 연대감은 부평초 같은 고난의 삶을 위안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역시도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명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계획된 설정인 것 같습니다. 마치 개미 무리가 무의식적으로 집단 생활을 영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어떤 힘에 의해 저절로 자라게 되고, 육체가 성숙하면 저절로 이성을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당연한 건가요? 어찌 보면 우리는 생체에서 통제하고 조절하고 분비하는 호르몬과 효소들에 따라 춤추는 인형 같습니다. 자라고, 사랑하고, 자식을 낳고, 자식을 키우고, 늙고 죽는 일들이 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철이 들고부터는 자신의 이런 삶의 고난을 이해하려 합니다. 젊은 방황 끝에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이 시스템을 묵묵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열심히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잘 키우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런데 왜 이런 설계가 필요한 지 평생 이해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거부와 반항의 몸짓을 합니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려 하고, 강물을 거슬러 헤엄치지 않으려 하고, 멈춰 있고 싶어 합니다. 이렇게 설계된 자신을 부인하여 스스로 자유의지로 목숨을 내 던지기도 합니다. 대자연의 자유-그것을 소망합니다.

 

산다는 건 바람과 같습니다. 거친 바람에 빠른 물살에 쉼 없이 흔들리고 부대끼는 일이죠. 하지만 평생 흔들리기만 한다면 얼마나 피곤할까요? 잠시 쉬었다 가고 싶습니다. 당신 곁에서라면 이 바람도, 이 물살도 잠시 잦아들 것만 같습니다.

 

 

***

 

 

하루 / 김용택

 

 

어제는 하루 종일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들이 멀리 흔들리고

나는

당신에게 가고 싶었습니다

 

당신 곁에 가서

바람 앉는 잔 나뭇가지처럼

쉬고 싶었습니다

 

어제는 하루종일

내 맘에 바람뿐이었습니다

 

 

 

Chris De Burgh - Lady In 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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