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각들

커피단상

와인매니아1 2001. 11. 28. 13:43

무언가에 익숙해진다는 것 참 무서운 것이다.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익숙함은 갈증날 때 찾는 물처럼 습관적으로 나오게 된다. 요사이
매서운 동장군이 기승을 피울 때면 그 어떤 날보다 따뜻한 커피가
생각나고 손놀림은 커피를 만들기 위해 분주하다. 익숙해진다는 건
어쩜 중독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부는 바람소리와 자잘한 마음자락
의 동요를 느낄 때마다 무의식의 습관은 실 가닥 연기 피우는 빨간
주전자로 향한다. 이제 더 이상 빨간 색은 찾아볼 수 없는 그 주전
자는 세월의 이끼와 내 부주의로 완전 검은색으로 탈바꿈해 있다.

퇴색한 주전자는 뚜껑까지 녹아져 이제 패잔병처럼 볼품이 없다.
진짜 전쟁통에나 구경할 수 있는 문화재 같은 물건이지만 내겐
그 어떤 도구보다 만만한 연장이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간다.
원두가 가정에 보편화되어 이제 헤이즐넛, 모카, 블루마운틴 정도는
한번쯤 귀에 익은 향커피 이리라. 그럼에도 난 원두보다 인스턴트를
더 즐긴다. 원두를 뽑는 커피메이커가 거실 한 켠 먼지 뒤집어 쓰고
있지만 이건 어쩌다 중국차 잎을 넣고 끓일 때 사용할 뿐 커피
본래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한번 뽑으면 계속 음용 할 수 있어 편리함에도 구태여 고집스레 사
용 않는 이유가 내겐 있다. 커피의 카페인이 불면증 야기 운운한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실제로 커피를 많이 마셔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내 주위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예전 커피를 마시지 않아
도 불면증에 시달린 나로서는 커피를 뽑아 놓으면 당연 마시게 될 터
이고, 더욱 잠과의 전쟁은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편리와 따뜻
함이 연상되는 커피메이커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이다.

한번은 손님이 인스턴트 커피 세트를 선물로 갖고 왔다. 집에 먹다
남은 커피도 적지 않은데 또 많은 양이 생겨 어쩔 수 없이 자주 타
마시게 된 것이다. 난 대충 눈짐작으로 커피를 탄다. 프리마, 설탕이
빠진 연한 블랙 커피를 즐긴다. 그러니 티스푼조차 불필요해 번거롭
지도 않다. 그윽한 향기 맡을 세 없이 그냥 물처럼 입술을 적신다.
이런 버릇이 반복되어 이제 중독에 가까워진 모양이다.

어느 계절보다 성이 잔뜩 난 겨울은 더욱 따뜻함이 그리워진다. 그
따뜻함이 한잔의 커피가 대신 해준 적이 많기에 겨울의 커피를 많이
마신다. 마치 미우나 고우나 한솥밥 먹는 동지처럼 나와 힘겨운 호흡
을 공유한다. 사방 볕 안 드는 사무실이나 찬바람이 옷깃에 딱 달라
붙은 공간에 서 있으면 내 눈은 저절로 커피자판기를 찾아 헤맨다.
뜨거울 것이라 여긴 종이 잔을 손에 쥐면 그 온기가 고스란히 내게
전달될 줄 믿기에 그러하다.
때때로 커피는 쓸쓸한 계절의 모퉁이에 던져진 내 정신을 맑게 하고
육신의 피로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 같다. 아마 이 각성(覺性)작용
때문인지 정신 집중을 요하는 분과 수험생이 잠과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자주 애용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 커피를 접한 때가 아마 대학 일 학년 때인 것 같다. 시골
에서 올라온 나는 그 당시 아바의 댄싱 퀸에 정신을 못 차릴 때였다.
수업까지 빼먹어가면서 음악 감상실에 눌러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기만 하다. 입시 치르기 전까지, 오직 시험만이 나의 전부인 냥
커피와 음악, 예술이 숨쉬는 풍경은 나와 상관없는 분야로 알았다.
대학의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는 뒤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밤 세운다는
속담대로 내가 딱 그랬다.

음악 감상실에 들어서면 우선 커피를 시켰다. 자주 먹어야 맛을
안다면서 맛 모르고 홀짝거렸고, 향기 음미할 사이 없이 그 수상한
액체는 금방 바닥 나버렸다. 너무나 시시하게 치른 게임처럼 그땐
커피 맛과 향에 문외한인 시절이었다. 다른 이보다 늦게 사춘기를
치렀던 나는 지금에서야 제대로 커피 매력과 정취를 느끼곤 한다.
요즘은 평균 서너 잔은 족히 마셔댄다. 몸에 좋은 보약처럼 한 두
잔은 기본이고 서너 잔은 게눈 감추듯 가뿐하다. 아마 예전 많이
취하지 않은 것을 늦게 벌충하려는지 아무튼 즐겨 마신다.

누군가가 맛있는 커피를 즐기려면 물맛도 좋아야 된다고 했다. 팔
팔 끓는 물에 커피를 추출하면 쓴맛이 나고 너무 식으면 떫은맛이
우러난다고 대충 85도 정도가 알맞다고 했다. 이런 점을 알지만 늘
끓는 물을 이용해야 커피 본래 정취가 와 닿는 냥 여전히 주전자의
김이 천장을 찌를 때까지 물을 끓여댄다. 뽀얀 물안개 피우듯 주전
자의 김이 보기 좋게 춤 출 때까지....결국 빨간 주전자는 깊은 상흔
의 검은 주전자로.....그러다 흉한 패잔병이 되고 말았다.

커피 마신 지 꽤나 오래된 지금도 커피 맛에 매료되어 음~~바로
이 맛이야! 하는 소리 내 입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커피가
주는 정서는 너무 좋다. 풍성히 놓인 시간을 요리하지 못해 쩔쩔 맬
때 커피를 머그 잔 가득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마음이 안정된다.
이상하게 예민한 신경이 스르르 풀어지는 게 느긋한 여유와 진정이
찾아온다. 비록 식어버린 커피라도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차분해짐
을 느끼니 커피가 주는 정서적 감흥이 고맙다. 마치 애연가가 담배
를 물면 안정이 되듯이 말이다.

요사이 내 습관 중에 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주로 집에서
직접 타 마시던 커피를 바깥 레스토랑에서도 주문한다는 것이다.
맥주나 칵테일을 종종 주문하곤 했었는데 요사이는 우아한 커피잔에
받침까지 챙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세상만사 근심이 풀어진다.
한잔의 커피, 안락한 소파, 먼 곳의 전경을 응시하는 느긋한 눈길
이런 어우러진 조건 속에 정신적 여유를 찾지 않을까 싶다. 어쩜 이
맛에 아늑하고 멋진 분위기 찾아 사람들은 비싼 커피를 마시는지도
모르겠다.
 

Chris Spheeris-Embrace



'삶의 조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5분의 교훈  (0) 2001.12.01
[퍼온글] 못먹어 죽은 귀신  (0) 2001.11.30
슬픔이라는 화두  (0) 2001.11.23
수료식 유감  (0) 2001.11.12
못 말릴 여성들  (0) 2001.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