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 그것이 덧없는 열정일지라도 때로 사람들은 그 덧없음에 목매단다.
무엇이 이들을 눈멀게 하는가.
어떤 광기가 이들을 파멸로 데려가는가.
김수현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는 중년의 금지된 사랑을 다룬다.
숨겨진 연애는 금기가 전제될수록 더욱 강렬해지는 법.
화영(김희애 분)은 가장 친한 친구의 남편 준표(김상중 분)를 차지한다.
남편과 화영의 연애 사실을 알게 된 지수(배종옥 분)는 분노한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배신과 굴욕감으로 울먹인다.
혼자가 된 지수는 힘없이 중얼거린다.
"사랑이 받고 싶어. 내가 하는 사랑이 아니라 내가 받는 사랑. 포근하게 안아 주고 너 없으면 못 산다 그래주고…."
금지된 사랑은 일탈로 치닫고 주변 사람들을 망가지게 한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 주는 충만함과 동시에 결핍감이라니.
설명할 수 없는 욕망은 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수백 번 왔다 갔다 하게 한다.
사랑은 두 사람이 아는 것을 세상 사람들만 모르는 거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는 것을 두 사람만 모르는 거다.
그러니 이 거대한 추상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거대한 추상성의 함정에 빠지는 순간 모호한 충동은 이들을 어디로 이끌지 모른다.
금지된 사랑, 오직 파멸만이 이들을 완성시킨다.
드라마는 치명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히려 드라마는 사랑이 추문이 됐을 때 인간 내부 심리의 '치사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추문이 되고 나면 사랑이란 기실 아무것도 아니다.
그 이후엔 오직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기 계산과 방어만이 남게 된다.
그래서 '내 남자의 여자'는 과거 눈물 짜는 멜로의 삼각관계를 벗어난다.
빼앗고 배신하는 팜므 파탈의 치명적 유혹이 시작된다.
요즘 목욕탕이나 식당엘 가면 아줌마들은 하나같이 '내 남자의 여자'이야기를 한다.
난리다.
"흠, 남편 잘 감시해야겠어요."
"이혼녀 친구랑은 절대 남편과 함께 식사를 하면 안 되겠어요."
그래서인지 추적 기능 휴대전화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몇 달 전에 실제로 주부들이 남편 뒤에 파파라치를 붙여 뒷조사를 하다 남편에게 이 사실이 들킨 사건이 보도된 적이 있다.
남편들은 아내의 의심에 분개했고, 부부관계는 곧 파경에 이르렀다.
현실이 드라마의 치사함을 닮아간다.
아무리 그래도 한국 드라마에서 여자는 왜 항상 악녀와 천사만 있는지 모르겠다.
남성 하나를 두고 왜 여성들끼리 언제나 권력적 관계가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서태후는 전날 밤 황제를 모신 궁녀를 다음날 잡아 양팔과 양다리를 자르고 항아리에 몸통을 넣어 죽게 했다.
여성의 질투는 남성의 권력을 온전히 제 것으로 차지하기 위한 또 다른 권력 암투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일부 남성들이 매력적인 팜므 파탈과 우둔한 천사를 다함께 누리고자 하는 데 있다.
그러니까 뭘 모르는 거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을.
아침에 정성껏 차려지는 밥상과 신으면 신을수록 윤이 나는 구두의 기적을.
잠자고 난 뒤 달팽이처럼 꼬여 있던 이불이 다시 쫙 펴지는 기적을.
그러니까 이 놀라운 일들을 우렁각시가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다.
우렁각시가 사라지면 그는 볼품없는 나무꾼이 되고 만다.
준표는 화영의 집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과거 아내 지수가 해 준 음식을 떠올린다.
간식과 야식을 준비해 주던 아내의 자상함과 다정함을 떠올린다.
그러니까 음식이다.
음식의 기억은 강렬해서 사람을 잊지 못하게 한다.
우렁각시는 남편이 잠자는 첫새벽에 몰래 일어나 밥상을 차린다.
고로 연애는 생활을 이기지 못한다.
연애는 일상을 이기지 못한다.
일상은 힘이 세다.
사는 것의 지리멸렬함을 겪은 이후에 질긴 사랑은 가능하다.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해!" "있을 때 잘하자!"는 고금의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