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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보기
와인매니아1
2007. 5. 30. 14:47
거울보기
난 자주 거울을 본다. 내 실루엣을 비추는 어떤 것이든 얼굴과 전신
을 내민다. 일전에 딴지일보를 보며 한참 웃었던 일이 생각난다. 남
자와 여자의 차이점을 비교해 놓은 것인데,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것들, 예컨대 통화, 수다, 화장실 이용, 친구 이름 부르기, 외출준비.
거울보기 등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냥 우스개 소리로 넘겨
버리기에 허전하고 그리고 조금 부끄러운 면도 인정했다. 특히 거울
보기는 나의 정곡을 콕 찌르며 빙그레 웃음 짓게 만든다.
남자는 집에 있는 거울이나 화장실 거울을 가끔 본다, 이에 비해 여
자는 자기 얼굴이 비치기만 하면 아무데나 얼굴을 갖다 댄다고 한다.
쇼윈도는 기본이고 숟가락이나 밥그릇 뚜껑, 심지어 대머리에도 갖다
댄다고 유머까지 동원되니, 글을 읽으면서 호쾌하게 안면근육을 풀었
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거울에 관한 일상사 행한 무의식 버릇들을
되짚어보니 전혀 터무니없는 우스개 소리만은 아니다.
길을 걷다보면 노소(老少) 구분 없이 여성들은 자기 모습이 투영 된
곳이면 무의식 반사 행동을 일으킨다. 나 역시 수면에 비친 물이든,
백화점의 에스카렛트의 검은 거울에서든 하여간 장소불문하고 내 모
습이 비치는 공간과 맞닿으면 그 순간 놓치면 큰일나는 줄 안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일단 점검해보기 바쁘고, 심지어 마지막 마무리가
미흡하지 않나 신경 곤두세워 뒤늦게 꼼꼼히 관찰 기회도 가진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집에서 눈에 띄지 않던 것이 그런 공간에는 별스
레 눈에 드러나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꼭 거쳐야 할 관문으로 여기
며 중간 중간마다 설치된 거울에 전신을 비춘다.
아이녀석도 명색이 남자라고 내가 보여준 여러 행동에 대한 촌평을
해댄다. 외출 때마다 항상 꼼지락거리는 엄마가 못마땅해 시어머니같
은 잔소리를 한다. 언제나 깔끔하게 대기하고 있는 우리 집 남자들과
는 사실 난 차원이 다르다.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보여지던 것들이
나갈 때가 되면 왜 그리도 눈에 잘 띄는지....아직도 멀었나? 이런
소리 서너 번 듣고야 대충 허겁지겁 나서긴 하는데, 그럼에도 늘 빠
트리며 미진한 구석이 남아 차의 룸밀러로, 밖에서는 솔직한 공간인
화장실을 통해 마지막 손질을 하곤 했다.
상태가 이 정도가 되고 보면 가족들이 나와의 외출이 은근히 짜증도
날 법 한데, 별 내색하지 않고-유감스럽게 원래 그런 사람이라 인정
하는지---- 언제나 나를 대동하고 나가려고 하니, 아니 누구든 나를
따르려고 하니 아마 이 버릇은 죽을 때까지 고쳐지지 않을지도 모른
다.
요사이 밖에서 거울보기가 더 심해 질 수밖에 없는 이상 증세가 하
나 생겼다. 자주 가는 쇼핑몰에 셀프메이컵을 하도록 편안한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집에서 이용하는 메이컵과 달리 신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제품과 유행색조를 전시 해 놓고 누구나 다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은 터다. 거기다 사지 않아도 부담스럽지 않게 안내원도 없
다. 만약 향기 나는 차라도 한잔 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리되면 오래
눌러 있는 족들 생길까 그것까지 배려하지 않았다.
집을 나서기 전 가볍게 화장--30대가 넘으면 화장이 아니고 분장이
라 하던가-- 하고 나서지만 어디 그곳에 갖춘 색조화장만 하랴!
그리고 고양이가 생선을 보고 지나칠 수 없는 법, 이것저것 즐비한
화장품을 아까울 것 없이 써보며 음~~괜찮은데.... 연발하며 그 시간에
녹아난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는 얼굴에 덧칠한다고 정신 팔려있는
엄마의 흥분된 모습과는 달리 심심해 죽겠다는 표정 짓고는 드디어
속내를 드러낸다.
엄마 여기 화장하러 왔나? 더 이상은 못 봐주겠다는 투로 한마디
톡 쏜다. 이리저리 방향 바꿔 거울에 빠져든 내 얼굴이 그만 아이의
한마디에 여유부리든 웃음은 십리 밖으로 도망을 치고 만다. 눈치 있
는 녀석이라면 엄마 얼굴이 색달라졌음에 공짜 찬사 늘어놓으면 얼마
나 듣기 좋을까. 난 저네들 색다른 모습에 진짜 모델 같다고, 입에 침
이 마르도록 거짓찬사 뿌려주었건만, 역시 찬밥신세가 되려고 그러는
지 골라하는 말마다 정나미 톡톡 떨어지는 말만 쓴다. 제법 마음에
들도록 분장을 마치고 나오면 발걸음도 한결 산뜻해진다. 투덜투덜
거리는 아이의 음성은 한쪽 귀로 흘리며 애당초 내 몫이 아니라고 애
써 부인해 버린다.
산뜻한 발걸음으로 길가에 즐비한 쇼윈도에도 내밀고, 복잡한 도심
속에 거울 비슷한 조각일지언정 얼굴과 전신을 비추기에 바빠진다.
혹 날아가는 새가 오물을 묻혀놓지나 않았나 싶어서.
대개 여성들은 새로운 것을 걸치면 그날 따라 유달리 거울 쪽에 시
선이 많이 간다. 흡족한 마음에 누군가의 시선을 받기 위해, 혹은 자
기 만족에 도취되어 자연스레 그런 행동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평소와 별 차이 없음에도 분장에, 그냥 색다른 메이컵을 사용했
다는 사실만으로 옆이든 앞이든 내 형상이 보이는 곳에 시선이 마구
돌아간다.
한껏 싱싱한 기분이 된 엄마와 달리 아무 것도 분장하지 않은 아들
녀석의 투덜거림은 제법 오래 간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눈썹이라도
그려 줄 것을, 그래서 스스로 달라진 모습에 나의 분장에 할애한 시
간을 이해 해 줄 수 있을 것을 하며 턱도 없는 망상을 가져본다. 종
알대는 아이의 잔소리가 그리 언짢게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산뜻해져 있기 때문이리라. 이 다음 아이의 여자친구
도 어미처럼 자주 거울에 얼굴 내밀지도 모르니 연습삼아 인내력을
키우는 것도 좋겠지만 아직 철없는 아이라 이해하기 쉽지 않으리라.
모처럼 곱게 입힌 화장이 아까워 이 모습을 남편에게 보이고 싶다.
혹 자기 아내가 아니라고 몰라보면 어쩌나, 다소 기대하는 마음으로
삐리릭 번호를 누른다. 항상 대기상태인 것처럼 남편은 금방 달려와
주었고, 아니나 다를까 나의 달라진 모습에 그 화장품 당장 사러가자
소리 나온다. 역시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은 남편밖에 없다는, 새삼스
러울 것도 없는 진리를 가슴에 담아본다. 10대 소녀 못지 않은 풋풋
한 청소년이 된 나는 거리를 스치는 사람을 다 비추는 쇼윈도에 유독
내 얼굴만이 또렷이 클로즈업되는 것 같다. 색다른 것 없는 내 얼굴
늘 익숙한 그 얼굴이지만 모처럼 마음에 들게 단장된 모습에 밖이든
집이든 거울보기에 분주해 진다. 가끔은 마음에 안든 내 모습이지만
나르시즘에 허우적거릴 만큼 근사해 보이기도 하다. 그래서 착각은
사람을 여유 있게, 기분 좋게 만드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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