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이 노랗게 바랜, 오래된 앨범 속 사진을 보는 착각을 가져본다.
그만큼 나의 철부지 유년을 생생히 묘사한 소설을 접한 것이다.
60년대 근대화 물결이 출렁대고 있는 시대 풍경을 어쩜 그리도 정감이
뚝뚝 떨어지게, 아니 비슷하다 못해 리얼하게 게 표현할 수 있는지......
내 또래의 작가의 회상을 통해 예전 우리 집 가사 일을
거들어 주던
가정부언니를 떠올리게 만들고, 평화롭기만 하던 안강의 농촌 풍경과
비가 오면 질퍽한 누런 황톳길, 그 길을 소달구지는 삐거덕~소리내며
잘도 걸어다녔던 내 유년의 정겨운 추억그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72개의 짧은 장으로 이루어진 공지영의 소설집 "봉순이
언니"는 다섯
살짜리 작중 화자" 짱아"라는 영악한 아이의 성장기 회상으로, 그 아이
눈에 비친 식모(食母) 봉순이 언니의 기구한
인생살이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우선 식모라는 반봉건적 제도와 그것이 보편적이던 시절의
사회상을 되살려주며, 적대적인 운명에 맞서는
한 여성의 싸움과 패배의
여정을 소설은 차분하게, 서사적으로 그려 보인다.
소설 속 주인공 가족은 60년대 초 산동네 세입자로 살다가
가장(家長)의
능력에 힘입어 중산층으로 계급적 상승을 경험한다. 박정희 정권이 전개
한 산업화, 근대화의 기류는 상당수 최고
학력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경제성장의 혜택을 부여한다. 그 중 짱아 아버지도 해외 유학까지 마치고
온 인태리로서 당연히 물질의
풍요를 누리고 산다.
살짝 얽힌 얼굴, 쌍꺼풀 없이 두터운 눈, 뭉툭한 코, 아랫입술이 윗입술
보다 더 삐져나온, 웃으면 빨간
잇몸이 드러나는 입매무새, 이쁜 용모보다
미운 구석이 많았던, 힘이 세고 억척스레 일만 할 줄 아는 봉순이 언니는
우리의 삶이 자기
선택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작하듯 빈곤한 가정에
고만고만한 형제들이 우글거리는 단칸방에 태어나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도시로
올라온 60년 혹은 70년대 상경한 소녀들이 택했던 저임금
숙식 가정부의 전형적인 초상으로 나온다.
작중화자인 "나"의 부모는
열살 때부터 봉순이를 데리고 있었기에 반은
수양딸처럼 여기며 또 그렇게 대우해 주지만 그렇다고 나의 친형제와는
엄연한 신분 차이를
두며 그녀는 더부살이 식모이상이 될 수 없었다.
나의 언니 오빠는 아침마다 교복을 다려 입고 학교로 가는 반면 봉순이는
밥과 빨래를
하며 틈틈이 "나"를 돌보아야 했다. 가족이 함께 아버지의 차
일제 도요타승용차를 타고 외출을 할 때에도 그녀는 혼자 대문
앞에서
가족의 등뒤를 부러움과 서러운 눈치로, 집을 지켜야만 되고, 어느 날
어머니 반지가 보이지 않자 도둑누명까지 쓰기도
한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건달 같은 세탁소 종업원인 남자와 눈이 맞아
야밤 도주를 하며 그때부터 그녀의 운명은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몇 개월이 지나 다시 가족 앞에 나타난 그녀의 볼록한 배는 運命을,
아직 철없는 19살의 그녀 운명을 더 힘들게 돌려놓고
만다.
소문이 두렵고 또한 봉순이 장래를 위해 서두른 결혼은 또 한번 그녀
삶을 버겁게 하는데,..... 애 하나 둔 폐병
걸린 남자와의 혼인으로 먹을
것 걱정 안 해도 될 자리인줄 알았지만, 풍요와 행복과는 아주 거리 먼
곳으로 그녀의 운명은 달음박 치고
만다. 임신한 몸으로 산골 농사의
엄청난 일과 또 허구 헌날 누워지내는 남편 폐병 약값의 부채만 잔뜩
짊어진 채 주어진 생을 일구어
가야만 하는 것이 봉순이 현실이다.
고생스럽지만 끝까지 희망 걸고 악착같이 살아보려고 한 두 번째 결혼
도 아이 해산과 더불어
폐병남편의 죽음으로 마침내 막을 내린다.
그때부터 친정이라 여기며 나의 집을 자주 찾아온 그녀 존재가 '불쌍'
이란 동정심을
넘어, 갈수록 짐스러워하는 부모님을 옆에서 지켜본 어린
나 역시 언니와의 유대도 단절이 된다. 내게는 엄마였고, 친구였던,
나와
마주친 최초의 세계였던 내 첫 사람 봉순이는 완전히 내 가족 전체의
짐이 되어버렸다.
"그 후 아버지의 회사는 더욱
더 안정되어갔고 언니 오빠는 어머니 소원
대로 좋은 배지를 교복에 달며 잘 자라주었고, 우리는 더 넓은 아파트로
5년마다 이사를 갔고
나는 내 조숙함을 여전히 잘도 숨긴 채로 자라났다"
30년이 지난 어느 날, 내 기억 저편에서 사라진 언니 소식을 우연찮게
엄마로부터
근황을 전해 듣는다. 나이 쉰이 다된 나이에 떠돌이 개장수
하고 눈이 맞아 아비 다른 애들 넷을 놔두고서 도망을
갔다고......
나는 안다. 처음부터 인간적 삶의 기본마저 상실한 그녀를 나는 안다.
처음엔 의붓아버지에게서 도망쳤고,
교회집사네 집에서 도망쳤고, 세탁소
총각과 눈이 맞아서, 그 다음엔 떠돌이 목수와 그리고 이번엔 개장수랑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봉순이 언니라는 것을......
이 작품을 죽 읽으면서 화자(話者)인 "나"의 성장기 회상을 통해 전개
되는 60년대의
시점으로 자주 돌아가게 만든다.
"양은으로 만든 국자에, 달고나 라고 불리던 하얀 덩어리나 누런 설탕을
녹여 먹던 또뽑기 집도 있다.
돌덩어리 같은 하얀 달고나를 국자에 넣고
연탄불에 둘러앉아 녹여서 거기에 소다를 약간 넣으면 부풀어오르던 그
하얗고 달콤하고 포슬한
그 맛"
나 역시 어린 시절 참으로 국자를 많이 했고, 집에서도 해먹는다고
국자마다 까만 가마솥처럼 깜뚱이로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가정 형편이
별 어렵지 않았던 관계로 내 태어날 때부터 70년 중반까지 시골에서 올
라온 가정부를 두면서 집안 일에 무심할 수
있었고, 혼자서 심심지 않게
지내곤 했었다. 그 당시 학교 갔다오면 언제나 나를 반갑게 맞아주던 것은
가정부언니와 메리라는(그시절의
개이름은 하나같이 메리와 도그로 통했다)
개였다. 가정부 이름이 대체로 영자, 순자, 말자 주로"자"를 많이 붙인 걸로
기억되며
하나같이 밥을 많이 먹었던 추억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60년대는 입에 풀칠하기 버거운 시절이라했다, 돈보다도 입하나
덜면
다행이란 심정으로 시골에서 도시로 식모살이를 많이 보내던 그 때가
지난 화려한 역사처럼 얼룩덜룩 추억과 동시에 내 기억을
헤집는다.
우리 집을 거쳐간 봉순이 언니들은 흰머리 희끗희끗한 육순노인이
되었을 터인데, 모두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모두
생존해
있을까?..........어쩜 몇몇은 운명을 달리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중년에 들어서서야 새삼 그 사람들의
근황이 궁금해지는 건
왜 일까? 혹여 지나쳐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의미심장한 나날이
흘러갔건만.... 일전에 공연한 뮤지컬 "그때를
아십니까"가 생각난다.
거친 바람의 소용돌이 같은 세월을 되짚어 보면 예전의 더부살이의
추억이 그들에겐 결코 아름답진 않겠지만,
그들로 인해 다소 가사가
편안했고 삶이 손쉬웠던 나였기에 그 시절 철없이 굴었던, 틀림없이
오만 방자한 횡포(?)를 피웠던 나의
행동을 뒤늦게 사과하고 싶다.
우리네 봉순이 언니들이 시대가 바뀐 지금쯤은 옛 추억들을 가슴에
묻어두고 어쩌다 꺼내 먹는 홍시처럼
행복하게 되씹기를 바란다.
그리고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으면 나 역시 더없이 행복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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