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리뷰(서평 모음)

내 마음의 옥탑방

와인매니아1 2002. 6. 7. 06:38



어떤이에게 세월이 흘러도 불꺼지지 않는 자그마한 방 한 칸이 있다.
인간들이 북적대는 지상으로부터 아득하게 유배된 공간......옥/ 탑/ 방
90년대 마지막을 장식하며 우리의 내면과 시대상을 들여보게 하는 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이 이번 23회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옥상(上)이 옥탑(塔)으로 한 글자가 바뀐 옥탑방이라는 조어(造語),
가난이 낳은 초라한 주거의 공간인 옥상 위의 방에서 인간의 내면적인
상황과 시대적인 속성을 슬프고도 아름답게 그려 보여 준 이야기다.

간간이 인용하고 있는 알베르 까뮈의 "시지프의 신화"를 언급하면서
작가는 산다는 것은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를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닐까라고 주인공의 힘겹고 절망적인 삶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관성으로 살아가고, 나이가 들고, 세상을 견디는 가련한 시지프인 남자와
온전한 지상의 주민이 되어 편안하게 안주하고 싶어하는, 가난에서 벗어
나기 위한 꿈을 가진 여자의 슬픈 이야기가 이 소설의 주테마이다.
미물처럼 속물 세계에 안주한다는 것, 어쩌면 누구나 꿈꾸는 인간의
속성을 옹색한 옥탑방에 기거한 여자의 꿈으로 대변함으로서 작가는
나에게 의미 심장한 화두(話頭)를 던지고 있다.
"세상을 올바르게 산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죠?".... 이렇게...

고급과 인간의 욕망이 응집된 곳, 젖과 꿀이 흐르는 현대판 가나안으로
묘사한 백화점에서 가장 화려한 제복을 입고 근무하는 상징적인 존재,
백화점 안내원인 주희에게 있어서 옥탑방은 속물스런 지상(地上)으로
내려가기 위한 잠시동안의 대기 방이다. 엄마는 돌아가시고 소아마비의
동생은 이모집에 맡겨져 있는 상황에서의 꿈은 지상의 주민이 되는 것.
지상의 속물 속에서 안주하는 꿈을 가진 여자의 삶은 어쩜 치열한 우리들의
고달픈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반면 레포츠 용품 영업사원이던 민수에겐 사장의 닦달과 형수의 눈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편안한 도피처다. 항상 수치(數値)와의 전쟁으로 백화점의
5층, 6층이 있는 매장과 그 실적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11층에 오르락 거리며
자신을 벌레 취급하는 형네 17층 아파트로 귀가해야 하는 게 남자의 현실.
5-6-11-17층을 벗어날 수 없는 고소공포증의 이방인은 지상의 공간 자체가
괴로움이였고 지상에 편입하지 못하기에 자꾸만 위로 올라가고자 했다.
올라가고자 하는 남자의 꿈과 내려가고자 하는 여자의 꿈이 어긋남으로 해서
사마귀처럼 등을 껴안는 그들의 관계는 지속되지 못하고 헤어지고 만다.
공중에 떠 있는 방이 아닌 땅에 발붙이고 살려는 소망을 한편 진실도 감정도
없고, 오직 목적만을 위해 수단 방법을 기리지 않는 파렴치한 꿈으로 매도
되버린 비루한 시지프....사랑하는 여자 꿈을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라
물질적으로 해결 해 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현실에 아파하는 가련한
남자의 절규는 차리리 인간적이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 희망을 일순 무너뜨리는 자신을 감당할 수 없는
거세당한 시지프는 결국 지상을 꿈꾸게 하는 옥탑방을 조용히 떠난다.
불완전한 지상의 주민이 살던 터전, 햇살 한 점 밀려들지 않는 그녀의 옥탑
방에는 이제 깊은 정적과 냉기, 그리고 비현실적인 공허감만이 있을 뿐....
서로를 사랑하기에 오히려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한 쌍의 사마귀
이야기를 누가 만들어 낸 동화였을까......
그녀와 헤어진 후 형의 중매로 무난한 상대와 결혼하고 대기업 홍보실로
직장을 옮겼어도 남자의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십 년 세월이 지난
지금, 여자를 생각할 때마다 남겨진 시간에 대해 깊은 두려움을 느끼는
남자. 지나간 시간 보다 남겨진 시간이 두려운 건 변화가 아니라 불변
하는 것에 대해 느끼는 끈끈한 채무감 때문이리라.

끊임없이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야 하는 끔찍스런
형벌에 처한 인간이야기. "시지프의 신화"을 통해 신과 인간, 이상과 현실
그 속에 감춰진 온간 인간적 고뇌를 드러내 보이며 여자는 편지를 남겼다.

"당신이 내게 선물한 '시지프의 신화' 당신이 생각날 때마다 읽고 또
읽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추억이 아로새겨진 옥탑방, 오래오래
세상에 남아 있기를 빌겠어요. 어쩌다 그 부근을 지나치게 될지라도
아름다운 추억의 성전으로 그곳을 올려다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주 우연히 지상에서 다시 마주치게 될지라도, 부디 행복한 시지프의
표정을 당신의 얼굴에서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시지프여 안녕.... 마지막 남겨진 그녀의 편지....
오랜 시간이 흐름에도 여전히 지속력을 느끼게 하는 주시(注視)의 언어는
남자의 기억에서 살아 숨쉬고 있을 것이다.

과연 현대인들은 신의 노여움으로 형벌을 받아 산정(山頂)으로 끝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도로(徒勞)의 존재들인가?
희망 없는 노동을 죄악시하고 도로를 무능의 결과로 치부해 버리는
시지프의 세계에 안주하며 살고 있지 않는지. 어느 누구도
도로(徒勞)의 절망을 숙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도로(徒勞)는 신이 인간에게 내린 형벌이지만, 그 형벌을 수행 할 때
인간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실존주의 철학의 명제를 이 작가는
옥탑방을 통해 우리들에게 제시해 주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만이 가난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듯이
빈곤에 처해보지 않고는 지긋지긋한 가난의 족쇄가 얼마나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지 감히 예측하지 못할 것이다.
지상의 주민이 되어 편안하게 안주하고 싶어하는 여자의 꿈은 현실적
으로 도덕적 희생을 담보함으로서 가능할 지 모른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적 타락으로까지 추락했다 치더라도 그 누가
그녀의 꿈에 돌팔매질을 할 수 있을까.

언젠가......
헝컬어진 내 마음에도 부드러운 불 밝힌 옥탑방을 마련해두고 싶다.
치열한 삶의 현장을 초연히 내려다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내 마음
속에 촉수 낮은 불일 망정 조그마하게 자리잡고 있었음 좋겠다..
편견과 모순에 사로잡힌 불행한 시지프의 얼굴이 아니라 자기 운명에
당당하게 맞설 줄 아는 행복한 시지프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
남자처럼 내게도 언제 찾아올지도 모를 그 어떤 운명과 익숙치 않는
얼굴들을 편안하게 맞아주는 시지프의 얼굴이 되었음 한다.
무심히 지나치는 세월 따라 우리들은 이 다음 어떤 시지프의 얼굴들을
하고 있을까?

Deep peace 깊은 평화
Judy Collins
RICHARD STOLTZMAN, Cla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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