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각들

내 병이 나에게 가르켜 준것들

에스쁘레소 2009. 8. 3. 15:50

몇 년 전 어느 날부터인가 몸에 이상한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글씨 쓰기가 힘들어지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예전같지 않았다.

남들이 걸음걸이가 이상하다고 병원에 가보라고 권유했지만 난 그저 아무것도 아니려니, 조금 피곤하고 무리해서 그러려니 생각하고 넘겼다.그렇게 2년쯤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

의사라는 내가 나에게 한 짓이라니!

 

나는 무의식중에 나 자신에게 닥친 위험 신호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여곡절끝에 진단을 받게 되었고, 우려하던 결과가 나왔다.

제껏 나 자신에 대해 가져온 헛된 자부심은 내 눈앞에 다가온 병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병으로 잃은 것은 단지 신체적 기능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기회가 되면 외국에 나가 정신분석에 관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꿈을 막 펼쳐볼 수 있겠구나 싶어진 때, 갑자기 병이란 놈이 내 앞을 가로막은 셈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한순간에 어이없게 잃어버린 나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무력감을 느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이라 함은, 우선 일을 오래 하면 힘들어서 중간중간 쉬어야만 한다.

무리를 하면 금방 몸에서 적신호를 보내온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게 화가 나고,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마음만 앞서다가 자꾸만 넘어지는 내가 창피하고 짜증이 난다.

 

쉽게 지치고 피곤한 몸 때문에 자꾸 다른 사람이 이해하고 보살펴 주길 바라는 내가 어린애 같아 창피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괜히 아이들에게 짜증내는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활기찬 엄마가 되어 주지 못해 미안하고,나중에는 가족들에게 짐만 될 것 같은 내 존재가 너무 부담스럽다. 그러다 누구를 향해야 할지 모르는 분노가 나를 삼켜 버린다.

그러다 이 모든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래도 처음 진단 받을 때는 더 크고 무서운 병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감사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절망하고 분노하는 내가 얼마나 간사한 인간인가.

 

저울로 잴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극미량의 생화학적 변화에 의해서도 이렇게 몸과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인간은 얼마나 미미하고 무력한 존재인가. 이런 생각들이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나는 그렇게 내 젊음의 일부를, 능력의 일부를, 건강의 일부를, 희망의 일부를, 내가 누릴 성취의 기쁨 일부를 잃어버리고 있었다.그리고 내가 잃어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이 너무 서러워 혼자 신음하고 있었다.

 

“지금 그렇게 걱정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바에 앉아서 걱정만 하세요.

그러나 걱정한다고 문제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당신만 더 힘들어진다면 그 문제는 놓아 버리세요.

그리고 지금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생각하세요.“

 

평소 내가 앞날을 걱정하며 불안해하는 환자들에게 잘 쓰는 말이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정작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내 가슴 안에서 두려움이 어둠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그 빈 공간에서 낮은 휘파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달라진 게 없는데, 단지 조금 힘들고 불편하다는 것과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조금 수정해야 한다는 것일 뿐, 그리고 내 미래가 조금 불투명해졌다는 것 뿐인데... 언제 내 미래가 투명했던 적이 있었나?

그 누구도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왜 난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두려워하고 분노하고 있는 걸까?‘

그러자 휘파람 소리가 리듬에 맞춰 내 안의 무엇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체념해야 할 때 체념하는 것. 체념할 수 밖에 없을 때 체념해 버리는 것.

삶은 때때로 우리에게 이러한 능력을 요구한다.

이때 체념은 분명 포기와 다르다.

 

포기란 때로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자신의 능력이나 자격마저 내던져 버리는 것을 뜻하지만, 체념은 자신은 버리지 않고 자신이 잃어버린 것만을 깨끗하게 단념하는 것을 의미한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인생을 달관한 듯한 자세로 체념의 가면을 쓰고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해 버린다.

그러나 이는 단지 삶과 자신에 대한 냉소이며, 자신의 무능력이나 무력함에 대한 합리화일 뿐이다.

삶에는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그대로 감내해야만 하는 부분들이 있다.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 그 중 하나요, 되돌이킬 수 없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 그리고 내가 어쩌지 못하는 타인의 마음 또한 여기에 속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체념은 삶의 불완전성과 우리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며, 그래야만 우리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미래를 향해 출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체념은 과거의 책장을 넘기는 작업이며 현재와 미래를 향해 우리의 마음을 여는 열쇠라 하겠다.

살다보면 분명 체념해야 할 때와 부딪친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 체념하지 못하고 계속 매달리게 되면 그것은 집착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과거 속을 떠도는 과거의 유령이 되기 십상이다.

모든 것을 두 손 안에 꽉 쥐고 놓지 않는 것보다 때로는 잡고 있던 손을 벌려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흘러가게 내버려 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체념이란 바로 흘려보냄이라 할 수 있다.

 

내 병을 처음 알았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이 체념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닥친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 이전에 품어 왔던 꿈을 허허로이 체념해 버려야만 하는 것. 점점 눈에 띄는 몸의 변화를 지켜봐야만 하는 것, 과거에 내가 나 자신에게 걸었던 기대와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찬사를 포기해야 하는 것 .

 

나에게 닥친 신체적 기능의 상실은 내 삶의 목표와 방식을 조금씩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체념의 미덕을 배우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내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그리고 내가 한탄에 잠겨 있는 동안 귀중한 내 시간은 야금야금 나 스스로 만든 불행에 갉아 먹혔다.

나중에는 내 건강한 신체적 기능마저 그 상실감 속에 병들어갔다.

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정작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현재의 소중한 내 시간이요,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조금 불편하고 힘들며, 불확실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소중한 것을 잃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의 병은 앞으로 내가 잘 보살피고 다스려야 할 손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찾아든 병마를 손님처럼 받아들이기로 체념하자 신기하게도 다른 것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때로는 몸에서 오는 불편이 나를 괴롭히고 짜증나게 만들고 슬프게 하지만, 나 자신과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제껏 내가 살아온 방식과 내가 추구해온 것들이 좋은 의도와 선한 측면도 많았지만, 그 위에는 욕심과 집착, 시기심과 경쟁심이 덕지덕지 앉아 있었음도 새로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병으로부터 배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받아들인 다음에야 비로소 겸손해진다는 것을, 체념은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고통이든 기쁨이든 우리에게 뭔가를 말해 준다.

물론 우리가 그것을 들으려 한다면 말이다. 삶은 그 자체로 우리의 스승인 것이다.

그 깨달음이야말로 지금도 내 곁에 있는 병마가 나에게 준 가장 큰 가르침이다.

 

<김혜남/어른으로 산다는 것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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