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화려한 불륜을

당신이 없으니 잠 잘수 없네

와인매니아1 2002. 8. 19. 02:06
거리의 가로수도 이제는 다른 나무들에게 안부를 전하려고 한다
모처럼 시원한 정화수를 맛보니 아마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한 잎씩 두 잎씩 떨어지면서 무엇을 나누어 줄려는지.
차분하게 본래의 자기 색깔을 찾은 도로들, 목마른 갈증으로
하늘만 쳐다보며 기다림에 지친 나뭇잎들, 모두 바람 속에 반짝
이며 우리에게 나눔의 정을 암시한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건낸다
관심을 갖자고......따뜻한 정이 그립다고.....

오늘 따라 남편의 출장이 호젓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주며
깜깜한 암흑이 더 빛을 발하고 있다. 평소에 늘 듣던 내 목소리,
결코 아름답지도 녹녹하지 않는 목소리인데도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 그 소리를 그리워하고 반기려고 하는 것을 보면 이 가을
비가 따뜻한 정을 사람들 모두에게 나누어 줄려고 살그머니 찾아
온 것이 아닐까?
거리 상 먼데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게끔 잦은 남편의
전화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부여한다. 서로 함께 호흡
하고 있다는 일체감을 다시 확인시켜주며, 따뜻한 정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걸 가슴에 발갛게 적셔준다.

비가 오면 오는 모양이다, 나무가 흔들리면 바람이 부나 보다
단순한 현상만 느끼던 남편이 나랑 떨어져 있는 지금은 마치
이 시대의 보헤미안처럼 낭만적인 사람으로 돌아가 있는 것 같다.

비록 잠시 떨어져 있는 지금,
일상 듣는 단답형의 그 목소리에 늘 함께 있다는 착각이, 그 따
뜻한 온기를 서로 주고받고 있다는 착각이 일어나다니, 늘 잦은
관심과 배려는 오늘따라 날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
곁에 없는 남편의 자리가 또한 편안한 건 무슨 조화인지......
삐리리~~~~남편이 귀가의 전화를 할 때면 우리가족은 그 순간
부터 무정부 상태의 무질서를 이것저것 손보느라 모두 혼줄이
나곤 했다, 마치 고음의 오페라 연습에 돌입하는 것처럼 긴장한다
하지만 지금은 듣기 껄거러운 발성연습도, 무질서도, 손볼 필요가
없음에 마치 들판에 소들이 꼬리를 흔들며 푸른 초원의 풀을 뜯어
먹듯이 나의 마음가짐이 넉넉해지니 남편의 부재가 그리 나쁘지만
않는 것 같다. (나중에 알면 섭섭하겠지만. 그래도 사실이다)

우뚝 서있는 고목 나무같은 남편에게 매미가 맴맴 매달리 듯이
우렁차게 울며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린 나와 아이들이 곁에 없음에
남편 역시 나 만큼 편안하지 않을까싶다. 조금 후 전화 오면 한번
은근히 물어보리라. 만약에....정말 만약에 날 놀리려고
"이 상태로 당분간 살았음 좋겠다" 이리하면 난 어떻게 응수를 한담!

"난 당분간이 아닌 평생을 이렇게 화려한 싱글로 지냈음 좋겠다"
질 수 없다 듯이 나 역시 이렇게 대하면 그는 어떤 반응 보일까?

아이고~~~~생각만 해도 재미있다. 교과서같은 그 성질에 이런 농담
하면 일도 안하고 당장 내려 올 것이다. 마음에 없는 소리도 때론
양약(良藥)이 될 수 도 있으니 "당신이 없으니 잠을 잘 수가 없네"
이렇게 라도 말해줘야 남편의 부재가 얼마나 큰지 알 테지!
그럼 일단 입술에 따뜻한 커피라도 묻혀야겠다. 마른입보다는 젖은 입
으로 말하면 자연스레 나올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