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오래전이지만 중년의 불륜 연인이 이 세상에서 못다한 사랑을 저 세상에서 누리기 위해 승용차 안에서 키스하고 있는 상태로 승용차 배출가스를 이용해 동반자살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읽은 적이 있다. 불륜 관계인 사십대 남성과 임신 중인 삼십대 여성이 강변에 주차된 승용차 안에서 차량 배출가스를 호스를 통해 뒷창문으로 연결해 놓은채 숨져 있었다는 것. 당시 승용차 안에는 "우리 둘은 저 세상에서 함께 있기를 바란다"며 나란히 묻어달라는 내용의 여성이 어머니 앞으로 쓴 유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비록 손바닥만한 짧막한 신문 기사일지라도 이런 뉴스를 읽으면 괜히 기분이 뒤숭숭해 진다. 아주 오래전에 일본 소설을 영화로 만든 <실락원>이 생각난다. 두 연인들이 동반자살하는 너무나 에로틱하고 너무나 애절하였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었다. 영화 자막 올라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가슴 찡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람들이 세상의 한 모습들을 판단할 때에는 좋다 싫다하는 감정적인 판단과, 옳다 그르다하는 논리적인 판단으로 나누어지는 것같다. 자신의 입장을 생각할 때에는 감정적인 판단을 먼저 앞세우고, 타인의 행동을 생각할 때에는 논리적인 판단을 먼저 앞세우는 것같다. 그래서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우스갯 소리도 생겨난 것인가 보다.
내가 알고있는 어떤 한 부인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적인 매력과 멜라니적인 매력을 동시에 갖고 있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자인데, 그녀가 갖고 있는 스카렛적인 매력은 본의 아니게 그녀 주변의 수많은 남자들의 마음을 곧잘 흔들어 놓곤 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녀가 갖고있는 또다른 멜라니적인 매력은 그녀로 하여금 의식적으로 늘 정숙한 몸가짐과 단정한 마음가짐을 갖도록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주변의 멋진 남자들의 애정 고백에 대하여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자신의 현 남편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자신의 두 아이들이 얼마나 영특한지에 대해서 항상 이야기하곤 했다.
우리들의 평범한 삶이라는 것은 항상 빨간 신호등이 켜져 있으면 조심스럽게 기다리고, 파란 신호등이 켜지면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걸어가는 그런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들이 선택하는 인생도 그러하고 우리들이 선택하는 사랑도 그러하리라. 그리고 대부분 이 부인처럼 그러한 삶과 사랑이 옳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면서 묵묵히 살아간다. 너무나 위험한 사랑을 하는 연인들을 보면 뒤에서 그들이 너무나 어리석다고 수근수근거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사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정상적인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보다는 비정상적인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 비정상적인 사랑을 하는 연인들을 부도덕하다고 매몰차게 몰아붙이지만, 영화 <외출>과 같은 비현실 속에서 비정상적인 사랑을 하는 연인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부러워하는 감정마저도 드는 까닭은 왜일까?
사람들은 누구나 평범하고 무난하긴 하지만 그래서 단조로울 수 있는 우리 인생에 대해 한번쯤 이탈의 꿈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꿈 같은 영화 속에서 탈선한 인생, 탈선한 사랑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탈선할 수 있는 열정에 감동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현실에서 사람들의 가슴 속에 깊이깊이 숨겨진 꿈을 이루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만약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이 길고 지루한 인생살이 속에서 한번쯤 한여름 태양처럼 작열하는 이런 사랑을 해봐도 괜찮지 않을련지. 인생에서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앞뒤면과 같이 양면의 얼굴이리라.
불륜 연인들의 동반자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판단은 각각 제각기일테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들은 그들이 처해진 극단적인 불행한 상황을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극단적으로 행복을 찾으려고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살아있는 일이 늘 행복한게 아니듯 그들에겐 죽음이 어쩌면 행복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아니었는지.
(어느 블러그에서 가져옴)
우화의 강 /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 듣고
몇 해쯤 만나지 않아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결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 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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