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서두르는 편이다. 회오리바람에 휘둘리
듯 자극을 받아야 긴장과 희미한 기억을 쫓는 모양이다. 가끔 부딪
치거나 칼에 베였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붉은 피를 본 순간, 아픔
보다 선홍빛에 당황하여 아픔을 더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일그러진
표정을 지어야 위안되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현상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는 것이다.
현대인 특히 여성은 체중계 눈금에 민감하다. 보여진 숫자에 희비가
교차되는데, 현상유지가 되면 개운한 얼굴인데 비해, 수치가 많아지면
진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경직된 얼굴을 보인다. 그 당시 토해
낸
다이어트 결심은 발등의 불이 되어 금방 시행 할 것처럼 절실하다
하지만 다이어트 첫걸음인 먹거리 유혹에 냉정해지기란 쉬운
일인가?
규칙적 운동도 병행해야하는데 그 실천도 호락하지만은 않다. 해서
번번이 절반의 실패자처럼 체중과의 전쟁은 휴전이 유지된다.
운 좋게도 미혼 때 입던 옷들을 아직도 입고 있다. 굴곡 없이
지낸
덕에 비만 스트레스는 아직 받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가끔
식탐이 생길 때가 있는데, 체중이 과해지면 큰 일 난 것 마냥
시간을
투자해 원상복구를 했다. 남의 눈에 표시 나지 않을지라도 누구보다
자신은 잘 안다. 움직임이 둔하다는 것을...해서 헬스,
사우나,감식을
통해 제자리를 찾으려 노력해 왔다.아마 이런 작은 노력 덕택에
예전 옷들이 나를 반겨주지 않았던가 싶다.
평소 사우나를 즐겨 하는 편이다. 어느 날,
전과 달리 늘 현상 유지하던 체중이 떨어져 있음을 확인하자 예전
흉하게 쳐다본 타인 행동들을 내가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체중숫자에
느긋한 여유와 게으름을 피운다고 할까,
대체로 사우나 이용객 중에 다이어트를 염두에 둔 부류가 있다.
후덥지근한 그곳에는 또한 온갖 이야기가 녹아 나온다. 마치 땀만큼.
사실 이런 수다가 뜨거움을 지탱하는 연줄이기도 하다. 땀을
흘린
만큼 일시적 체중감소도 기대할 만하니까. 그런데 일부는 말한 만큼
음료수를 마시며 갈증을 해소한다. 마시기 위해 사우나 온 것
마냥.
그러면서 건강하게 찐 살을 가리키며 살 빼야 된다는 소리도 빼먹지
않는다. 입으로 살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머리로 절실하지
않는
모양새가 낯선 외국인처럼 보인다.
이 세상에 공짜란 없다. 그 어떤 투자와 노고 없이 뭘 기대한다는 건
어리석지
않는가. 성취와 위대함 뒤에는 반드시 노력과 피나는 땀방울이
묻어 있다. 잠시 후 가뿐한 몸을 기대한다면 참을성도 키워야 되련만,
우선 답답함을 못견뎌 숫자에 대한 불안을 망각해 버리는 거다.
그들의 작심이 촉수 낮은 사우나 불빛아래 둥둥 떠다니는 걸 볼 때
내가 답답해졌다. 이런 현상을 이제 내가 그대로 전철을 밟고 있다.
체중감소에 더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안도감에
음료수를 마시며
자제했던 행동을 한꺼번에 벌충한다. 갈증 끝에 마시는 물이 꿀맛이듯,
그곳에서 마셔대는 각종 음료수는 바로 감로수였다.
사우나를 나와서 시원한 냉탕에 몸을 풍덩 담글 때의 그 기분...
그들이 대책
없이 마셔대던 음료수 습관이 뒤늦게 이해가 되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아도 어떤 계획한 일을 꾸준히 실천하는
습관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
들은 꼭 눈으로 확인하거나, 손으로 감지하고서야 필요성을
깨닫는다.
반대로 확인함과 동시에 희망을 접는 자포자기 형의 이도 가끔 있다.
그러고 보면 인생사 모두 숫자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든다.
체중 수치, 월급명세서. 그리고 나이, 남성의 승진 점수, 무엇보다
학생의 성적점수에 본인 외에 어른들도 긴장하지 않는가!.
우리 삶이 모두 숫자인생처럼, 단순한 수치에 희비쌍곡선을 그리며
사는 지도 모른다
세상은 언제나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눈에 갇혀있게 마련이다.
이 지상에서 보는 것은 눈에 보이는 그 만큼의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데도,...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샘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이
참이 아닌, 진정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볼 줄 아는 지혜가 참이 아니겠나.
이제 나이 들수록 단편적이고 눈에 보이는 현상에 연연하지 않는 진중한
삶을 추구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