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각들

초겨울의 단상

와인매니아1 2002. 11. 8. 03:03

계절의 발자국은 정확하다. 도로 곳곳 손바닥만한 낙엽이 몸을 비비고,
언제 떨어진 건지 노란 은행잎마저 고른 숨을 쉬며 누워지낸다. 여름 내
내 녹음(綠陰)과 싱그러움으로 제 소임을 한 이파리들도 이맘때면 옅은
무게로 가지 끝을 조용히 떠난다. 누군가 정해 놓은 일정한 주기에 맞춰
자연의 순환이 정확히 진행되는 것이 신기한 일이다. 모든 청춘이 잠깐
이듯 스카프와 바바리 옷자락에 묻혀 있던 가을이 잠깐 머물더니 어느
새 계절은 겨울 코트를 차려 입는다.

시간은 그 자리에 맴돌지 않고 앞으로 전전을 한다. 그 시간의 틈으로
몸을 감추며 짙은 블랙의 밤은 거침없이 찾아든다. 쾌적한 10월 밤 공기
와 달리 11월의 밤은 냉기의 반란처럼 창가에 달라붙어 쓸쓸함을 뿜어대
고 있다. 여느 때와 같은 세월그림자의 밤 풍경이지만 스산한 바람소리
와 냉기 안에는 막연한 그리움과 고독, 채우기 어려운 허기가 머문다. 허
기진 마음에 습관적으로 먹을 것을 찾아보지만 꾸역꾸역 넣을수록 포만
감은 달아나 버린다. 배가 고픈 것이 아닌 사랑이 고팠는지도 모를 일인
데...... 누군가 참다운 인생의 의미에는 받는 것보다 베푸는 삶이고,
주는 삶이 큰 행복이요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 했지만, 내 안
에는 여전히 주기보다 받는 것이 더 큰 행복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간만에 가족에게 겨울갈치를 구워주었다. 육류를 더 즐겨 먹어 좀체
생선을 상에 올리지 않았다. 솔직히 비릿한 냄새도 싫었고 발라주기 싫
은 내 게으름도 한몫 거들었다. 마침 살집이 통통한 은비늘의 갈치가 눈
에 띄길래 큰맘을 먹고 사들었다. 가벼운 아침 식사 후 뿔뿔이 흩어져
아이와의 얘기시간이 변변치 않은 요즘이다. 하여 식사시간만큼은 아이
와 도란도란 얘기 나누자고 작심한 터라 생선을 발라주며 아이의 일상을
들으며 먹는 모양새를 지켜보았다. 얼마 전에 배운 "GOOD" 영어단어를
들먹이면서 연신 맛있다 소리를 질러댄다. 함께 식사한 친정어머니도
맛이 좋다고 나에게 먹기를 권한다. 아이들 숟가락에 갈치를 얹어주기
바쁘게 자기 입으로 넣기 분주한 아이와 달리, 친정어미는 자식인 나에
게 먹이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내 자식이 맛있게 먹는 것이 보기 좋듯
아마 친정어머니도 그런 심정이었으리라.

맛나게 먹는 가족의 표정 속에는 내가 먹는 것 이상으로 나도 맛난다.
어미로서 당연한 행동인데도 내 사소한 행위에 아이들은 행복하다는 표
정을 아낌없이 연출한다. 평소에 '먹어라' 잔소리를 그렇게 해도 잘 먹지
않았던 큰 아이도 밥공기를 하얗게 바닥을 보여대니 내 배도 덩달아 채워
진 거나 진배없다. 사랑을 베풀고 주는 것이 즐겁고 뿌듯하다는 말을
실감한 저녁시간이다. 더군다나 끝모를 사랑을 확인한 것이 여간 즐겁지
않았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할머니 입장에서 나보다 손자들이 예쁘고 더
사랑스러울 텐데 여전히 딸을 챙겨주는 친정어미 마음씀에 찡해진다. 나
자신이 언제나 사랑 받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할까. 남녀간에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심리처럼 나 역시 누군가로부터 '사랑 받고
있는 존재인가'를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다. 우리는 싸움을 통해 사랑을
확인하고 고통을 통해 삶의 진실을 터득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지만 그
럼에도 비록 유치한 식으로도 그 내용을 검증 받고 싶어한다. 그런 순간
을 겪고서야 삶의 의미와 사랑을 깨달으며 어제와 오늘을 견디고, 그리
고 움츠려 드는 심술궂은 냉기의 스산함을 데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깊은 어둠이 거실과 방바닥에 깔린 때면 잠자리 준비를 한다. 모든 곳
이 같은 온도를 유지하건만 그래도 좀더 아늑하고 따뜻할 것이라 여긴
곳에 아이 잠자리를 마련한다. 아직도 어미 눈에는 철없는 개구쟁이 인
지라 챙겨줘야 할 것 같고, 함께 잠자리에 있어주면 안정을 취해 편하게
꿈나라로 갈 것 같아서이다. 물론 늘 챙겨주지 못한 미안감 때문에 한번
씩 자상함을 흉내 낼 때는 음악까지 동원해서 확실하게 한다. 이불을 목
까지 덮어주면 곧이어 답답하다고 발로 걷어버리고, 이러기를 여러 번
거듭하니 친정어머니는 보다 못해 한마디 거든다.

"아이들은 추운 것을 모르니 어미나 따뜻하게 잘 자라"
팔순 아비가 쉰 된 아들에게 신호등 건널 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듯
칠순 친정어미 눈에는 장성한 내가 여전히 철없는 어린아이로 비치는 모
양이다. 지극히 당연한 건데도 왜 갑자기 고마움에 눈물이 핑 도는지....
세상살이에 뒤얽혀 감동거리에 무덤덤 해진 탓일까, 아니면 계절이 주는
한랭한 고기압권에 익숙해져버린 걸까? 그러고 보면 따뜻한 말 한마디에
무척 인색하며 살았던 것 같기도 하다. 먼 곳의 친구에게, 가까운 내 가
족에게조차 사랑표현도 놓치며 지냈고, 필요에 의해 자주 접하던 지인
들에게도 여유와 푸근함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나날은 아니었을까 싶
다.

감정의 변화는 계절마다 기복이 심하다. 특히 연말이 다가오면 이상스
레 마음이 더 심란해지는 것은 나만이 그럴까? 베풀고 나누는 사랑의 미
덕이 더 절실히 요하는 초겨울은 이유없는 감정에 포로가 되어 때론 내
자신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가을을 많이 탄 탓도 있지만 정감 있는 말
한마디조차 남발하지 못한 내 빈약하고 얕은 마음 그릇 때문은 아닐까?
감정에 구멍이 생길까봐, 혹 상처받기 싫은 마음에 더욱 오그라드는 마
음이 답답하다. 추위가 잦아들면 옷깃을 여미듯 내 마음도 더욱 빗장의
부피를 더할까 싶어 갈수록 쌀쌀해 지는 겨울이 두렵기만 하다.

*2001년 11월 어느 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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