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는 그 자체

사랑에 빠지는 그 자체

와인매니아1 2005. 8. 12. 17:20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심통만 느는게 아니라 심통을 아닌 척 할
자제력을 상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내 나이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열아홉 처녀처럼, 아직도 사랑에 대해 서정적 태도를 지니고 있는
내가 한심하고 한가닥 지푸라기를 바라보듯이 초라하기 짝이 없다.
현실적으로 사랑의 끝은 레테의 연가에 나오는 말처럼 결혼 아니면
이별이겠지만, 이유를 막론하고 이별의 후유증은 가슴을 싸하게 저민다.
생은 지리멸렬하다. 사람들은 지리멸렬하다는 것을 알기에 특별한 삶을
꿈꾸는 것이 아닐까싶다. 반복되는 일상과 특별할 꺼리없는 건조한 시간
의 삶에도 행복과 더불어 불행도 얼굴을 내민다. 때론 예고없이 맞는 그
사실만이 특별하고 생존의 의미를 더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평범한 날
들로 엮어온 사람에게 드물지만 외로움이란 손님도 찾아오곤 한다.
무서운 손님으로 둔갑하는 외로움은 현대인들에게 영화 속의 첩보작전
처럼 스릴과 서스펜스를 그리고 진정한 자아찾기란 명분을 준다.

마약과 도박과 섹스 등으로 자아 존재를 확인해 보는 부류도 있지만
어딘가에 숨어있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수많은 인파속에 내가 원하던 사랑을 찾아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조금
외로움이 덜어질 것 같고, 그득 찬 물처럼 충만할 것 같지만 또 삶의
이면은 사막을 헤매는 목마른 사람처럼 갈증을 느낀다.
흔히들 사랑의 본질이 꽉 채워지지 않는 잔이라는 걸 이해하면서도
자기 사랑만은 완전하기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보태서 넘치는 술잔처럼
철철 넘치기를 기대하는 심리가 있다.

얼마 전, 소리없이 다가온 사람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명함주고 받았던
것이 계기가 되어 잠시 교류가 시작되었다. 소위 호감이 가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세련되지 못한 제스처와 어눌한 말투가 그리 밉지는 않았다.
불혹의 적당히 익은 나이 탓인가 아님 격의없이 대해주는 처세술 탓인지
여럿 중에 그와 나는 초면의 자리임에도 마치 오래된 지인처럼 편안한
미소와 소탈한 얘기로 적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헤어졌다. 상대에 대한
호감보다 예의와 분위기가 주는 정서에 따라 유쾌하게 보낸 것이다.
철부지 웃음과 마구 덜렁대며 주절 댄 나를 그 남자는 좋게 본 것인지
그 다음날 그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고, 그는 2시간 거리를 한걸음에
달려온 성의를 보였다.

처음 시작은 가벼운, 대수롭지 않는 만남이었다. 하지만 빈도를 늘일수록
그의 겸손한 인격과 선한 인간성이 차츰차츰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벼가 익으면 고개 숙인다는 속담처럼 결코 낮은 지위도 아닌 그 자신을
낮추며 또 예의바른 매너를 접하고 보니 차츰 호감이 생기게 되었다.
일회용 사랑이 범람하는 추세에 에로스보다 플라토닉을 존중해주는
그의 마음씀이 우선 고마웠다. 덜익은 유머를 구사하며 한 발짝씩
다가오는 그가 내게 관심 주는 것이 행복하기까지 했다. 물론 남자의
속성상 가슴에 이는 욕망을 잠재우기란 보통 힘드는 게 아니라 본다.
솔직히 여자 남자 욕구는 비슷한데 남자만 묘한 감상에 젖기만 할까?
남자 못지 않게 여자의 열정도 만만치 않다고 평소 여기지 않았는가?
하지만 욕망을 우위에 두면 더 이상 삶의 향기가 달콤하지 않을 것
같아 애써 무시하곤 했다. 한번쯤 꿈꾸는 낭만적 사랑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고, 나의 교류만큼은 속된(?) 것이 아닌 한 차원 높은 성숙한
만남이 되기를 욕심 낸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언제나 신선한 자극으로, 헐거워지는 긴장을 바짝 쪼게 만드는 당근과
채찍으로 격려해주는 와중에 나의 유치함을 드러낸 사건이 있었다.
그가 약속시간 30분을 넘기고 만 것이다. 마침 우중(雨中)이라 10분은
인심 좋게 기다릴 수 있지만, 30분 기다림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기다림은 구속을 의미한다. 내가 은연중 구속당하고 있는 것인가 생각
이 미치자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 얼마 후, 미안한 얼굴로 내 앞에 선
그를 뒤로 남기고 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기분 같아선 영화처럼
물컵을 얼굴에 확 붓는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지만, 어디서 참을 '인'이
생겼는지 끝내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이제껏 성심성의를 다한 그의
태도는 간 곳 없고 눈앞에 전개된 미약한 목록만 가지고 그를 형편
없은 인격자라 매도하며 무시해버렸다.

뒤따라 나온 그를 향해 늘 연습해온 대사처럼 결별선언이 당연하게
나왔다. 사고의 주파수와 열정의 색마저 다르다는 이유 같지도 않는
이유를 대며, 황당한 사례까지 꼽으며 얼음처럼 차갑게 굴었다.
적지 않는 시간을 투자하며 제법 서로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했건만,
이런 것을 맞닥뜨리자 또 다른 나 자신은 힘겨워하는 것이다. 나의
옹골찬 외침을 모두 인정하며 바싹바싹 타는 입으로 그는 2시간
설전(舌戰)을 펼쳤다. 마침내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의 끈기에 감복
해 그를 외면한 마음이 거두어지고 있었다. 두 번의 실수는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나서야 헝클어진 심사를 풀었던 것이다.

오래된 것은 흘러가고 새로운 것은 낡기 마련인 것처럼, 우리 교류도
일정한 시간 속에 느슨해지는 모양이다. 매일의 전화가 간격을 벌렸다
이해(2)에 이해(2)를 더하면 사랑(4)이 생긴다고 어느 글에서 본 말은
미묘한 감정 앞에서는 무색한 말이 된다. 애써 부인해도 서운한 감정이
깊게 자리 잡으며 실망을 늘려가고 있었다. 한번 틀어진 왜곡된 생각은
꼽 씹을수록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더 이상 시들해지는
교류에 생기 불어넣는 시도나 그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꼬불
쳐든 결별선언을 또 하기에 이른 것이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지극히 짧지만 많은 의미가 내포된 말로 순수한 교제에 종지부를 찍었다.
끈기에 뒤지지 않는 그는 나의 일방적인 절교에, 어처구니 없게도 나를
공주병으로 몰아붙이며 설득하려 들었다. 하지만 가벼운 전화와 기다림의
배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점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잠시지만 뒤늦게 스민 생의 또 다른 행복감에 도취되어 남편이 아닌
낯선 이가 주는 관심에 솔깃해 헤픈 웃음 날리기도 했다. 어쩜 내 것이
아니기에 색다른 호기심이 발동했다고 믿고 싶었다. 자존심 상한 그도
마침내 제 정신을 차린 건지 이제 전화 오지 않는다. 내가 뿌린 당연한
현상에 때론 울리지 않는 전화가 고장이 났나 무심히 쳐다보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도 내 마음을 이해한 것 같아 조금 감사한 마음도
든다. 정말 좋은 추억은 언제나 살아 빛나듯이 비록 길지 않은 만남 속에
어설픈 에피소드 몇 개는 충분히 아름답게 미화시킬 수 있을 것도 같다.

사람들은 사랑하기보다는 사랑에 빠지는 일 자체를 원한다고....
어떤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기보다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갈망하는
그 감정 자체를 그리워한다고 말한 스콧트팩 박사의 말이 진정으로
가슴에 와 박힌다. 나 역시 잠시동안 찾아 온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
사랑을 그리워하고, 조심스럽게 다가온 호감을 선뜻 잡은 행동 역시
아마도 사랑에 빠지는 감정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풋풋한 기억들이 더 많이 차지한 그와의 교류도 내 빛바랜 앨범을
화려하게 수놓는 페이지로 장식하리라고 믿고 싶다.

* 2천년대 어느 날
오래된 기억 조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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