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수채화의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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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는 그 자체
정신과 육체의 불일치
와인매니아1
2005. 8. 11. 11:26
육체와 정신은 함께 늙지 않는다. 사람들은 주름살과 흰머리가
보이면 정신도 같이 늙는 줄 알지만 정신과 육체의 불일치를 경험
한다. 기나긴 세월 만큼 몸과 마음에도 연륜의 성숙도가 생기면
좋으련만 삭아 진물만 나는 부추처럼 초라하고 유치해진다. 그것이
우리네 보통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해를 주기로 보기 좋게
켜를 늘려 가는 나무의 나이테를 보면 갈수록 정서 조절 기능이 빈
약하고 따뜻함이 줄어드는 내 마음씀에 쓸쓸해지기도 하다.
가끔씩 내게 여자의 넋두리를 전화로 장황하게 털어놓는 친구가
있다. 평범한 생활에서 벗어나 뭔가 일을 찾아 내용 있는 여성으
로 살고 싶다고 틈틈이 하소연 비슷하게 토로했었다.
한 단계 발전하는 삶을 구하고자 대학원을 마칠 만큼 지적 열정도
많았던 그녀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과 뭔가 달라야 한다는 집념
이 외롭고 고달프게 그녀를 짓눌렀다.
전업주부로 지내는 것이 무슨 죄를 짓는 것인 양 껄끄러운 표현
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덧없는 세월 까먹고 있는 자
신이 한심하다고, 심리적인 불안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일 때면 위
로랍시고 말하는 내 모습도 유치했다.
"뭔가 전문분야에 꼭 참여해야 만족과 올바른 삶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다. 아이들에게 賢母로, 남편에게 良妻로 자리 매김 한 것은
아무나 흉내 낼 성질이 아니다. 이제껏 잘 해내고 있는 것만 봐도
열심히 생활 해 온 네 모습은 의미 있는 삶이요, 가치 있는 인생이다"
감히 어쭙잖은 위로를 해댔던 것이다.
그 당시 친구는 변변찮은 나를 마치 행복 표본으로 삼았고, 또 일
을 가지고 활달하게 생활하는 나를 조금은 부러워했던 것이다. 그
러고 보면 학창시절, 그녀와 난 전공이 다름에도 레즈비언처럼 붙
어 다녔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격려,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오히
려 단란한 그녀 집안의 분위기를 내가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특히
여형제간의 화목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그녀는 잘 안다. 내 엄마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살갑은 정을 베푼 그녀의 친정엄마 성품을,
그녀 여형제들에게 전통처럼 대물림되었던 것이다. 다행히 하나같이
착하고 예뻐(미스 능금진 이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상황이
그녀의 자존심을 한껏 세워주고 있었다.
동생들이 일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친구는 아이교육 가사만 전념한
다는 것에 늘 억울해했다. 남편이 아직 개원을 하지 않은 의사라고
봉급자 이상의 사치는 꿈꾸지 않았다. 되려 알뜰살뜰 전형적 또순이
상을 보여준 그녀다. 그런 그녀에게 변화가 왔다. 바로 친구가 그렇게
원하던 일거리를 잡고 당당히 우뚝서기에 성공한 것이다.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장수처럼 평소 갈고 닦은 실력, 또 늘 가슴에 품고 있던 꿈을
이제 전면에 펼쳤다. 그녀의 변화는 나를 일순 자극시켰다.
올해 3월 박사코스를 밟기로 했단다. 물론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남편의 반대가 있었지만, 주저앉아 차일피일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선(先)행동 후(後)통고를 감행한 모양이다. 이제 주말부부로 살면서
뒤늦게 연애시절로 되돌아 간 느낌도 받았으리라. 적극적 삶에 일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법인지 그녀는 백화점 문화센타 강의도 맡았다.
요사이 내게 연락이 뜸한 이유가 그녀의 분주한 변화를 짐작케 해
준다. 대학의 시간강사 자리와 캐리어를 쌓기 위해 요리학원도 차릴
예정이라니 그녀의 행보가 어디서 멈출지 가히 예측키 어렵다.
그래도 일반 주부처럼 가정에만 안주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변신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녀는 뭔가 해 내겠다는 각오로 틈틈이 요리
학원을 다녔고 장차 요리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여러 자격증도 따놓았다. 마침 박사과정에 조리과정이 있어 쉽게
도전을 감행한 것이다. 운 좋게 일, 공부, 시기 삼박자 골고루 맞아
친구가 들려주는 목소리는 전과는 다른, 힘과 여유가 섞여 듣기 좋다.
특히 우리 여성들은 '시기'란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마치 결혼
적령기가 있다고 믿듯 일과 공부도 일정한 시기가 있다고 믿는다.
'여자니까' '이 나이에' 등 각종 토를 달고 스스로 과소평가 하기
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다 작은 반대에도 그만 꼬리 내리기 쉽
상이다. 결단코 이루겠다는 강한 의지 없이는 대부분 포기한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라서 뭔가 진보적인 시도에 반대의 벽에 그
만 설득 당한다. 하지만 뭔가 절실히 원하고 분명한 목표가 정해지면
지나친 반대에 대응할 용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친구처럼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잡기 위해 항상 준비된 자세로 산다면 포기와 체념
이 쉽지 않으리라. 지금 당장 친구의 변신이 성공이다, 행운이다
말할 수는 없다. 분명한 사실은 그렇게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지적 열망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은 노력하며 기회를 찾아 나섰기에
가능하다.
여성이 홀로 서기 위해서는 그나마 일이라는 매개체가 꼭 필요하
다.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거리로 인해 경제적 자립도 가능하다.
경제적 자립이 인격적 자립의 기초가 되는 사실에 대개 공감한다.
부부 역시 경제에 자신 없을 때는 수평관계보다 수직관계를 이루
기 쉽고, 알량한 몇 푼 때문에 무시당하는 것이 특별한 사례는
아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이런 말을 했다.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만의 방과 돈이라고.....씹을수록 가슴에 닿는 말이다.
몰두하는 일은 또 다른 만족을 자기 삶에 넣는 것이다. 아무리
일하고 싶다지만 경제적 곤궁을 겪으면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에 상응한 대가가 주어져야 받는 만큼 일할 수 있고, 더 많이
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그래서 자기 계발이나 자아실현이
이룩되고 삶의 질을, 인생에 윤기를 추가시킬 수 있는 것이다.
친구 역시 남편의 헤픈 씀씀이로 인해 속썩임이 많았다. 많이
벌어 많이 쓰면 좋지만 일정한 수입으로 과소비엔 한계가 따른다.
한 쪽은 소비를 미덕으로 알고 다른 한쪽은 긴축을 덕목으로 여기
면 때론 답답하기도 하다. 남녀간의 역할도 한번씩 바꾸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친구 부부를 보면서 해본다. 그 동안 수입 없던
친구는 자연 약자가 되어 조선여인처럼 순종적으로 지냈다. 이제
일을 가지게 된 그녀는 자기 주장을 당당히 세우는 현대인으로 살아
감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그 나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쾌거에.......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은 참으로 이상야릇해진다.
분명 고급 인력인 그녀가 쉬고 있음에 안타까워했고, 또 기회 닿는
대로 재량을 펼치길 바랐었다. 그리고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도
인정한 터이다. 개인을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집안에 썩힐 인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동의하면서도 막상 꿈꾸던 변신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왜 내 마음은 초라해질까. 나보다 훨 잘 되기를 바라는 마
음도 솔직한 심정인데 막상 화려한 변신 앞에 갑자기 자신이 누추해
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늘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였는데, 이제 내가
그녀를 부러워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인지...아무튼 몸에 세월
이 붙는 것과 비례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의 양분이 빠져 더 유치해
지는 것이 바로 내 중년의 현역인지도 모르겠다.
When I Fall in Love
Richard Stoltzman
(클라리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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