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각들

같은 이름의 두 여인

와인매니아1 2001. 9. 3. 02:21

같은 이름의 두 여인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이름의 두 여인에게 전화가 왔다.
한 동안 연락이 뜸해 그럭저럭 잘 지내겠거니 여긴 '영희' 라는 이
름의 두 여인. 그들이 소식주지 않으면 그의 근황을 까마득히 잊
고 지냈을 것이다. 한쪽은 나의 언니요, 다른 한쪽은 조카인 친척
이다. 이들은 이름 이외에도 다른 공통분모들이 많았다. 두 여인의
남편들이 하나같이 가정적이 못하고 소속감 없이 바빠 집에 잘 들
어 오지 않는 거였다. 건달 비슷한 생활이 그렇듯이 늘 바쁘다 소
리를 달고 다녔고, 가족에겐 냉담 그 자체가 밖에서는 친절과 신
사 매너로 인기가 괜찮다는 것까지 어쩌면 그리 닮았는지.....
이와 달리 두 여인 모두 자녀교육에 철저한 어미로서, 시원찮은
남편일지언정 내조에 충실형, 그리고 모두 미모까지 갖추고 있는
점이 남편의 공통분모에 이어 그들의 공통분자이기도 했다.

몇 시간 간격으로 전화 온 그들과의 대화는 잠시 잊었던 지난 내
간들을 되짚게 한다. 건조한 일상이라 툴툴거린 내 현재의 삶이
얼마나 평탄하고 무리 없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언제나 현재 주어
진 삶에 만족하기 보담 힘들어 하는 타인을 통해 현재의 내 모습
을 정확히 볼 수 있는 모양이다. 바야흐르 쉰 줄의 영희 언니는
'지지리 궁상'이란 말에 어울리게 알뜰 살뜰 생활을 해 온 터다.
가정에 묻혀 지낸 여인답게 살림과 가사, 자녀에게 더할 수 없는
희생적 어미 외에는 내 세울 이력 없는 전형적 전업주부였다.
남에게 뒤지지 않는 시원한 용모와 탁월한 손재주, 허실부실 낭비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정말 좋은 사람 만나 오순도순 잘 살아
갈 줄 알았다.

연애 경험이 전무(全無)한 두 여인은 모두 중매 결혼을 한 케이스
다. 음악선생으로 교편 잡은 조카 영희와 달리 언니 영희는 신부수
업만 착실히 해온 내성적 여성이었다. 언니 170키가 말하듯 그 동
안 선본 사람마다 키가 맞지 않아 본의 아니게 늦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180 신장의 인물이 멀쩡하고 달변에 가까운 말솜씨
로 언니를 유혹하는 남자를 만나자 이제사 제 인연이 나타난 줄 알
고 망설임 없이 결혼을 결정한 것이다. 옛말에 고르고 고르다 눈먼
사위 본다는 속담처럼 참으로 이 남자는 엉터리였다. 신혼여행지에
서 새색시 곁에 두고도 딴 눈 팔기 시작하는 것을 얼핏 본 모양이
다. 그때 언니는 여자육감으로 예상한 것이다. 잘못된 선택으로 평
생 속 썩을지 모른다는 것을....그리고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늦게 결혼한 죄로 자기의 선택을 숙명이라 여겨 순응하
자고, 착하게 예쁘게 살면 딴전 피우지 않을 거라 자신을 달래며 진
짜 피눈물나게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오래 전
장면이 생생하다. 잠시 방문한 그녀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기다리고
있으니 아이를 업은 여인이 두 손 가득 무거운 과일꾸러미를 들고
낑낑대며 대문을 들어서는 것이다. 몇 푼 아끼자고 바로 옆 과일가
게를 두고 멀리 있는 공판장까지 다리품 팔아가며 사온 것이다. 들
고 오는 모습에 참 알뜰 주부구나 하며 머리를 흔든 기억이 새롭다.
이 모습과 달리 남편은 한 달에 보름 이상 외박은 당연했고, 생활비
는 가뭄에 콩 나듯 감질나게 던져준다. 마치 아이가 과자 사 달라
조르면 마지못해 한 봉지 안겨주듯 하루 견디기 어려울 만큼 푼돈으
로 때웠다. 그러니 저절로 궁상떨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

인생을 갉아먹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타인 같은 남편은 더욱
먼 타인이 되어갔고 그에 따른 기대와 신뢰는 바닥이 보일 만큼 얕
아 갔다. 그렇다고 막막한 현실을 혼자서 살자니 아이가 눈에 밟혀
감히 이혼이란 선택은 언니에겐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다행이 절망 속에 꽃이 피듯 자녀 모두 착실한 모범생으로 자라주는
것이 그저 고맙고 감사했다. 대체로 쉰 줄 넘긴 세대들이 그러하듯
남편에 대한 갈증을 아이들에게 돌렸고, 한 가지도 낙(樂)없는 언니
에겐 자녀는 빛과 소금이었다. 현재 자녀들은 서울대, 고대, 이대 등
소위 일류대학에 장학금 받고 다닐 정도로 세 자녀는 착실히 성장해
주고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내 몸이 가루가 되도 좋다는 각오로
맹모삼천지교를 직접 행한 열성파 언니. 큰 아이가 서울대에 진학
하자 현재의 삶을 미련 없이 정리하고 서울로 이사를 했다.

사치와 몸 아낌이 뭔지 모르는 구차한 환경에서, 남편 외도와 냉
담 앞에 수 십 번 잦아드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자신을 추스르도록
구제해 준 것은 바로 착한 자녀였다. 언니에게 신이 있다면 바로 자
녀 신(神) 만이 존재했다. 평범한 여성이 누리는 행복 목록에서 한번
도 해당사항 없이 비껴 가는 언니에겐 생존 의미요, 생명 끈인 것이
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질 남편과의 인연으로 20년 넘게 신경정신
과 약을 복용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녀의 삶이 얼마나 황폐하고 힘
이 들었는지 난 보지 않고도 짐작이 간다. 물론 지금도 미래에도 그
약을 달고 살아야 될 운명일 것이다.

작년 일이 있어 서울 갔다 언니를 보았다. 전형적인 아줌마의 형
상을 하고 내 앞에 선 언니는 너무나 초라했다. 중후한 멋은 찾아
볼 수 없었고, 인생이 반 이상 꺾인 지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
다. 참으로 상상과 다른 모습에 내 속이 많이 상했다고 할까.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에 수긍이 갔다. 인생이 한 남자로 인해 구
차하게 망가질 수 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 지 않지만 사실이다.
단 몇 푼의 돈일지라도 자신의 사치와, 삶의 질을 높이는데 투자하
지 않는 언니에게 무언가 도움 줄 수 있었으면 했다. 별 뽀쬭한 수
도 없고 내려갈 비행기 삯 만 남기고 가진 돈을 죄다 주는 것 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소일 삼아 또 가계에 도움을 주고자 궂
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직업전선에 뛰어 든 언니는 이제 육신이 따
라 주지 않아 일도 못할 지경이라 했다. 쉰 줄에 죽음을 맞는 노
인 같은 소리를 해대니 참으로 안타까워 눈물이 나기도 했다.

더 이상 절약할 수 없을 정도로 초 절약이 몸에 익은 언니의 삶은
사실 첨단 현실과는 거리가 먼 삶이다. 그 동안 연락이 두절 된 것
도 사실 전화비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전화를 말소시킨 것이다.
지구촌이 한 지붕이 된 마당에 기본적인 생활 필수품조차 무시하고
산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일인가! 가난한 마음이 가득 찬 언니에
겐 첨단 세상은 여전히 낯설기만 한 모양이다. 오늘 전화를 개통해
다시 내게 연락 취한 것이다. 전과 다름없는 지친 삶이 이어짐에 언
니는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평생인데' 이라는 하소연을 한다.

"그걸 이제 깨달았어? 그 좋던 세월 할머니가 되어서야 알다니"
그러면서 제발 타락 좀 하라고 얼토당토한 설교를 다시 늘어놓았다.
언니가 내게 전화한 것은 나에게서 신세대강의가 필요한 것이 아닌
죽음 같은 혼돈의 시간들을 끄집어내어 위로 받고 싶은 단순한 목적
임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참았던 감정이 둑이 무너진 것 마냥
흑흑 소리내게 되면 듣고 있는 난, 날이 선 칼을 휘둘러는 심판자가
되어야 했다. 일방적인 언니 말에 의존해 상대는 죽일 놈이 되어야
했고 꼭꼭 씹어도 시원하게 넘길 수 없는 단맛 빠진 껌이 되어야 했
다.

사실 사생활이 복잡한 남편의 과오를 한참 어린 나에게 털어내기
까지 무척 고심했으리라. 이성과 끈기로 무장해서 경청해야 될 내
입장은 냉정하기 보담, 또 여과해서 역지사지의 위로도 해 주어야
함에도 난 늘 망각한다. 기회 닿는데로 어줍짢은 말로 헛고생하지
마라고, 내 기준에서 감히 위로도 아닌 언어를 풀기에 바빴다. 결혼
이 선택 인처럼 이혼도 능히 선택 할 수 있는 거라 누누이 역설하곤
했다. 삶에 도(道)튼 사람 같은 어투로 언니에게 설교하면 그 놈의
돈 때문에를 들먹이며 언니는 말꼬리를 내렸다. 푼돈은 벌 수 있지만
자식 공부까지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하면 나 역시 속수무책 더 이
상 도리가 없어진다. 그나마 한시간 이상 후련하게 털어놓으면 가슴
앓이가 덜어졌다고, 변변한 대안도 제시 못한 내게 그저 고마워 여
기는 언니가 그렇게 가여울 수 없다.

똑같이 가정적이지 못한 남편을 둔 조카 영희는 그나마 언니영희
보다 좀 낫다. 물론 행복을 가장한 채 무리 없이 살아가는 것 같지
만 그래도 그녀 형편을 아는 친척들은 그녀가 행복하지 않음을 안다
특히 패물까지 팔아가며 음악 레슨비를 마련한 친정부모에게 큰 못
을 박고 있다는 것까지도.....하지만 그녀는 모태신앙과 직업에 몰두
해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배운 사람답게 불행과 고독도 고상하게
색칠하는 조카는 그래서 나의 걱정범위에서 벗어나 있나보다.

언니 영희는 이 살맛 난 세상에 사람다운 대접도, 한 남자에게
이쁜 여성으로 사랑 한번 제대로 못 받고 살아온 안타까운 여성이
란 점에 공연히 화가 치민다. 예부터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
지 않는다 했다. 적당한 살림꾼으로, 남들처럼 인생의 희로애락도
맛보면서 이 시대를 걸었더라면 남편이 아내를 무시하고 가정에 소
홀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만약 자기관리와 발전적 해체를 두려
워하지 않는 행동으로 일관했더라면 틀림없이 남편은 긴장하며 아
내의 소중함을 깨달았을 것 같다. 허구헌날 닥순이처럼 닦고 쓸고
궁상만 떠는 덕에 어쩜 여자팔자를 드세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

어떠한 이유를 갖다 붙여도 용서할 수 없는 언니 남편을 어떤 식
으로 단죄하고 싶지만 제 3자인 나는 그저 공허한 말만 앞세울 뿐
이다. 곁에 있다면 독기 서린 눈으로 화상 입히기도 하련만, 그런
부류들은 눈치와 머리 굴림에 비상한 재주가 있는지라 오랫동안 우
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도 부끄러워하는 양심은 남아 있으
려나....아니 타인에게 신사 면모 보이느라 시간이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을 해본다.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라고..
자신이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데 누구에게 사랑 받겠느냐고 다시
자기애(自己愛)를 강조했다. 또 이제라도 용기 갖고 어디 좋은 사람
없나 눈동자를 부지런히 굴리라는 말도 빼먹지 않고 덧붙였다. 허
탈한 웃음 한 조각 전화선을 타더니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이지'
하는 고달픈 언니 목소리가 내 귀에 희미하게 머물다 사라져갔다.
가끔 영양가 있던 없던 열변을 토하고 나면 시원 할때가 있다.
하지만 이처럼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고도 답답함이 내리 가슴에
머물 때 도 있는 것이다. 그럴 때면 고개 들고 쳐다 본 맑은 하늘
이 눈물나게 눈 시리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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