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각들

나이트크럽

와인매니아1 2001. 9. 4. 10:29

나이트클럽

인지상정은 시끄러운 것을 좋아한다. 그 소란스러움에 인간의 냄새와 정
이 흐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말은 아니지만 사
람들은 고요함에 익숙해지기 어렵기는 하다.

요 근래 들어와 숨막힐 만큼 정숙하게 지냈다. 일전에 달린 마라톤 후유
증인지 심신이 소금 뿌린 배추처럼 늘어져 틈만 나면 눕고 싶었다. 하지
만 자리보전할 만치 홀로의 채널은 더욱 우울증을 유발할 것 같았다. 답
답할 때는 일단 집안을 벗어나 다른 분위기를 맛보는 것도 괜찮다. 때론
차분한 음악이 심신의 주름을 펴주기도 하지만 역동적 움직임과 시끄러
운 소리도 기분전환으로 나쁘지 않다.

평온한 심정에 근심을 키운다고 무엇인지 아주 빠른 속도로 내 옆을 지
나쳐 버린 나날이다. 여성들은 빛 바랜 생활에서 인생으로 탈출할 수 있
는 티켓을 항시 꿈꾼다. 신앙을 통하거나 색다른 이벤트, 허기진 마음을
채워 줄 수 있는 일거리를 통해 다른 인생을 느끼고자한다. 반면 남자들
은 연애 속에서 어중간한 베고픔을 채우고 인생을 찾으려 하는 것 같다.

난 나이트클럽 가는 것을 무지 좋아한다. 우아하게 음악 듣는 것 못지
않게 고막이 탈이 날 것 같은 분위기도 좋아한다, 또한 열정적으로 흔들
어대는 몸놀림을 나는 여전히 사랑하고 즐긴다. 신나는 음악과 화려한
조명아래 춤추고 있으면 생의 희열을 느낀다고 할까, 아무튼 인생은 아
름답다고 마치 이 공간이 나의 최대행복을 제공하는 냥 착각을 한다. 그
래서 누군가 나이트 가자고 하면 나부터 먼저 손을 드는 편이다.

이런 내 성향을 이해하고, 공유하고 싶어하는 여성이 내게 2명이 있다.
자칭 환상적 콤비라 칭하는 그들은 활발하고 열심히 생활하는 여성이다.
거기다 반듯한 인물에 늘씬함까지 받쳐주니 당당함은 물론 자신에 차있
는 모습이 좋았다. 자기색깔이 분명한 점도, 상대를 배려해 주는 깊은 마
음씀도 참 매력적이다. 모두가 그런 점을 존중 해주다보니 우리 셋은 자
매 같은 끈끈한 정도 생기고 의기투합도 잘 되는 편이었다. 삶이란 여러
사람의 우정에 둘러싸여 튼튼해진다는 말을 그래서 난 믿는 편이다.

서로의 시간과 형편이 맞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이트 가지고 한
다. 마치 한 달에 습관적으로 치르는 여성행사처럼....한 동안 쌓인 스트
레스를 고함과 춤사위로 그리고 색다른 이벤트가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호기심으로 우린 나이트클럽을 찾는다. 나이트에서 종종 느낀 점은 여성
들이 남자에 비해 스트레스를 더 받는지 여성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어
느 날은 동네 아줌마 잔치를 보는 것 같아 처량한 마음이 들기도 하다.

우리 팀은 솔직히 술값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럼에도 우리 술
값은 우리가 지불하는 경향이 많았다. 소위 말해 부킹 제의를 매몰차게
거절한 탓이다. 웨이터들이 쉴 사이 없이 부킹제의를 주선하지만 두 눈
이 아닌 반 눈에 차는 사람과의 합석이 그리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
렇다고 아무하고 술 마시고 춤출 수 없지 않는가. 우연히 길을 가다 무
지개를 보면 행운이듯이 신나게 춤추다 깔끔한 분들과 부킹이 된다면 그
또한 그 날의 운으로 돌 릴 수 있지만 사실 흔하지 않다.

우리 멤버 중 막내는 남자보는 눈이 까탈스럽다. 중년의 현역인 지금 부
킹을 하면 결혼 할 것도 아니요, 연애할 것도 아닌데 꼭 어린 사람을 선
호하는 것이다. 이 점이 유일하게 서로 차이나는 부분이다. 잠시의 만남
이지만 현실과 비슷한 연배끼리 어울리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나
는 젊은 사람에겐 관심이 없다. 그러다 보니 부킹은 늘 그녀가 심사를
맡았고, 그녀 판단이 마땅찮지만 분위기를 맞추려고 따라 주곤 했다.

삼계탕의 재료로 영계를 쓰는데 아무래도 육질이 부드럽고 씹는 맛도 좋
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유하자면 사람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연륜
이 익은 사람보다 풋내기가 훨씬 신선하고 감각적 일수 있다. 하지만 자
기 자신을 파악 못하고 넘치게 행동하면 보는 이가 민망하듯 역시 제 격
에 맞게 노는 것이 무리 없을 것 같다. 이런 나에게도 가관인 에피소드
가 있다.

몇 달 전, 젊은 부류들이 많이 모이는 나이트클럽을 갔다. 젊은 감각을
쫓아 최신 유행곡의 생음악과 음반을 틀어주는 것이 너무 신났다. 우리
는 춤에 몰입하는 편이라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 흥겨워 여긴다. 아무래
도 열심히 흔들고 해서인지 우리에게 부킹제의가 만만찮았다. 그때 웨이
터에게 내가 주문한 말이 있다. 장사 속으로 아무나 맞추려 하지 마라,
우리 수준에 맞는 사람이 있으면 그때 정식제의를 해 달라고 했다. 그러
자 그 웨이트가 어떤 분이면 되느냐고 조건을 제시하라고 했다.

나이는 어느 정도, 신장은 얼마쯤 되어야 하고, 깔끔한 매너는 기본에 옷
차림도 말쑥한 것이 좋겠다고 했다. 더 꼽을 수 있었지만 갑자기 생각나
지 않아 대충 중얼거렸는데, 그 웨이터는 나를 보더니만 언니는 초보라
고 했다. 초보들은 얼렁뚱당이 없고 구구절절이 따지고 든다는 것이다.
가만 생각하니 진짜 그 말이 명언인 것 같았다. 여기 와서 조건을 내 걸
며 결혼상대를 구하는 것도 아니면서 가나다라를 읊어대었으니...뭇사람
을 접하는 그 웨이터가 뒤돌아 서서 얼마나 나를 우습게 여겼을까.

난 나이트 후기담을 남편에게 대부분 말해 주는 편이다. 이런 헤프닝을
남편에게 해 주었더니 일회용 반창고도 메이커보고 붙일 거냐고 한다.
그렇다. 잠시 그 분위기에 여흥을 돋구어 주면 서로에게 좋은 것을......
가벼운 새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제 날개만 믿고 높이높이 날아간 꼴이
다. 지난 일을 떠올리면 자기의 기대치가 무얼 그리 대단하다고 그럴까
열심히 노는 장소에서 그 분위기에 어울려 주면 최고임을 간파 못한 부
분에 스스로 웃음이 난다. 어쩜 나이트에서는 영원히 초보로 머물지도
모른다.

이제 노하우가 생긴 지금은 그때의 헤프닝은 재현하지 않는다. 아니 웨
이터에게 이런저런 주문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괜찮다는 감언이설에
헷갈려 가끔 인물심사를 보긴 하지만 변변히 노 딱지를 떼 주곤 한다.
건물이 무너질 만큼 열심히 흔들고, 그 대가만큼 우리가 지불하자고, 주
변머리 없게도 요즘도 우리가 술값 계산을 하고 온다. 그 기대치라는 게
도대체 무언지 나이트에서는 접어두고 싶지만 이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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