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기억 속에 유쾌한 일이 아니면 평생을 가는 건지...
내겐 백차에 대한 끔직한 기억이 있다. 예전에 白車가 있는
검문소
에서 불심 검문을 당한 적이 있었다. 꽤 오래 전 대학 졸업 때이다.
운전학원에 등록하고 얼마 후 빨간 k303 중고차를 선물
받았다.
물론 면허증이 나오기 전에 미리 차를 산 것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
서운 줄 모른다고, 그 당시 어미의 그늘이 자기의 온
세계인 양
촐랑대는 강아지처럼 뭐든지 겁이 없었고,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만큼 철없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는 여성 운전자가
드물었고 그랬기에 무슨 벼슬한 것처럼
으시대기도 했다. 지나다니는 차량들도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 쳐다보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으니.....필수품처럼 된 요즘은 다 옛말이다.
집안 아저씨가 연수를 시켜준 덕분에 남보다 빨리 운전을 익힐 수
수 있었다.
불과 27일만에 면허증을 땄으니 말이다. 그전에 시험을
4일 앞둔, 그러니까 23일째 되던 날은 기억에서 없애 버리고 싶은
일이
발생했다. 아저씨랑 야외로 나가던 중 조그마한 검문소를 통과
하게 되었다. 그 당시 순경들이 순찰 봉으로 수신호를 했었는데,
계속
진행하라는 수신호에 둔하게도 무조건 정지해야만 되는 줄 알고 그
자리에 멈춘 게 화근이었다. 그 순경은 어설픈 내 솜씨에 즉시
면허
증 제시를 요구했다.
그 다음이 어떠했는지는 불 보듯 환하다. 면허증이 없는 나는 훈훈
하지도 않는 검문소에서
잘못한 사람취급 받듯이 우스운 꼴이 되었다.
주눅이 들을 법한데도 크게 잘못한 것 없다는 식으로 양손을 바지주
머니에 넣고 '해 볼
테면 해봐라' 난 이렇게 뻣뻣하게 굴었던 모양이다.
함께 탄 아저씨가 무조건 봐달라고 했지만 정작 실수 한 나는 사정은
커녕 목에
힘까지 주었던 것이다. 아마 이런 태도가 경찰관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어 괘씸죄까지 더 첨가시킨 결과가 되었다.
뒤늦게
연락 받은 내 가족이 부랴부랴 무면허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일을 무마시켜 주었다. 만약 내가 저자세로 잘못을 시인하고 공손한 태도
를
보였다면 어쩜 일이 쉽게 풀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철부지인 난 그
만큼 세상일에 어두웠다. 나중 해결 되고 난 일에 공손하지 못한
내
태도에 잔소리를 엄청 들어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사건의
후유증이 그 순간 끝나지 않고 잠재의식 속에 계속 남아있다는
것이다.
시내 주행 혹은 고속도로에서 가짜 백차라도 보게 되면 저절로 속도를
줄이고 바짝 긴장하는 자신을 내려다본다.
'똥이
무서워 피하는 게 아니고 더러워 피한다'는 속담을 그 당시 알았
더라면 위와 같은 긴장의 찌꺼기는 없지 않을까.
요사이
나이(歲) 어린 경찰에게 일시 정지를 당하면 잘잘못을 떠나 일단
운전자가 웃으며 저자세로 나오는 것을 많이 목격한다. 외국 영화의
대사
처럼 멋진 유머를 구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만히 보면 무조건
'못 봤서 그랬다' 또는 '한번 봐달라'고 누구나 일관된 말을
한다.
강산이 옷을 몇 번 갈아입어도 이 레파토리는 변하지 않고 운전자에게
전설처럼 통용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빗을 갚는다고,
잘하면 기분 좋게
주의로 그치기도 하지만, 사람의 일 이란 게 어디 좋게 만 풀리는가!
간혹 신호 대기 중에 이런 진풍경이
벌어지면 잠시 볼일을 뒤로 미루고
한참을 주의 깊게 쳐다본 경험이 있다. 오히려 내가 주시한 덕에 순경들
이 어떠한 것을 챙기지 못한
경우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궁금하면 참지
못하기에 끝까지 지켜보기도 했다. 일이 어떻게 전개되나 싶어서. 그런데
한 무식(無識)
하는 사람이 오히려 덕을 볼 수도 있다는 사실과 목소리
큰 사람이 아무래도 비굴한 자세보다 더 보기가 좋았다고 느껴었다.
모든
운전자들이 단속자에게 비굴한 태도와 저 자세로 나왔다면 전부가
아닌 일부의 교통단속 종사자들은 그들의 직권을 남용하지 않았을까?
어떤
날은 억울하다 여긴 사람은 원칙대로 행하는 단속자에게 그의 이름
을 묻고, 협박 비슷한 말과 거침없는 욕설을 퍼붓어 대면은 괜히 내
기분
도 덩달아 통쾌해진다. 이건 또 무슨 심보인가.
얼마 전, 노상 주차를 위해 길옆에 잠시 하고 있었다. 그때 경찰이
와서
자꾸만 차를 빼달라고 외쳤다. 금방 사람이 나온다고 해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분명 영어가 아닌 한국말을 했는데도 말이다. 마치
땅 임자가
자기들인 양, 아니면 무슨 대단한 권력을 가진 것 인 양 마이크로 외고
난리 아닌 난리 부르스였다. 동행인이 금방 나온다고
한 통에 유료주차
하지 않았는데, 경찰은 한치의 융통성도 보이지 않는다. 해서 시내 한
바퀴를 돌고 왔음에도, 볼일을 마치지 않은
동행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
았다. 그래서 재차 그 자리에 주차를 했더니만 이 경찰이 나만 감시하
는지 마이크로 차를 빼라고 다시
난리다. 결국 3바퀴를 돌고서야 그 자리
를 벗어 날 수 있었다. 모든 일에 예외가 있듯이 조금 눈감아 주면 좋으
련만, 인심 녹녹히
쓰면 저 좋고 나 좋고 할텐데. 가끔 불필요 한 것엔
융통성을 보이면서, 필요 한 것에는 아주 원칙을 적용시켜 안 들어도 될
흉한
소리를 부지기로 얻어먹는 경우도 있다.
한 예로, 횡단보도를 두고 급한 마음에 무단 횡단을 했을 경우 불행하
게 경찰에게
발각되어 범칙금을 물게 되면 우린 어떤 마음이 들까?
조심해야지 이런 마음이 들까, 아님 오늘 재수 더럽게 없다고 할까?
만약 내가
걸리게 된다면 후자처럼 재수 없네 투덜대면서 하루 내내
스티커 발부한 그 순경을 철천지원수(?)로 여기면서 지낼 것 같다.
왜
그럴까?
누구나 범하는 것을 나만 재수 없이 걸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똑같은 여건에서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적용되면 무리가
없겠지만,
사실 그런 행위는 자주 접하고 행하기에 잠시동안의 단속에 나만 적용
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운 없음에 분명 열 받을 것
같다.
사실 기다리기 지루해 여차하면 이쪽저쪽 살피며 무단 횡단을 잘하는
나로서 언제 어떻게 망신을 당할지 모른다. 언제가
한번쯤 망신당하고야
이 버릇이 고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 그런 일을
옆에서 보기만 했기에 내가 만약, 재수 없어
걸린다면 그 순경을 따라
다니면서 날 창피 준 만큼 그대로 갚을 것 같다.
Ps: 전에 쓴 이 글은 일부 단속자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어
긁적여 본 것이지, 대다수 경찰에게 해당 되지 않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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