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각들

괘씸죄

와인매니아1 2001. 10. 19. 15:21

한때 기업 흥망과 괘씸죄라는 말이 나돈 적이 있었다. 보이지 않은 손이
특정 기업의 변수로 작용하여 냉대와 불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특정기업과
유착 비화. 또 괘씸죄 비화 등 권력자가 바뀔때마다 애증지수에 따라 흥망의
보증서가 달라지기도 하였다. 이렇듯 한국 관치(官治)경제의 유산이라 할
괘씸죄가 우리 생활 주변에도 엄연히 공존하고 있음을 느껴본다.

졸지에 당한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경우, 괘씸죄도 조금 작용하지 않을까?
누군들 사고 내고 싶은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만은, 서로간 재수와 운이
나빠 피해를 주고 받았다면 도리상 사과와 위로는 당연한 처세이다. 그리고
신체 치료와 정신적 충격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뒤따라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당황한 나머지 그 허울좋은 보험이란 곳에 맡기고 제대로 문병조차,
기본 도리도 외면한 채 시간을 넘기니 야속한 마음도 들기도 하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대퇴부 수술을 받고 보니 병원 생활을 여러달 하게 되었다.
하잖은 것부터 심각한 수술까지 실로 괘씸으로 인해 문제가 커짐도 보았다.
정형외과에 나이롱 환자가 많다고 하는데 실제 생활해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개연성을 통감한다. 경미한 접촉에 적당한 예의를 챙겨주었다면 아주 소소한
사건일 것을, 때때로 서로의 잘잘못에 핏대 세우며 변명 올리곤 한다. 그러다
감정이 고조되어 그 잘난 "법데로"들먹거리며 서로 마음 고생하는 것이다. 능히
인정스런 말 한마디로 그 자리서 선처 베풀수 있는 것을 더 악화시키고 만다.

얼마 전, 고요히 새벽잠에 빠져 있는 공간에 멀쩡한 사람이 환자복을 갈아
입고 우리 곁에 입원 했다. 부시시 눈 뜬 나보다 더 똘똘한지라 의아심이
증폭 되었다. 한잠 자고 맑은 정신으로 지켜봐도 어디 한군데 탈(?)난 사람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눈도장을 찍고 아쉬운 것 나누고 한 연후에 본인이
스스럼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 것이다. 다수가 쓰는 병실은 새로운
말 동무가 생기는 편이라 때론 그 당시의 무용담이 재미 있기도 하다.

요사이 각 가정마다 보험 한 두개 가입하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로 보험은
일반화 되어 있다. 그래서 가족안전과 노후에 튼튼한 효자로 정착하고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보험사고를 잘 활용하면 큰 힘들이지 않고 짭짭한
수입도 올릴 수 있음을 입원 덕택에 알게 되었다. 4 일 이상 입원에 일정한
금액이 나오고. 또 몇주 진단서에 그에 상응한 치료비가 지불된다고 한다.
이런 약관을 아는 사람은 엉뚱한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악용할 여지는 있다.
당연 병원과 보험은 공존공생하는 관계인지라 여하튼 입원환자가 많을수록
번창하는 것이고 상황에 따라 피해자에게 입원을 권하기도 한다.

새벽녘에 입원한 환자도 나이롱 환자였다. 몇칠 고생하면 보험금과 일당이
지급되니 병원생활이 가히 환상적인 줄 알고 입원한 것이다. 패기 왕성한
젊은 20대는 시간아 가라가라 노래하면서 팔자에 없는 주사와 링겔을 꼽고
열심히 자리보전을 하였다. 몇 주일이 넘어가는 우리네가 볼때는 한심 무인
지경이지만 절대로 한심맨(man)이라 부를 수 없었다. 소기(所期)의 목적이
있는데 어떻게 "쯧쯧" 혀를 찰 수 있을까? 꼼짝 못하는 우리 입장에서 저런
꾀병을 부릴수 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저 부러운 눈으로 조용히
볼 뿐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그 사람은 한계에 다다랗던 모양이다. 사고 입힌 상대욕을
하며 쓸데없이 생고생시킨다고 입에 거품 물고 열을 내곤 했다. 사연 인즉
중앙선 넘은 상대방이 잘못 해 놓고 되려 고함치고 난리를 피우길래 뻔뻔
스럽고 괘씸해서 그만 법대로 처리하자고 신고를 해버렸단다. 경찰에서 조서
받을 때보니 면허정지에 벌금까지 상대도 피해가 만만찮았다고 한다. 그냥
잘못을 인정하고 적당한 보상을 약속했더라면 서로 편할 걸하며 아쉬워했다.

처음 들어올 때 생생한 사람이 며칠 병원생활하자 심신이 갑갑 해졌는지 되려
병을 얻어 어느 날 진짜 환자처럼 골골거리는 것이 아닌가! 급기야 간호사에게
감기약을 청하고 시도때도없이 가래를 택~ 뱉는 것이다. 이 광경을 지켜본 우린
부러진 다리에 감기까지 옮을까봐 신경 바짝서는 불편함을 감수 해야 되었다.
푹~ 쉬려고(?) 병원왔다가 오히려 병을 얻어 시들해지는 경우를 보니 보험금도
좋지만 되도록 병원 근처는 애용할 것이 못 된다고 본다. 하지만 고약한 괘씸죄
때문에 "미안해요". "변상하지요" 사과 말 한다고 입에 가시가 돋는 것도 아닐
진데, 참으로 어처구니없게 뻔돌이 뻔순이도 우리 주변에 더러 있다.

나 역시 옆의 환자처럼 남편에게 피해입힌 상대에게 괘씸죄가 적용 되려한다.
가족이 2차례 문병오더니 이제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내 몰라라 한다. 경찰에서
16주 진단에 합의 보지 않으면 구속이라 언질을 준다. 처음 당하는 우리가
어떻게 할지 막막한데 상대는 의논 조차하지 않으려한다. 도의상 이건 아닌데
서운한 마음이 아마 괘씸죄를 불러 들이지 않을까 싶다. 예측키 어려운 세상일
그들도 우리도 알만한 연령이건만 대화로 타협점 모색하기를 포기하는 것 같다.

사소한 행동에 아~ 감동 받는 것이 인간이다. 작은 일 하나라도 실수한 것에
당당히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본다. 그리고 잘못된 경우 자연스레 사과
말 곁들이는 것도 일의 실마리를 푸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인색하게 굴어서
덕 본 경우는 별로 보지 못한 터라 시인해야 할 몫을 감수하는 것이 원만한
처리방법 일지도 모른다. 목에 기브스하다간 괘씸죄에 걸려 공연히 시간, 금전,
심지어 마음고생까지 하면 더 손해보지 않겠는가! 특히 가입한 보험회사만
미루지 말고 도리상 찾아뵙는 행동도 사회를 밝게 사는 한 방법이 아닐까?
가끔 나도 모르게 잠자는 사자의 콧수염을 건드렸다가 꿀꺽 잡아 먹히지 않고
평생의 좋은 동지로 남을지 누가 알겠는가 말이다.
 
 

'삶의 조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름다운 여성  (0) 2001.10.24
늦게 가을을 타는 건가~  (0) 2001.10.23
어느 붕어빵장사  (0) 2001.10.17
당신은 아줌마 맞나요?  (0) 2001.10.16
이산가족과 통일  (0) 2001.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