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각들

당신은 아줌마 맞나요?

와인매니아1 2001. 10. 16. 22:45


時時刻刻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여러 가지로 달라진다. 그 호칭에 따라
기분이 상큼할 수도 있고 때로는 언짢아 씁쓰레하기도 하다. 관점이 제
각각 다양한 탓이지만 대개 하늘처럼 화사하고, 산뜻한 차림새로 외출
할라치면 십중팔구 젊은 새댁(?)으로 통용된다. 반면 고상한 분위기에
브라운 톤의 립스틱을 바르고 나면 영낙없는 아줌마 소리를 듣고 만다.
근데 난 이 '아줌마' 호칭으로 공인되는 것이 솔직히 싫다. 어떻게 당연한
그 호칭이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낯설게 다가오는지, 그 이유를 알다
가도 모르겠다. 아마 세월의 흐름이 아쉬워 모름지기 인정하기 싫은 건가.

쑥쑥 자라나는 옥수수 키만큼 우리아이 키도 눈에 띄게 자라는데, 나
혼자 정체된 상태 인줄 착각하면서 살았던 모양이다. 거울 앞에 서서
잊고 있던 나이를 들추어내며 약간은 당혹스럽기도 하다. 가끔씩 듣는
아줌마 호칭으로 인해 어느 날은 슬픈 피리소리에 맞춰 혼자 춤을 추는
광대 같기도 하다.

내가 운영하는 사무실 성격상 대개의 손님들은 소장 혹은 원장님으로
나를 지칭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불러 주는 그런 호칭이 아주 일상
화되어 있어 다른 장소에서 누군가가 '아줌마'라 부르면 그것이 어색할
지경이다. 우습게도 그 호칭이 나를 지칭하는지 모르고 놓칠 때도 가끔
있으니......갈수록 치매 증세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리라.

문화의 질이 향상됨에 남녀 할 것 없이 옷맵시도 세련되어가고 있다.
여기에 여성의 화장술도 미혼, 기혼 구별하기 힘들만큼 변화무쌍해 지고
어느 날은 거리에서 패션쇼를 보는 것 마냥 파격적인 사람들을 본다.
더군다나 인물 품평회를 곧잘 즐기는 나로선 예사롭지 않게 관찰하다
보면 주부들이 분명한데도, 과감한 실험정신을 갖고 자신을 표현하는
차림새에 일단은 존경의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언제나 타인을 비난하고 시기한다는 건 자신이 하지 못해 약간의 부
러움이 나쁘게 포장된 탓이리라. 어쩜 각자가 갖고 있는 열등감을
그렇게 표현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닌지라 이번
에 유행한 '부츠'란 물건이 그랬다. 겨울에도 그리 많이 애용하는 것이
아닌 그 웨스턴 부츠를 유행이랍시고 아가씨들이 너도나도 신고 다니는
것을 조금 어색하게 봤다. 근데 이것을 주부들도 응용하는 것을 더러
목격하게 되었고 그런 모습이 내게 그리 곱상하게만 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안쓰러운 마음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젊은 미시족은 그런대로
봐 줄만 했지만 그 이상의 세대는 내겐 꽤나 거북스러웠다.
아마 그 여성들도 멋도 멋이려니와 아줌마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
아줌마 소리 듣기 싫었기에 나름대로 그런 대담한 유행을 몸소 실천
하지 않았을까 생각 해본다.

한 이년 전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었다.
쇼핑을 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신호등에 나란히 서있을 때였다.
그날 따라 내 구겨진 마음조차 쫙 펴질 만큼 깨끗한 날씨였고, 꾸밈
없는 아이 얼굴처럼 모든 것이 생동감 넘치는 날이 연출되었다.
날씨에 맞춰 화사한 옷으로 아가씨처럼 멋을 부린 나에게 초등 일년
생인 막내는 그때 유난히 '엄마'라 부르며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집에 있다 밖에 나오면 유별스럽게 묻곤 하던 때다)

"너 길에서는 엄마라 부르지 말고 이모라고 불러"
"왜 이모라고 불러야 돼?"
영문을 모르는 아이는 되려 반문을 하기에 여러 설명하기 귀찮아
그렇게 하라고만 엄마의 권위로서 명령을 내렸다.
그때 함께 신호를 기다리는 어떤 남자 분이 모자간의 대화를 듣고는
"이모라고 불러도 되겠네 뭐"
졸지에 들려준 그 음성의 주인공으로 인해 갑자기 훔치다 들킨 사람
처럼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눈치가 조금 빠른 작은아이는 가끔 밖에서 엄마를 유쾌하게 해주려고
한번씩 "이모, 저거 사줘" 이런 소리를 해댄다. 그러면 동그란 눈으로
어이없어 하면서도 결코 싫지 않아 못 이긴 척 요구사항을 들어준다.
특히 남편은 두 아이의 엄마로, 연륜이 적당히 농익은 여인과 아내로
위치를 격상 시켜준다--사실 이런 격상은 하나도 반갑지 않지만--
철없는 우리꼬마들이 불러주는 '이모' 호칭이 천부당 만부당 어울리지
않음을 알면서도, 공연히 내 마음을 흔들어주기도 한다.

세월이 많은 흐른 요즘도 외출할 때에 아이들에게 물어보곤 한다.
"얘들아! 엄마가 아줌마 같아 보여?"
"아니. 엄마는 눈에 주름도 없고 멋지고 보기 좋아"
허긴 자기 엄마를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바보가 어디 있을까!
그나마 돈 들지 않는 말이라도 이쁘게 해야 뒷날이 편안하다는 것쯤
터득한 연령이고 보면 당연한 것을. 그래도 속으로 생각한다.
(아이고~~~~~귀여운 것들~~~~~)
그래도 이렇게 나를 인정해주는 우리 꼬마팬이 있기에 조금은 건방을
떨어도 위축되지 않고 씩씩하게 지내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갈수록 '아줌마' 호칭이 "꼬르륵" 배고픈 소리처럼 자연스러
워야 하는데도 여전히 내 귀에는 자동차 경적처럼 깜짝 놀란다. 아직
도 몸과 마음은 싱싱한 이팔청춘이라고 상상하고 싶은가보다.

얼마 전 나랑 비슷한, 나보다 조금 더 연배인 아줌마가 나를 향해
"아가씨!! 이것 너무 맛있는 토마토야 "
그만 '아가씨' 란 소리에, 비몽사몽간 기분 좋은 마음에 두 바구니나
샀다. 순진하게 장사 속 인줄 알면서 기분 좋은 건 어쩌지 못했다.
그 방울토마토로 저녁을 대신한 우리 작은 녀석은 간밤에 오줌지도를
멋지게 그려서 한바탕 웃지 못할 일거리를 나에게 안겨 주었다.
아가씨소리 한번 듣는 대가치곤 값비싼 시간을 톡톡히 감당했으니
아이구~~~~주책바가지, 한심이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나저나 빨래하기
엔 날씨가 너무 짓궂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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