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각들

시장

와인매니아1 2007. 5. 30. 14:46

                       시장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재래식 시장을 간다. 곳곳에
    화려한 대형 마켓이 바야흐로 쇼핑문화를 점령한지라 딱히 재래시장을
    찾을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신토불이 먹거리, 다양한 삶의
    모습을 제공하자는 성숙한 차원도 아니다. 혹 즉흥적으로 생길수 있는
    도톰한 짐을 아이에게 안길 심산으로 순전히 어미가 편해 보자는 웃기
    지도 않는 내 이기심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을 살까, 어떤 것이 나을까 망설이는 품팔던 사람들 그리고 낯선
    풍경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내 아이의 호기심 묻힌 눈은 연신 분주하다.
    인간의 육체는 그 육체를 지닌 인간이 어떤 자세를 많이 취하느냐로
    변해지듯 상인에게 한마디 물을라치면 봉투에 담을 태세부터 취한다.
    내게 필요한 품목이 아닐지라도 평소 접하지 않은 것에 관심과 어떤
    용도가 있는지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다. 우리 삶에 어떤 호기심도 일지
    않는다면 숨을 쉰들 죽은 목숨과 무엇이 다를까가 평소 내 지론이다.
    금방 들어와 '싱싱하다 싸다' 등 닮아 버린 장사꾼 아낙네의 목소리는
    적어도 한번쯤 내 시선을 잡아 끌게 끔 하는 묘한 여운을 던진다.
 
    생기 머금은 어미는 시장이 준비된 학습장이라도 된 냥 기존 얄팍한
    상식에다 피와 살을 첨가해 그럴싸한, 엉터리 강의를 잘도 토해낸다.
    결론은 하나, 우리의 귀중한 다리품이 헛탕이 되지 않도록 우린 무언가
    챙겨야 한다. 누구하나 이의(異意)를 제기하는 아이는 없다. 어른의 약삭
    빠른 언변에 잘도 넘어가는 아이 태도는 이럴때는 쬐끔 마음에 든다.
 
    건(乾)장마가 오래 가 과일 당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복숭아를 비롯해
    자두, 참외, 수박, 방울토마토 등 아삭아삭 소리와 맛이 예전에 비해 좋다.
    게다가 농익은 토마토는 값도 헐하고 갈아먹는 쥬스꺼리로 단연 1순위다.
    값싼 것은 량과 무게가 많이 나가게 마련이고 허구헌날 남아도는 힘을
    어미 골탕 먹이려고 구상하는 아이에게 맡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별로 산것 없다 여기지만 돌아올 쯤이면 꾸러미는 제법 만만치 않다.
    무게에 눌러 뒤뚱뒤뚱 오리걸음 폼이 머지 않아 어미에게 불평불만을
    해댈 것임을 어미는 잽싸게 파악하고 그 자리를 모면해 버리곤 한다.
 
    어쩌다 값싼 것을 만나면 조금 사면 될 것을 알뜰해 보겠다고-물론 나중
    에 깨닫지만 절대 알뜰한 것이 아님을 안다. - 욕심부린 나머지 아이
    입에서는 이제 따라가지 않겠다고 협박도 아닌 푸념을 궁시렁 토한다.
    하지만 얼마 후 가자고 하면 어김없이 간다는 것도 어미는 잘 알고 있다.
    단 저네들 꾀에 내 꾀도 업그레이드 시켜야 되리라는 필연성은 있다.

    그나저나 요즘 재래시장 가는 맛도 예전에 비해 시들해진다. 핵가족과
    식생활의 변화로 소량묶음이 인기인 요즘추세에 최소 요구를 할라치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일언지하에 안 판다고한다. 또 가격을 물어보고
    사지 않으면 뒤에서 아름답지 않는 소리를 마구 해댄다. 고객 놓친 서운
    함을 불쾌한 말로 해소하는 것이 시장만의 정서라고 생각들을 하는지....
    나랑 하등관계 없는 이에게 껄꺼러운 소리는 절대 기분 유쾌하지 않다.
    그렇잖아도 시장이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밀려 사양길로 들었다는 얘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닐진데 순전히 이런 불친철이 원인이 아닐까싶다.
 
    가끔 높은(?) 사람들이 해외연수라는 명목으로 외국을 곧잘 나가는 걸 본다.
    이제 시장도 번영회라는 모임도 갖추고 있는 마당이니 친절한 상인을 선정해
    해외 견문을 넓히는 기회를 제공하면 시장이 좀 더 활성화 되지 않을까?
    반성하자고 말하면 반성 안해도 될 사람은 반성하고 진짜 반성 할 사람은
    절대 반성하지 않듯이 친절하자고 말하면 친절한 사람은 더욱 친절한데
    비해 불친절한 사람은 천성이 바뀌지 않는 한 그대로 유지한다. 장사가
    잘 되는 집에 가면 틀림없이 한 가지 비법이 있게 마련인데 그 중 친절이
    으뜸이 아닐까 생각한다.
 
    포항 중심부에 위치한 죽도 시장은 규모나 전통에서나 꽤 오래되어 포항의
    특산물인 과메기만큼 유명한 곳이다. 이곳은 없는 것이 없을 만큼 다양한
    구색이 갖춰진 곳이라 늘 사람들이 붐비고 온갖 진풍경의 보고장이다.
    얼마만큼 인지도 모를 횟집, 대형 수족관엔 활어가 생각없이 놀고 있다.
    어찌 미물이 자기 제삿날을 알까만 그래도 여유부리는 풍경은 보는 이를
    미소짓게  한다. 또 싱싱한 회가 횟집보다 비교적 싼 편이라 많이 먹을수
    있다. 저렴한 만큼 바다낭만은 상상으로 떼워야 하는 것만 빼고...
 
    역동적 움직임, 생선회(生鮮膾) 치는 모습과 싱싱한 먹거리 못지 않게
    카랑카랑 상인의 호객행위 등 열심히 사는 이웃들 모습에 가끔 오는 우울을
    떨쳐버린다. 쇼핑보다 생각 비우기 훈련이랄까, 어줍짢은 감정의 사치를
    접기 위해 혼자서 나서는 시장 쇼핑도 그런데로 괜찮다. 하지만 견물생심
    이라고 필요품이 아닐지라도 한가지쯤 사 오고 싶을 때도 있다. 해서 사근
    하게 값을 묻곤 내 기준에 싸지 않다고 판단되면 그냥 되돌아선다.
    그럴때면 십중팔구 '그것도 못사나' 말이 무의식 습관처럼 따르고 익숙지
    않는 그 소리에 나는 기분이 언짢다. 마음같아선 고함 잘하는 솜씨로 함께
    '옷 입었다고 다 사는냐 ' 되묻고 싶지만 그저 입안에서 웅얼거릴 뿐이다.
    딱한번은 가능하지만 연달아 토할 말이 궁색해 결국 내가 질 것이 뻔하다.
 
    남편과 함께 나설때면 이런 엉뚱한 상인은 그날 임자 만나는 날이다.
    여자와 달리 아쉬운 소리 듣고 가만 듣고 있을 남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약한 자에게 강하게 굴고 강한 자에게는 다소곳해 지는게 우리 잘못된
    습성인지 강한 톤으로 따끔하게 따지는 남편앞에 상인은 풀죽은 고양이
    모양을 취한다. 그럴때면 깨소금과 비교하지 못할 만큼 고소하다...후훗
 
    여성은 고독해서 백화점에 가는 지도 모른다는 말처럼 이것저것 구경을
    통해 외로움도 떨고 가벼운 것 한 개를 골라 기분을 전환하려 한다. 헌데
    되려 혹을 하나 붙인 꼴을 당하면 그 다음은 뺑덕어멈 연기는 자연스럽다.
    그 불똥은 여지없이 죄없는 가족에게 파급되어 개구장이도 이때 만큼은
    어미 심기가 꼬인 꽈배기라 판단해 자칫 모범생 흉내를 내기도 한다.
    "그래  평생 시장통에서 요모양으로 잘 먹고 잘 살아라"
    혼자서 어처구니 없는 소리에 억울해 평상심과 달리 귀동냥한 악담도 한다.
    가끔 나자신도 모를 이상한 면을 나에게서 발견하고 놀라기도 한다.
 
    한번쯤 겪을 수 있는 상인과 언쟁은 잘잘못을 떠나 피하는게 최 상책이다.
    그래도 열심히 사는 나름대로의 모습속에 폭풍같은 내 감정이 다소 누그러
    질때도 있다. 뜬끔없이 비위를 거슬리는 일만 없다면 재래시장은 살맛 없을
    때 가장 위로꺼리를 제공하는 위안처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 안 가리라
    굳게  마음먹은 것이 오래 가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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