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릉, 뿌뿌...뿌~~~~소리에 맞춰 동네 아이들 삼삼오오 달린다
몽글몽글 피어나는 안개꽃을 쫓아 아이들은 코를
벌름거리고,
석유냄새 같은 야릇한 연기에 취해 달리곤 한다.
오래 전, 해질 무렵이면 방역 차가 모기를 박멸한다고 마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던 기억을 더듬었다. 그 당시 길에는
차량도
드물었고, 뿜어지는 연기가 신기해 숨 가쁜 줄도 몰랐다.
열심히 달리는 경주마처럼 안간힘을 다해 차에 매달리려
했다.
어린 마음에 그 고약한 냄새가 뭐가 그리 좋았든지, 신선한 공기
들어 마시듯 힘껏 심호흡하였고, 더운 목욕 후에
피부에서 피어오르는
김처럼 그렇게 쫙 퍼지는 연기가 그렇게 좋았다.
그 하얀 연기를 작은 손으로 잡아 보려 이리저리 방방 쫓던 기억이
오래된 파편이
아닌 어저께 일처럼 지금도 생생하다.
평화로운 시골 주변은 마음놓고 천방지축 뛰어다닌들 그다지
위험하지 않아 어른의 걱정스런
사각지대는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모두 꿈같은 동화 속의 한 페이지가 되어버린 그림이다.
얼마 전, 까마득한 그리움
속의 앨범인 그 방역 차를 보았다.
어머나! 나처럼 세월을 먹어 사라진 줄 알았는데, 요사이
동네 곳곳마다 성형병원이 진을 치는 것과 맞물려 방역차도 성형을
받는 모양이다. 내 오래된 기억 속을 더듬지 않더라도 그 차는 고물이
어야 했다. 하지만 더 근사하고 말짱한 것이 너무
이상했다.
마음 같아선 그 당시처럼, 방역 차를 따라가고픈 충동이 생겼지만,
그랬다간 누군가 나를 정신병원 혹은
119에 연락할것 같았다.
한 순간, 따라가고픈 마음을 애써 접으며, 꼬깃꼬깃 꿍쳐둔 지폐를 펴는것
마냥 내 지난 유년의 추억 늪을 헤집고 싶었다.
길가에 왕방울눈의 누른 황소가 짓궂은 파리 떼의 애정(?)을
기다란
꼬리로 쫓아내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있었고, 투박한 황톳길은 비만 오면
진흙길로 변해 졸지에 신발은 추비한 모습으로 바꿔었다. 한 장, 두 장
추억의 편린들을 넘길 때마다 새록새록 옛 기억은 꼬리를 문다.
마치 방역 차의 꼬리에서 연기가 나듯...
그래도 잊혀져 가는 기억을 모자이크해주는 현대의 신형 방역 차가
정겹다. 그 옛날, 차량 홍수만 없다면 분명 우리아이들도
예전
나처럼 똑같이 차 꽁무니를 따라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건이 되었다 해도 환경오염에 넌더리 치는 현대엄마의
시각으로
자연스레 쫓아가는 것을 방치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쓸데없이 쫓아다니지 말고 공부 좀 해"
"그 연기(煙氣)가 얼마나 해로운
줄 알어?"
"너 달리기 연습하려면 정식으로 운동장에 가서 해"
"한번만 더 무릎 다치면 이제 국물도 없어!"
아마 이런 언어를
들먹이며 치기 어린 아이 행동을 저지했으리라.
아이의 정서와 문화, 행동을 나의 잣대로 평가하고, 내 기준이
정답이라도 된 양 아이
정신까지 지배하려 하지 않던가?
"너희들 도대체 언제 철들래!"
이런 소리를 하루 두 서너 번 아이에게 들려주는 단골메뉴가 된
지
오래다. 어미라 불리우는 내 모습도 철들었는지 아직 미지수이지만...
나의 철없음을 모르면서 언제나 아이의 철없음을 나무라는
오류는
언제까지 갈려는지, 내가 생각해도 딱할 노릇이다.
그나저나 이 삭막한 세상에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모기들은
도심지를 배회하는지, 아마 사람의 정이 그리웠던 것은 아닐까?
자기들을 박멸하겠다고 저 방역 차가 씩씩한 용사처럼
돌아다니는데도
아량 곳 없이 설쳐 대고 있으니......
오늘따라 내 유년시절, 잊혀진 기억 풍경들이 새삼 그립다. 만약
그
시절로 다시 돌아 갈 수만 있다면, 현실과 동떨어진 추억을
더 많이 가슴에 담아 마음만은 부자인 채로 잘 지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