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성장시키는 사랑은 언제나 상처투성이가 많다. 어둠이 키우
는 금지된 사랑도 분명 사회제도의 이데올로기에 위배된
상처이긴
해도 당사자에겐 향기로운 사랑일 수도 있다. 비록 부도덕의 불륜이
라 돌팔매를 당할지언정 꺼져 가는 영혼을 되살리는 계기가
될 수
있기에 그러하다. 세상 사람들의 관습과 편견에 매도당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그늘진 사랑, 기혼자 불륜이 아닐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위해 결혼이라는 보험을 들면서 '삶이 참을
수 없이 지리멸렬하다' 는 사실을 억누르고 혹은 감추며
산다. 그러
는 과정에 어느 한 쪽의 배신, 믿음을 깨버리는 일이 벌어진다면,
정신 세계의 상실감, 즉 생을 지탱시키는 끈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일부는 관용과 이해로 기득권에 저항하기 보담, 세상인심과 인간의
망각을 믿으며 타협한다. 하지만 원상복구가 힘든
깨진 사기그릇처
럼 평생을 고뇌 속에서 텅 빈 육신과 정신으로 생을 지속하는 이도
있을 법하다. 금기된 불륜이 인간의 한 부분을
말살시키는 후유증
때문에 위험천만하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다큐멘터리 전문 감독이 위반에 대한 충동을 일깨운 영화를
만들었
다. 김윤진, 이종원의 밀애는 대낮에 숲속에서 벌이는 정사신의 포
스터를 보더라도 끓어오르는 열정과 뭔가 파국이 예감되는
기운이
가득하다. 사회성 짙은 소재만 연출한 감독이 98년 화제의 베스트셀
러인 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을
'밀애'라는 영화로 선
보였다. 영화는 자신의 삶을 무너뜨리고 매혹적인 불륜에 빠져드는
평범한 여자와 사랑을 믿지 않는 격정적인
남자의 사랑이야기다.
불륜은 누구의 기준에서 규정한 것인가, 그리고 가정이란 과연 무조
건 사수해야 할 절대가치인가,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고 관객에게 생
각을 던진다. 극단적 상황에서 표출되는 격렬한 사랑의 감정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장르가
격정멜로물이다. 통속적이지만 현실에
있을 수 있는 상황설정과 여성의 성적 정체성을 발견하는 과정 등
여성욕망에 충실하게 묘사한 것에
호평을 내리고 싶다.
결혼 8년, 남편만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아온 미흔은 전업주부다.
이브 날 남편을 오빠라 부르는 젊은
여자가 찾아와 남편과의 관계
를 폭로하면서 모든 환상이 깨진다. 그 후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
에 시달리며 멍한 눈의 시체처럼 생의
의욕이 없다. 그만큼 남편의
외도는 충만감으로 채워졌던 그녀 자신과 가정을 모두 산산조각내
버린 것이다. 남편은 죄스런 마음에 남해의
한적한 나비마을로 정착
한다. 거기 윗집에 살고 있는 의사인 인규를 알게되고 그는 섹스는
하되 사랑은 하지 않는, 사랑한다고 말하면
지는 게임을 제안한다.
무력감에 허우적거리는 그녀는 이 게임에 빠져든다.
"당신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유혹적인지 모르고 있어. 당신은
대단
해. 온몸이 빨려드는 것 같아" 그의 말과 행동에 그녀는 희열을 느
낀다.
생에 단 한번 올 것 같은 운명적 사랑,
지독한 사랑을 통해 텅 빈
미흔의 몸이 다시 살아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과정이 그려진
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파경을 맞지만
홀로 된 미흔은 결혼 후
보다 오히려 살아있음을 절감한다. 밀애는 상투적인 불륜을 그리기
보담, 삶이 하찮고 거지같다고 하면서도 남편
곁은 떠나지 못하는
나약한 미흔을 자기 의지로 살아가게끔 결말짓는다.
사실 300페이지 가까운 소설을 읽을 때는 상황 묘사한
것에 쉽게
납득 할 수 없는 부분조차 두 시간의 영상언어로 훨씬 이해를 돕는
부분도 많았다. 특히 통제할 수 없는 내면의 욕망과
격정, 성적 희
열의 발견 등 불륜에 빠진 주부의 심리를 카메라는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의 경우,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을
느끼며 허드렛
일로 살아가지만, 미흔이 어떻게 자기 삶을 잘 꾸려갈지 석연치 않
아 보인다. 그리고 집을 나온 미흔은 딸의 사진을
갖고 나오지 않음
에 통곡한다. 모성애가 언제나 족쇄로 작용하는 현실이고 보면, 부
부의 불륜으로 아무 죄없는 자식들까지 헤어짐을
강요해야 하는 입
장에는 가슴이 저린다.
불륜을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충격적인 노출신이 상당량을 차지하
고 있어 여배우
캐스팅에 영화계의 관심과 입소문이 무성했다 한다.
가정이나 가족이라는 제도로 재단 당하고 제어 당하는 열정을 폭발
시키는 의지. 또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여자의 당당한 불륜을 그려
보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김윤진은 '작품 속에서 필요하다면 벗는
게 당연한
건데.....이런 것이 화제가 되다니 씁쓸하다고, 파격적인
전라의 연기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말 주인공 미흔 역할에
적격자처럼
연기를 잘 해 준 것이 눈에 잡힌다. 마지막 이 영화에서
여운을 짙게 남긴 대목을 꼽으라면 닥터 인규가 한 말이다.
"당신과
내가 함께 살아도 달라 질 게 없다. 당신은 또 다른 거짓말
을 할 것이고, 나 또한 다른 여성을 만날 것이다"
우선은 진정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만, 머지 않아 그 진정한 사랑도
영원하지 못 할 것이 어쩜 인간의 변하지 않는 진리일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지는 그 자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신과 육체의 불일치 (0) | 2005.08.11 |
---|---|
인생을 다시 산다면 (0) | 2005.08.06 |
정열적인 사랑을 품은 빨간색 (0) | 2002.03.23 |
당신을 사랑하나봐 (0) | 2001.11.30 |
잊혀진다는 것....... (0) | 2001.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