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끝없는 흔들림이다
산다는 건, 도대체 산다는 건 뭘까?
입가에서 늘 쓸쓸하게 맴돌다 사라지곤 하던 낱말을 떠올려 본다
한겨울 회오리바람처럼 먼지 험하게 불어오는 날이면 생각이 많다.
새삼 산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진한 연민 품고 미처 염두에 두지 않았던 남루한 관념을 꺼내게 된다.
가끔 나를 흔드는 슬픈 감상, 알 수 없는 공허감에 하염없이 창 밖을 응시하곤 했다. 바깥풍경에 섞이지 못해 절망하며 보낸 안타까운 시간, 이유없는 불안감, 잘라도 어느 새 고개 치켜드는 메두사의 머리처럼 그렇게 끈질기게 두려움으로 몰고 가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땅거미 진하게 깔린 어둠이 실루엣을 아름답게 비추는 밤. 평소 가깝게 지낸 학부모랑 ‘산다는 것’의 거창한 주제를 앞에 놓고 어둠이 대지를 감쌀 때까지 오래 얘기를 했다, 이제 불혹은 넘긴 그 여성은 마치 인생의 막바지에 접어든 느낌이다, 힘없는 넋두리를 시작으로 과연 삶의 가치기준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단정 짓을 수 없는 질문과 확실한 대안이 불분명한 것을 내게 거듭 재촉한다, 정답이 애매모호한 것은 언제나 사람을 난처하게 만든다, 지금이 그랬다.
산다는 게 세상 뒤집어 질만큼 즐겁고 감탄의 연속이면 얼마나 멋있을까만, 사실은 살아 갈수록 힘들고 재미는커녕 뭔가 손해보는 느낌에 분하고 부당함에 몸서리 친 적도 생기지 않는가 말이다.
핑퐁식 대화를 한 그날은 마침 남편이 출장가고 없다고 했다. 기운없는 메아리처럼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음을 좋겠다는 사족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내 마음조차 답답함이 전이되고 있었다. 아내로서, 아이엄마, 그리고 사회구성원의 직업인으로서 열심히, 그리고 충실하면 살맛이 생길 줄 알았다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희망보다 절망이, 억울함에 뭔가 궤도수정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드는 현실이라 했다. 그 말속에 삶에 쪄들은 여성만의 자포자기 표정을 읽었다고 해야할까?
사람이면 누구나 타인에 의해 자기 삶이 훼손당하고 싶지 않다. 살면서 한 방향을 향해 걸어가야 될 남편(혹은 아내)이 그 누구 보다 편히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면 괜찮은 삶이다. 하지만 언덕은 고사하고 깊은 골짜기를 만들어 까만 고통을 준다면 그 삶은 고달프고 생을 포기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미운 정 고운 정 겹겹이 쌓인 정으로 인내해 온 것을 어느 한 순간 뒤집어 버리기란 어디 쉬운가?
지금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도움 주고 싶지만 얕은 앎을 갖고 있는 나로서 최선책은 그냥 듣는 것뿐이 안타깝다. 혹여 그 어떤 행동과 설득이 그녀의 복잡한 심경을 더 부채질할지 모르기에, 아니 격에 어울리는 적절한 언어가 뚜렷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했다. 하지만 연장자인 나에게 뭔가 화살을 기다리는 눈치를 묵살할 수는 없었다.
상대의 모난 부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사실 부부는 갈수록 애정보다 측은지심을 갖고 살아야 된다고 했다. 어짜피 나란히 걸어가는 인생, 기회와 포용을 부단히 주면서 노력하는 도리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는 게 현실임을 아는 나 역시 말을 토해놓고도 냉소적 쓴웃음이 배여 나오고 있었다.
산다는 건 끝없는 흔들림의 연속이라 난 생각한다.
사실 건조한 일상에 눌러 겹겹이 쌓인 산들을 뛰어넘고 싶기도 하다.
겨우내 숨죽이다 따뜻한 봄날에 화사한 꽃망울 터뜨리는 개나리처럼
사람 마음도 까실까실한 햇살에 얼굴이 감길 때 엉뚱한 호기심이 발동 할 수도 있다. 호르몬 영향으로 남성에 비해 여성이 계절을 많이 탄다고 발표되어서인지 여성이 계절 감각이 앞서고 낯선 사람 체취에 더 민감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민감함이 삶의 향기를 음미하는 활력소도, 혹은 헤쳐 나오기 힘든 늪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타는 듯 강한 갈증은 어느 순간 자신이 손 쓸 수 없는 고통과 번민으로 우리 영혼을 갉아 먹을 때면 가슴의 흔들림은 돌팔매의 파문처럼 퍼진다.
“거의 비중이 같은 어떤 갈등 속에서 올바른 선택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선택한 후의 감정의 조절이 있을 뿐이다”
스콧팩 박사의 말에 공감의 박수를 보낸다, 이 감정조절이 언제나 일상에 문제를 만드는 주범이 아니었나! 하지만 우린 누구나 아는 것처럼 감정이 때때로 냉정한 이성조차 무력하게 제압함을 주변에서 보아왔다. 삶이 힘겹게 지나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각자가 솔직히 소리내지 않을 뿐, 어릿광대의 행복을 가장하며 화려한 포장술로 사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 싶다. 반면 진정 현명한 사람도 존재한다. 주어진 상황을 인정하고 지혜롭게 꾸려나가는 사람이 그러하다.
다가오는 유혹 꺼리에 흔들림이 생기고, 또 그것을 외면만이 능사하고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흔들림에 포박당하지 않는 것은 내 가정을 제대로 꾸려가야 된다는 신념과 윤리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누구나 한쪽 마음은 있으되, 어렵게 잠재우며 살고 있을 뿐이리라.
낯선 두 사람이 인연 맺으면 서로가 서로의 과거를 몰래 심는 것이고 그리하여 생이 더 무거워지는 것이라고 했다. 있는 듯 없는 듯 그 자리에 떡 버티고 서 있는 존재, 그 존재로 인해 어느 한때 서로의 등이 따뜻해짐을 느끼지 않았던가!
무심히 넘겨버린 상대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서로는 아는가!!!
비록 틀에 박힌 말일지라도 주어진 생에 무게 더 나가게 추를 달아 ‘최소한의 흔들림’으로 나머지 삶을 엮어가는 노력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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