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자식을 먼저 앞세운 비극을 당한 부모는 평생토록 가슴에 새기며
지낸
다. 우리 남편의 형님인 시숙이 어른보다 앞서간 탓에 한동안 그 후유증
에 시어른의 삶은 지옥 그 자체였다. 그러기에 생명이
꺼져 가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것도, 자기 목숨조차 마다하지 않을 것이 바로 부
모의 사랑이 아니겠나 싶다. 그 중 사랑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모성애는
여러 곳에서 우리를 감동시키곤 한다. 그에 비해 권위와 속으로 깊은 사
랑을 비추는 부성애는 그리
큰사랑이라 느끼지 못한다. 아무래도 표현하
는 사랑이 아름다운 것처럼 겉으로 드러난 자상과 애틋함이 미약하다 보
니 자녀들은 부성의
숭고함을 크게 깨닫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라고 낳기만 한 모성보다 온갖 정성을 기울려 아
들을 사랑하는
부성애를 감동적으로 묘사한 글이 있다. 새끼에 대한 사
랑이 남 다른 물고기의 이름을 빌어 가슴 적시는 사랑을 그린
책이다.
'가시고기' 흔히 부성애의 대표주자로 이 물고기를 언급한다.
암놈이 알을 낳고 떠나가면 수놈이 보름 동안 육아를 맡는데,
먹지도
자지도 않고 지느러미를 움직여 맑은 산소를 공급하고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어류가 오면 몸집의 크고 작고와는 아랑곳없이 필사의
전투를 벌인
다. 이렇게 먹지 못하고 사투에 체력이 소모되면 끝내 생명을 지탱 못하
고 새끼들 있는 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죽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시고
기의 이런 상식들, 죽음에 이르기까지 처절한 가시고기의 새끼사랑이 얼
마 전 다큐로
방영되었다.
국내 최초로 가시고기의 생태 전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는 광고를 접
하고 꼭 보리라 신경 써서 챙겨본
다큐멘터리다. 모천에서 회귀한 가시
고기가 새끼를 산란·부화하고 키운 뒤, 자신의 몸을 새끼들 먹이로 내
어주는 장면들은 내쇼날
지오그래픽의 감동 이상이었다. 물고기 가운데
유일하게 둥지를 짓는 가시고기는 주둥이로 강바닥 모래를 퍼내 구덩이
를 만들고, 수초
가닥으로 공사를 한다. 물속에서 둥지를 짓는다는 것은
보지 않으면 쉽게 믿기 지 않는 사실이다. 첨단장비를 동원해 촬영한 장
면을
보고 전해진 새끼사랑이 진짜임을 확인한다.
알을 낳은 암컷 가시고기는 이내 둥지를 떠났지만, 새끼를 부화하고 키
우는 건
오롯이 수컷 몫이라는 것을...고작 7㎝에 불과한 가시고기가 자
기보다 큰 거북이에 맞서 싸우는 장면은 처절한 삶의 현장이라는
것을.
이런 사투 끝에 가시고기의 부화율은 99%에 이른다. 이후 아빠가시고기
의 몸빛은 바래지고 주둥이는 헐어간다. 둥지를 지키는
동안 먹지 못한
수컷은 마지막 힘을 다해 둥지 쪽으로 접근해 숨을 거둔다. 1년 전 자신
을 낳아준 가시고기가 그랬듯, 자기 몸을
새끼들에게 주기 위해서다.
1㎝ 도 안 되는 새끼들은 무심하게 수컷의 몸을 뜯어먹는다.
"작은 물고기에 지나지 않지만 숭고한
사랑을 보여주는 고기입니다.
가시고기의 삶을 보면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설명 곁들인 다큐멘터리 PD의
말이다.
숭고한 사랑이 드문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 말 할 수 있
는 조창인 소설 가시고기는 '가장' 슬픔
속으로 독자를 밀어 넣는다.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하던 내
일이라는 말로 우리생명의 소중함을
드러낸다. 사람은 누구나 살만큼 살
아야되고 또 살고 싶다. 인명은 제천이라고 하지만 한창 꿈을 펼칠 나이
에 하고 싶은 일도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된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이 소설은 겨우 10살짜리 아이가 개구쟁이처럼 한창 뛰어 놀아야 될 그
나이에 급성
백혈병을 앓아 생명이 꺼져 가는 것을 살려보려는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을 그린 슬픈 이야기이다. 이 책의 군데군데 아들의
눈으로
아버지를 묘사한 대목이 나온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노래가사처럼
일찍 어른이 된 정다움(아이 이름)는 예전 눈물바다로 만든
'저 하늘의
슬픔이' 남자주인공 이상으로 눈물을 자아내게 만든다. 아빠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언제까지나
함께 있어야 한다
고 말한 건 바로 아빠예요. 그렇게 중요한 걸 왜 잊어버렸을까요...어느
날 갑자기 매몰차게 변해 버린 아빠의
행동에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2년 간 투병했지만 골수 이식 이외에 어떤 방법이 없고, 또 기증자를
찾지 못하고 설상가상
치료비를 감당할 능력도 없는 아빠는 더 이상 어
린 아들에게 혹독한 항암치료에 시달리게 하기 싫어 마침내 퇴원을 시킨
다. 편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 여긴 아빠는 모든 것을
정리한 채 아이와 여행을 나선다. 그 과정에 알게 된 노인을 따라 강원
도
산골짜기에 머물게 된다. 노인으로부터 뱀과 약초가 병을 이길 수 있
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아빠는 희망을 걸며 두 달간 혼신을 다해
약초를
찾아 아이에게 먹인다. 지성이면 감천인지 아이는 많이 호전된 것 같아
보이고 제법 건강해 진다. 하지만 병은 다시 재발되고
불행 중 다행이
일본에서 골수 증여자를 찾았다는 소식을 접한다. 하지만 막대한 수술비
를 만들 길이 없다.
수술비를
마련할 길 없는 아빠는 마지막 방법을 택한다. 그것은 바로
신장매매...그러나 신장을 팔기 위해 검사 받은 병원에서 간암
말기라는
뜻밖의 판정을 받는다. 살 수 있는 남은 기간은 6개월, 아이 치료와 회
복까지 걸리는 시간은 3개월. 아이의 소생을 눈앞에
두고 자신에게 다가
온 죽음. 그는 억울함과 슬픔, 아이를 세상에 혼자 두어야 한다는 두려움
을 딛고 그는 여기서 또 하나의 선택을
한다. 아무 미련없이 욕심과 야
망이 많은 이혼한 엄마에게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파리에서 화가로
성공한 엄마는 아들의 재능이
욕심 나 아이를 맡겠다고, 늦게 서야 양육
을 하겠다고 말한다. 무능력한 아빠 밑에서는 아이가 빛을 보지 못한다
는 구실은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 당시 없는 수술비도 걱정이지만 무엇보
다 아빠의 의무와 아내에게 자존심 굽히지 않으려는 나머지 아내 제의를
거절하고
말았다. 하지만 기껏 생이 6개월 남짓 밖에 없는 지금은 불우
한 어린 시절 자기처럼 아들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를 엄마에게
보내
야만 한다. 결국 아빠는 각막을 판 돈으로 수술비를 마련해 주고 아들과
추억이 깃든 그 산골짜기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사람은 자식을 낳으면 죽어도 진짜 죽은 게 아니다. 영원히 영원히 다
움이 안에 살아 있을 거다. 세상을 사랑하고 또
세상으로부터 사랑 받는
다움이가 되길 바란다 는 말을 남긴 채........
아버지는 자신의 몸이 암으로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이제껏
아들이 겪었
을 고통만이 아픔으로 와 닿는다. 아들아, 그 동안 네가 이렇게 아팠구
나... 이것이 참사랑이 아니겠나 싶다.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 이뻐 해 주
는 것만이 아닌 상대의 아픔이 진정한 내 아픔으로 전해질 수 있는 사랑
만큼 위대한 것이 어디 있을까. 난
이런 숭고한 사랑 앞에 어미라는 이
름의 무게가 다시 무거워진다. 이와 유사한 경우를 당한다면 다움이 아
빠처럼 그런 살신성인의
행동이 나올까 싶어서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자기 삶만 중요하다고 느낀 요즘에 이런
부성애의 따뜻함은 벅찬 감동 그
자체로 무어라 형용키 어렵다. 이혼법
정에서 서로 자기 삶이 버겁지 않기 위해 자식을 양육하지 않으려는 세
태에 이 글은 자녀사랑에
대한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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