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폐기물인 쓰레기를 통해 숨어있는 존재의 꽃을 찾는 과정를
그린 소설 "곰팡이꽃"은 3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각양각색이라고 작가들도 저마다 개성과 취향이 다르듯 곰팡이꽃의
저자 하성란의 색깔도 기존 여성작가와는 판이함을 느낀다.
적성에 맞지 않는 상업고교에 진학할 만큼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작가는 그래서 평범하고 소외되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감상적이 아닌 사실적으로 묘사해 낼수 있나보다.
아름답게 사는 사람은 이미 아름다운데 굳이 소설로 다시 그려야 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쓰레기처럼 일그러진 일상에서 자신의 삶의 자리를
찾고, 세상의 흐름에서 소외된 주변의 인물을 그린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을 동원해 묘사한 작품은 대상인물의 삭막한 내면과 일상의 시각
으론 보이지 않는 존재의 사각지대까지 탐색하게 만든다.
한 두번쯤 보관 미숙과 건망증 증세로 푸르스름 녹색빛의 곰팡이꽃을
구경한 적이 있으리라. 꽃이라 이름 붙이기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
징그럽고 흉한 곰팡이를 어떻게 "꽃"으로 비유할 수 있었는지....작가
말대로 소통단절의 현대인의 삶에 진정한 만남을 향한 희망차원에서
꽃이란 말로 미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처럼 무더위가 심한 날은 음식 부패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시큼한 악취에 자칫 거뭇한 곰팡이가 피어날때면 미련없이 쓰레기행
으로 전락하지만 한편 아깝고 경미하다고 노력한 댓가에 미련이 남아
버리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예기지 못한 일상사에 식중독이라는
무서운 화(禍)가 엄습할 수 있기에 곰팡이를 하찮다고 지나칠 수는
없다. 그래서 작가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가소로운 곰팡이꽃에도 피할
수 없는 진실이 숨어 있다고 은연중에 주인공을 통해 암시한다.
문을 두드리고 정식 인사를 청하는 보통행위 대신 상대를 알고자
상대 삶의 진실을 읽기 위해서 쓰레기장을 뒤지는, 상식선에서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을 택해 소외된 인간관계를 섬뜩하게
그린 소설을 약간 파헤쳐본다.
이웃끼리 익명의 관계로 지내는 아파트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진실(眞實)이 쓰레기 봉투속에서 썩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와
옆집에 사는 '여자', 그 여자에게 사랑을 호소하는 또 다른 '사내'
3명의 삼각구도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된 직후
그것을 미처 의식 못하고 일반 봉투에 쓰레기를 버렸는데 여자들이
그 쓰레기를 뒤져 남자 것임을 알아내고 찾아와 봉변을 준 것이
계기가 되어 남자는 쓰레기를 뒤지기 시작한다.
우연히 옆집 여자와 애인인 사내의 싸움에 말려들면서 남자는 이웃
여자에게 관심을 갖게된다. 사내는 자기가 좋아하는 생크림케잌을
여자도 좋아 한다고 믿으며 부지런히 케잌을 사들고 온다. 하지만
케잌은 곰팡이꽃이 피어 쓰레기가 된다. 왜 여자는 생크림케잌을
좋아하는 척 받아서 곰팡이꽃이 피도록 했을까?
적당히 수용하는 것이 싫은 기색보다 가면쓰고 내 감정, 진실을 감추며
사는 것이 때론 일상사가 덜 피곤하다고 여긴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 모두는 "척" 하는데 익숙한 나머지 상대로 하여금 오해를 쌓기도
때때로 케잌에 곰팡이꽃을 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오해가 누적
된 어느 날 끝내 진실은 쓰레기에서 썩어가고 철저히 외면 당한다.
쓰레기 봉투 속에 든 것도 한때는 새것이거나 싱싱한 것이였는데....
삶의 진실과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쓰레기를 뒤지는 것이 확실한 방법
이라 생각하는 남자는 심지어 짝사랑 여자의 쓰레기를 뒤져 볼수 있었더
라면 그 여자의 숨은 성격을 잘 알수 있었을 것이라고 여긴다. 접촉과
대화보다 쓰레기를 통해 소통을 시도하는 이 남자의 모습에 서글픈 비애
감마저 돈다. 어쩜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그늘진 모습일지도 ....
옆집 여자의 쓰레기를 뒤지면서 여자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되지만 이미
여자는 자취를 감춘 후다. 즉 악취와 로션 향기의 대조적 냄새를 맡으며
어렵게 발견된 진실 일지언정 원만하게 소통되기엔 여전히 힘들다고
작가는 우리에게 생의 아이러니를 잘 묘사해주고 있다.
쓰레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도대체 알수가 없다니까, 진실이란 건
쓰레기 봉투 속에 썩어가고 있으니 말야 ....남자의 독백은 보이지 않은
부분과 내동댕이쳐 버려진 진실을 다시 짚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쓰레기야 말로 숨은 그림찾기의 모범답안이라고 역설하는 작가의
시선에 내 시선도 함께 서성거리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쓰레기를 뒤져 본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다른 것을 숨길 수
있어도 쓰레기는 적나라하게 다 드러나잖아요. 사람의 취향과 식성 등
거기에서 인간의 다른 이면을 볼수 있을 것 같았어요"
보통인이라면 그냥 지나칠 법한 하찮은 일상풍경이 그의 시선에 잡히면
생생한 묘사와 감각으로 문제의식 내포한 소설로 거듭나는 모양이다.
스스로 소설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사람들을 보듬어 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작가는 미래 작품마다 기대 걸어도 좋을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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