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각들

이산가족과 통일

와인매니아1 2001. 10. 15. 01:25
수요일 아침이면 가슴 먹먹한 광경이 연출된다. 아침마당이란 모 방
송프로가 마련한 흩어진 가족 찾기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정없이 흘러
보낸 세월 속에 사무친 그리움과 생사의 윤곽을 알고자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접하면 비록 나와 상관없을지라도 그냥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
다. 도대체 핏줄이 뭐길래 저토록 애타게 찾기를 갈망하는 것일까. 무
엇이 저와 같은 애달음을 삭이지 못하게 했을까.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한 시간 남짓, 구겨진 사연을 갖고 온 사람들
모두 울먹이며 한 조각 반가운 소식을 얻을세라 희망하며 말을 토한다.
다소 실날같은 희망조차 희박해도 대부분 방송의 위력과 보이지 않는
어떤 힘과 질서를 믿는 심정으로 그들은 이 한시간에 마을을 묶어놓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실제 꿈에 그리던 내 피붙이와의 극적 상봉이
있기 때문에 드물게 찾아오는 그 순간을 쫓아 그 오랜 시간 견디며 살
아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날은 의도적으로 그 프로를 외면한다. 유일하게 즐겨보는 프로임
에도. 생사의 윤곽을 찾아보고자 하얗다 못해 누렇게 퇴색한 어린 기억
의 뿌리를 애써 더듬는 그들의 입장이 너무 안타까워 자연히 그들 입장
이 내게 이입되어 한동안 목젖이 눌리는 기현상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생이별도 겪어보지 않은 내가 이럴 진데, 그들은 오죽하랴 싶어
때론 타 방송국도 이와 유사한 프로를 신설해 주었음 하는 생각도 품어
본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의 아픔을 겪고 있는 우리 현실이고 보
면 아직도 이산 가족의 비애가 여전히 공존하고 있음에 참담하기까지
하다.

민족의 최대의 비극인 6.25 전쟁과 그리고 너무나 가난하여 어쩔 수
없이 헤어짐을 맛보아야 했던 그때 그 시절.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평
생의 그늘을 만들어 소위 행복을 연주하며 제대로의 삶을 펼치는 타인
의 삶과는 자기들은 별개라 여기며 어제와 오늘을 힘들게 견디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어쩜 내일은 학수고대한 소식을 접하지 않을까 기대
하며 시멘트 담벼락에서 매운 열기가 확확 반사되는 것조차 고스란히
수용한다.

우리는 가끔 외국을 나가봐야 애국심과 조국의 소중함을 떠올린다고
한다. 물 속에서 사는 물고기가 물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같은 나라안에
서 는 조국의 존재와 약소국의 비애를 체험하지 못하기에 그러하다. 또
이방인 속에 당그라니 던져 있을 때의 외로움, 비로소 망각 속에 밀쳐
둔 내 조국의 소중함과 그리운 내 핏줄을 떠올리며 다시 한국 땅을 밟
는 순간 공기가 다르다고 내지르는 것이다. 그리운 엄마 품이라며 온갖
정겨움을 부여할 수 있는 것도 내가 태어난 곳, 내 고향 산천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겠나 싶다.

하지만 아무리 역설한다해도 자기가 맛보지 않고 체험하지 않은 사항
엔 쉽게 남득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때문에 외국 갔다 온
이가 들려준 애국 운운에 콧방귀 날리며 얼마간의 부재로 저렇게 과장
되게 뱉어내는 작태에 '웃긴다' 조소를 거침없이 보낸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안다. 분단된 조국이 얼마나 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자기 목소
리를 내기를 주저하는지를.....눈앞에 달려드는 시간 풍경만 생각 없이
바라보는 것 같아도 남북통일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들끓고 있다는 것
인지.

몇 해 전, 모 그룹에서 금강산 관광을 추진하여 공식적으로 북한을 다
녀 올 기회가 마련되었다. 그때 이산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우
선적으로 참여시켰다. 다소 무리가 되는 비용일지라도 그곳을 가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비록 금강산 관광이란 명분을
내 세웠지만 북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은 혹시나 친지의 소식과 예전
생활공간을 볼 수 있으려나 하는 실같은 희망도 포함되지 않았나 생각
이 든다. 서로 밀착해 있지 않아도 느끼게 마련인 공기의 익숙함처럼
그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워했음 스치는 바람에 불과한 풍경을 접하고자
했을까 말이다. 비록 주마간산 격으로 슬쩍 소싯적 고향을 지나친다 할
지라도 남한에서 그리던 막연한 향수와는 체감의 속도가 분명 차이가
나리라.

어떤 이는 북한 흙을 만지며 오래 전에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복원해
내려고 빛 바랜 여백을 넋 놓고 있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절망은 저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표현하기 힘든 그 아픔과 애달음이 질펀한
암담으로 내게 전달되고도 남는다. 이런 것 보면 분단의 아픔이 자연스
럽게 마음속으로 스며들며, 인간으로 극복하기 힘든 게 생이별이 아닐
까싶은 생각이 호미질 쳤다.

비단 이산의 고통 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이라 할지라도 살다보면 세파에
부대껴 마음 젖지 않을 날이 드물고 더 이상 물러설 때 없는 벼랑에 있
는 기분도 더러 든다. 하지만 방송을 통해 분단 가족의 수효와 슬픔을
접하며 또 얼마 전 추진한 남북이산가족 상봉 때 죽음을 목전에 둔 사
람조차 북에 두고 온 피붙이를 애타게 찾는 것을 볼 때 조국 통일은 정
말이지 한시바삐 이루어야 할 지상 최대의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어떠
한 이익을 떠나서 어떤 이데올로기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지 말고 우리
민족의 따뜻한 정서가 교류되었음 한다. 즉 피를 나눈 가족은 함께 살
수 있어야 하고 또 떨어져 있어도 언제든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어
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항은 당연시되어야 한다.

이제 얼마 후면 칼바람이 몰아치는 계절이 찾아온다. 누군가가 그립
고 표현되지 않는 외로움이 한층 기세를 부릴 날이 머지 않았음을 뜻한
다. 한 해의 교차점에 다다르게 되면 누구나 올해에 어떠한 성과가 있
었던가 되짚어보는데 특히 이산가족들은 어떠한 소식조차 접하지 못할
때는 올해도 허송세월만 갉아먹고 말았다는 회한에 젖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는 정치인들이 세상을 바
꾼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도 최고권력자의 리더십이라 믿어 의심치 않
는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양심적인 헌신적인 소수의 시민이다.
어느 사회나 소수의 시민이 다수의 국민을 움직이고 있다. 그 소수가
극소수이면 세상이 더디게 바뀌고 그 소수가 다수이면 그만큼 세상이
바뀌는 속도가 빨라진다. 즉 나 하나부터 할 수 있는 일이다. 통일이 세
상을 바꾸는 일 중 일부분일지라도 나 하나의 의식부터 적극적인 자세
로 돌아간다면 통일은 언제나 꿈속의 과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이제 통일은 정치인의 몫으로 맡겨두기엔 우리 다수 의식들이 그리 낡
아져 있지만은 않다. 21세기 인터넷 혁명에 걸맞게 지구촌이 모두 한
가족이 된 만큼의 진일보한 세상에 우린 살고 있다. 명색이 이만큼의
발달과 진보를 거듭함에도 유일하게 통일문제 만큼은 조금의 발전 없이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
들의 만행(?)이 아무리 죽을 만큼이라 할지라도 같은 동족이란 사실은
거부할 수 없는 문제이고 같은 피를 나눈 민족끼리 용서 못 할 그 무엇
도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제 융화의 퓨전시대에 어울리게 용서와 화
해로 통일이란 숙제를 빨리 해결해야한다. 나와 무관한 일이라는 의식
을 접고서 말이다.

*이 글은 9월말 경북문화한마당 백일장에 참여해서
쓴 글인데 어저께 신분에 발표가 났단다.
일반부 장원으로 당선되어 나보다 타인이
먼저 알고 축하를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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